지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공간 매개체
지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공간 매개체
  • 강수경 기자
  • 승인 2019.04.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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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비게이션이 생기기 전, 우리는 두꺼운 지도책을 보며 목적지를 찾아가곤 했다. 지도는 정해진 목적지를 가거나 집을 옮기려 할 때도 어느 지역이 좋을지, 주변에 어떠한 기반 시설이 있는지, 살기에 적절한 곳인지 등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그보다 더 윗세대는 어땠을까? 지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에는 풍수지리가 유행하면서 서로 더 좋은 묫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지도를 만들어 쓴 오랜 전통이 있으며 고려를 지나 조선으로까지 이어졌다. 조선은 지도의 나라라 불릴 만큼 풍성하고 방대한 지도를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도예찬>이라는 전시를 통해 두 달여간 조선 시대의 500년 지도 역사를 조망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 시대 지도를 주제로 하여 일반에 최초 공개되었는데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 ‘동국대지도(보물 제1538호)’ 그리고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등 지도와 지리지 260여 점을 선보였다.

대개 지도라고 하면 공간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게 되지만, 지도를 통해 그 시대의 모습, 그 시대 사람들의 삶 등을 유추할 수 있다. 이 특별전은 두 개의 전시실을 통해 1부 ‘공간’, 2부 ‘시간’, 3부 ‘인간’ 그리고 4부 ‘지도 연대기’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1부에 전시된 지도들
1부에 전시된 지도들

 

1부, ‘공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공간이 종이 한 장에 내려앉았다. 한 장의 지도에는 수많은 의미와 상징들이 담겨 있다. 전시의 소개문 중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질문을 포함한다. 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어떠한 모습인지 세세히 살피고, 지도를 만들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과도 같다.’라는 글귀는 참 마음에 와닿고 지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1부에서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를 담은 지도, 세상과 우리 영토를 그린 지도, 외교와 전쟁의 치열한 과정 속 우리와 이웃의 경계를 그린 지도, 나라를 하늘의 이치를 받아 다스리고자 그린 천문에 대한 지도를 소개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일본 류코쿠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대형 스크린에 전시되어 있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존하는 한국 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조선 태종 2년(1402)에 권근, 김사형, 이무, 이회가 만든 세계 지도지만 원본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1480년대에 원본을 베낀 채색필사본 지도만이 남아 있다. 이 지도는 ‘혼일강리’, 즉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를 그렸는데 중국을 중앙에, 동쪽에는 조선과 일본, 서쪽에는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구대륙 전역을 포괄했다. 중국 다음으로 조선이 크게 그려진 점이 참 흥미로웠다. 이는 조선 초의 세계 인식을 잘 보여준 예이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부, ‘시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쌓인 세월의 흔적을 이해해야 한다. 즉, 그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지도 위에 역사를 기록하는 전통이 생겼고, 특히 조선 지도에 이러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세계 지도인 ‘천하고금대총편람도’, 전국 지도인 ‘조선팔도고금총람도’는 당시의 유교적 가치관 속 의미 있는 사건과 인물들을 지역별로 소개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충신, 효자, 열녀, 그리고 성리학자 등을 열거하고 유교적인 정치 이념을 기본으로 구성한 역사를 공간 위에 풀어놓았다. 지도 속 지리 공간 위에 역사 정보를 더하거나 역대 왕조의 변천을 정리한 것은 조선 후기 지도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지도 속 시간의 흔적은 그 시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와 역상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3부, ‘인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

조선 지도에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소망과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단순하게 지형과 시간만을 담은 것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보여 주는 자료가 들어 있다. 통치를 잘 하려는 바람, 국방을 튼튼히 해서 국토를 지키려는 바람,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바람 등 당시 조선 사회의 다양한 이상들이 드러난다.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보여준 ‘전라도 무장현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이 휘날리는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어 지도라기보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지도가 점차 보급되면서 작은 사이즈의 ‘수진본 지도’나 ‘명당도’ 등의 풍수 지도도 등장하였고 이는 실제 삶 속에서 사용되었던 지도의 활용을 잘 보여 주었다.

특히나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19세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가 3부에 전시되어 있었다. 22권 책을 모두 펼친 이 지도는 아파트 3층 높이로 가로가 약 3.8m, 세로가 약 6.8m의 방대한 원판이 특별 제작된 유리 아래 펼쳐져 있었다.

