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리적 환경과 음식 문화의 상관관계
한국의 지리적 환경과 음식 문화의 상관관계
  • 정여름 기자
  • 승인 2019.05.23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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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한국인들은 대체로 미지근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차갑게 먹든지, 혀가 데일 정도로 뜨겁게 지지고 볶아 먹는 것이 일반적인 식성이다. 이들이 극단적인 입맛을 가지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일본인들은 왜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을까?

필자는 1년 전 친구와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갔다. 변압기를 사기 위해 동네 작은 상점에 들어갔고, 전압기를 사고 싶다는 말을 굳이 어설픈 일본어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변압기 사진을 찾아 일본인 점원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점원이 한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더니 온몸을 숙이며 “스미마셍”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그 전압기는 매장에서 팔지 않는다고 온몸을 숙인 것이다. 정말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그깟 전압기야 다른 곳에서 사면 그만이고, 매장에 전압기가 없는 것이 그렇게 죄송할 일은 아닐 것인데 그 반응을 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일본 상인 특유의 친절한 태도는 일본 여행을 가 본 사람들이라면 흔히들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직원이 마음속까지 그렇게 미안함을 느꼈는지는 필자는 알 수 없고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과한 친절에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 일본 여행을 할 때 일본인들의 나긋나긋한 말투 덕에 그들이 상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일본의 친절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속마음(혼네)과 입으로 하는 말(다테마에)을 구별하는 특징이 있다. 본인이 느낀 감정을 솔직히 말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대방을 미리 배려하는 것, 즉 ‘기고바리’ 정신이 있다.

일본인들의 상냥한 태도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본래 부드러운 성품을 타고난 것일까? 한국 사람들은 동의하지 못할 생각일 것이다. 필자는 섬나라 특유의 지리적 환경이 일본인들의 성격 형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중앙 집권 기틀을 잡은 쇼토쿠 태자가 헌법을 제정할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평화였다. 평화를 중요시하는 것은 대부분의 섬나라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든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전쟁은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고 죽음만을 초래할 뿐이다. 도망갈 곳도 없는 섬에서 극단적인 폭력을 지양하고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최대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습성은 본능적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화끈한가?

그렇다면 반도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떤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필자는 한국인의 성격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화끈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화끈하다. 화끈하다는 것은 본래 음식을 표현하는 데 더욱 적합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있어 이만큼 정확한 표현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은 6·25 전쟁 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기 힘들었다. 그런 나라에서 40년 만에 국민 소득을 200배 가까이 올린 한국인들의 저력을 화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화끈함에서 한국인 특유의 과격함이 나오기도 한다. 화끈한 성격 또한 반도 국가의 지리적 환경이 만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의 가운데에 있는 한반도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에 맞설 수밖에 없는 지리적 구조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나라를 지켜야 할 지도부들은 종묘사직을 지킨다는 대의명분 아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 정부는 한강 다리를 끊고 피란을 가기도 했다. 이런 일들에서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본인만이 가족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자연스레 타 민족과의 접촉에 배타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과정에서 한국인 특유의 억센 성격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흥선 대원군의 수교 거부 정책이 단순한 정책적 결정이 아닌 한민족 특유의 생존 DNA에서 나온 결정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전란을 겪으면서 이민족들과의 접촉의 빈도도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언젠간 순수한 민족 혈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을 것이다. 자신의 DNA를 보존하고 싶은 것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 본능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이민족의 침략을 받은 발칸반도 국가는 철저히 순혈주의를 강조하며 민족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이런 반도 국가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타 민족을 배척하고 순수 혈통을 강조함으로써 원형을 보존하여 자신과 민족을 지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생존 본능이었을 것이다. 화교가 끝내 자리 잡지 못하는 나라, 혼혈이나 이민자들에게 지옥의 나라라는 오명까지 가진 한국인의 배타성은 반도 국가 국민의 생존 본능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해도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매운맛을 사랑하게 됐을까?

이렇듯 극단적이고 원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성향이 그들이 먹는 음식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뭐든 한번 보면 끝을 내버리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미지근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차갑게 먹든지, 혀가 데일 정도로 뜨겁게 지지고 볶아 먹는 것이 한국인의 식성이다. 심지어 비빔밥조차도 돌솥에 넣어 뜨겁게 먹는 것을 선호한다.