 

조선 지도의 역사
조선 지도의 역사

 

4부,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를 중심으로 한 ‘지도 연대기’

4부에서는 조선 후기 대표 지도 제작자들을 따라 지도가 어떤 흐름을 따라서 발전해 왔는가를 보여주었다.

1424년 세종은 효율적인 지방 행정을 위해 광범위한 전국의 지리 정보를 조사하게 하였고, 15세기에 지속적으로 지행한 결과 ‘동국여지승람(1481)’ 등 여러 지리지가 만들어졌다. 정척과 양성지가 1463년 세종에게 바친 ‘동국지도’는 17세기까지 가장 대표적인 지도 유형이 되었고 19세기까지 민간에서 사용되었다. 18세기에는 왜란과 호란의 피해를 극복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하고 더욱 많은 지도가 필요했기에 여러 행정용 지도와 국방 지도가 만들어졌다. 대중적인 지도책과 산도도 제작되었다. 대축척의 방안 지도가 제작되면서 대축척 전국 지도가 생겼고 인기 있는 지도는 목판으로 인쇄하여 보급되었다.

 

지도 제작에 필요한 것들
지도 제작에 필요한 것들

 

이처럼 18세기 획기적인 발전에는 지도의 거인 김정호가 있었다. 4부에서는 그에 관해 더욱 자세한 설명과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산자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지리학자이다. 1834년에 펴낸 대축척 전국 지도인 청구도를 시작으로 평생 지도의 정확성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 대표적인 결과물인 ‘대동여지도’는 한국 전통 지도학의 결정판이다. 그는 지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기를 원해 대동여지도를 목판 인쇄본으로 만들었다. 지도와 짝을 이루는 지리지의 연구에도 힘써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 등의 전국 지리지를 편찬하기도 했다.

 

대동여지도 목판
대동여지도 목판
대동여지도 인출본
대동여지도 인출본

 

제2 전시실, 중·근세관 114호실에 들어서자 5.3배 확대해서 약 14m에 이르는 정상기의 ‘동국대지도’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그 곳에서 스마트폰 ‘지도예찬’ 앱을 설치해서 특정 지역 위에 서면 증강 현실(AR)을 이용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지도예찬> 전시와 함께 감상한 영화 2편을 소개한다. 먼저, 전시 3부에서 본 대동여지도 원판을 생각하며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를 감상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영화에서 나왔던 내용과 같이 흥선 대원군과 조선 정부의 김정호 탄압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 왕조를 부정적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지어낸 허구라는 것이다. 이 점이 사실이 아닌 것에 유의하며 가볍게 볼 수 있었고, ‘국토에 대한 바른 지식이 나라의 희망이고 미래라고 믿으며, 평생 지리 지식의 연구와 보급에 헌신했던 김정호, 대동여지도는 지도를 통해 부강한 나라의 건설을 꿈꾸었던 한 지식인이 평생 쏟아낸 땀방울의 결정체’라던 전시의 소개문을 되새기며 보니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

또한, 4부의 지도 연대기에 전시되어 있던 명당을 그린 책과 묘지, 목판본을 떠올리며 조선 시대 유행했던 풍수지리에 대한 영화 <명당>(2018)을 보니 전시를 관람한 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묘미가 되었다. 땅의 형세와 기운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지리설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라 하대 9세기 이후부터 등장하는 풍수지리설은 왕조의 교체나, 천도와 같은 시기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 왕조에서도 한양을 수도로 정하는데 풍수 사상이 영향을 미쳤고, 산줄기와 강줄기를 주요한 맥으로 하여 국토의 자연환경을 알아보는 데에 활용되었다. 땅의 형세와 기운을 표현한 풍수지리 사상의 형세 지도도 유행하였다. 민간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땅을 살피기 위해 무덤의 위치를 그린 지도인 명당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 두 영화는 18세기 후기를 배경으로 지도와 땅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들 모두 허구적 내용이 포함되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내서 당대 지도의 의미와 우리나라 선대들의 땅 사랑으로 인해 생긴 대결 구도로 흥미를 이끌어 냈다.

 

<지도예찬> 전시와 영화 2편을 보니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조선 시대 지도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발명품, 지도의 위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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