뜨거운 것만큼 한국 음식의 특징은 맵다는 데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매운맛에 자본주의의 상업성이 더해져 경쟁적으로 매운맛을 양성해 내고 있다. 불닭, 불꼬치, 불볶음면, 떡볶이 등 혀의 통증을 자극하는 음식이 큰 유행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매운맛은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통증이다. 감각이다. 매운 감각에 익숙해지면 더더욱 매운 감각을 찾기 마련이다. 왜 이렇게 한국인은 매운맛을 선호하게 됐을까? 매운맛을 내는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고추의 매운맛을 즐기는 것은 정작 한국인이다. 이에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가 자신의 저작 <음식인문학>에서 밝힌 고추의 확산 시기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매운맛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식품학자인 기무라 슈이치는 그의 논문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서 고추가 소금 대용으로 쓰일 수 있음을 주장했다. 18세기에 고추가 김치의 양념으로 쓰이던 시기에 소금이 부족했었는지를 살핀다면 조선인들이 소금 대신 고추를 대체재로 사용했다고 추측할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17세기부터 소금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다.1) 17세기에 향교와 서원이 700개까지 증가했는데, 더불어 제사용품으로 쓰일 어물의 수요까지 증가했다. 늘어난 해산물의 유통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시 많은 소금이 필요했을 것이다.2)

또한, 이양법의 실시로 곡물 수확량이 늘었다. 단백질이 모자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 구성은 짠지나 소금 간이 많이 들어간다. 이 짠맛을 중화하기 위해 고춧가루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고추는 짠맛을 중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고추를 사용함으로써 소금과 같은 방부제 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모자란 소금 대신 고추를 적극적으로 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농촌 경제 정책서 <임운경제지>에서 고추 사용을 권장한 내용이 실제 있기도 하다.3) 고추를 소비할 수밖에 없던 정책적 상황과 반도 사람들의 특유의 극단적이고 화끈한 성격이 어우러져 지금의 매운맛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입맛이 만들어졌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 김후종, <조선 후기 어염의 유통 실태>, <대구사학> 제31집, 1986
2) 주영하, <김치의 문화 인류학적 연구>, 1994
3) 주영하, <음식인문학>, 휴머니스트, 2011

 

 

왜 이렇게 원조를 자처하는 식당이 많을까?

떡볶이 골목이든, 순대국밥 거리든 너도나도 원조를 외치고 있다. 원조(元祖)는 한자 그대로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시작한 사람은 상식적으로 한 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식집은 유독 본인들이 음식의 원조라며 그 전통성을 강조한다. 해외의 어느 나라 식당을 가도 찾기 힘든 생소한 풍경이다.

왜 이렇게 한국인은 원조에 집착할까? 필자는 이런 현상 또한 반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특성이라 본다. 외세의 침입은 민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끊임없는 외란 속에 타 민족을 배척하고 같은 민족끼리 단결해 정통성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상 과제였을 것이다. 정통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대부분 정치적 용어로 정통성을 해석한다. 쉽게 말하면 바꾸지 않고 원형 그대로의 것을 간직하는 것이다. 정실의 자식이 아닌 서자는 조선 후기까지 지독하고 교묘하게 차별받았다. 지금은 그 분위기가 제법 달라지기도 했지만 15년 전만 해도 남편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는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장면은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때 TV에서 자주 나오던 장면이었다. 이와 함께 뿌리가 같지 않은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극히 꺼려지는 행위였다.

대학 입시는 어떤가? 한국에서 모두가 동경하는 서울대학교에서도 학생들끼리 은근히 서열을 나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중 가장 높은 서열은 누구일까? 바로 수능을 보고 들어온 특목고 출신의 학생이라고 한다. 다음이 일반고 출신의 정시 합격생, 그다음이 수시 합격생이다. 그리고 가장 무시받는 친구들은 농어촌 전형이나 사회적 배려 전형 학생들이라고 한다. 좋은 대학일수록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수능 성적으로 입학하는 것이 가장 정통성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도 인기 있는 학과에 편입생들이 들어오면 따돌리거나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것도 정통성을 강조하는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업을 성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식업계에서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몇십 년 전통의 변하지 않은 옛날 방식 그대로의 요리법은 한국인의 전통성에 대한 욕구의 본능을 가장 잘 불러 일으키는 광고 문구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각 나라의 자연환경은 그 나라 사람들 특유의 국민성을 생산한다. 특히 지리적 요소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 전반적인 것에 큰 영향을 끼친다. 생활의 총체적인 합이 공유되고 모두가 대체로 따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일 것이다. 문화는 다시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을 이뤄 음식을 먹는 방식을 만든다. 별 생각 없이 먹던 음식에도 다양한 연결 고리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다.

 

[사진]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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