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병풍의 맛
조선 시대 병풍의 맛
  • 강수경 기자
  • 승인 2019.05.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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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가례진하도 8폭 병풍 일부 확대
헌종가례진하도 8폭 병풍 일부 확대

 

행사나 의식, 장식 등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병풍. 그러나 병풍이 주인공처럼 여겨진 적은 없었다. 꾸미고 가리고 나누는 용도 정도로, 병풍 하면 그 의미는 미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병풍의 나라’라고 할 만큼 다양한 병풍이 의례와 행사에 사용됐다.

 

본래 병풍의 쓰임은 바람을 막는 것이었으나 현대에는 그림이나 자수, 글씨 등을 감상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공예 혹은 전시품의 경향이 더 짙어졌다. 접거나 펼 수 있게 만들어 방 안에 치면 실용성과 예술성을 함께할 수 있다. 다양한 주제의 수많은 병풍이 제작되고 사용되던 조선은 사용자에 따라 궁중과 민간의 것으로, 즉 화원이 궁중용으로 그린 것과 민간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나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궁중에서 가장 유행했던 병풍의 주제는 주로 왕의 권위 과시나 번영, 장수였다. 여러 의례와 행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며 실내를 꾸며 주기 위하여 제작했고, 이 병풍들은 궁중에 맞게 넓게 펼쳐 실내를 빛나게 했다. 19세기 이후에는 민간에서 더욱 유행했는데 병풍의 형식과 스토리가 더욱 다양해졌다. 민간에서는 돌잔치, 혼례, 회갑 등 행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병풍을 빌리거나 구입했다. 특히, 장례에 병풍을 사용하는 전통은 지금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볼 수 있다. 병풍은 주로 공간을 장식하거나 분할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조선 시대 가옥에 맞게 이동, 설치가 편리하도록 제작되었다.

이처럼 주제나 형식 외에도 재료, 기법 등으로 구분하여 궁중과 민간의 다양한 병풍을 볼 수 있게 한 자리에 모은 고미술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가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지난달 23일까지 개최되었다. 지하 1층에서 선보였던 이 전시에는 조선 시대의 병풍을 중심으로 근대의 몇몇 작품도 함께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국내 10여 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78점의 대형 병풍들도 8개의 전시실에 나누어 배치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금강산도 10폭 병풍>이었다. 실제로 보니 병풍의 크기의 장엄함과 세세하게 표현된 고품질의 그림에 놀랐다. 일반적인 다른 민화들과는 달리 검은 먹으로만 그렸고 붉은색으로 주요 지명을 표기했는데, 이는 금강산의 전경과 해설에 집중한 것이라고 한다.

 

금강산도 10폭 병풍
금강산도 10폭 병풍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에는 <해상군선도 10폭 병풍>을 전시했는데 여덟 명의 신선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른쪽부터 수노인, 황초평, 삼선, 자염도사, 복록수, 삼성, 선동, 조국구, 청오자 등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신선 그림은 받는 이의 건강과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의 선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 병풍은 고종 황제가 독일 마이어 상사의 지사장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해상군선도 10폭 병풍
해상군선도 10폭 병풍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궁중 병풍을 중심으로 왕실의 장엄과 기록, 길상과 장생에 대한 염원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섯 명산과 해와 달을 함께 그려 왕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일월오봉도 8폭 병풍>을 비롯하여 <헌종가례진하도 8폭 병풍>, <고종임인진연도 8폭 병풍>과 같이 왕실의 특별한 행사를 기록하고 기념한 병풍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일월오봉도 8폭 병풍>이 인상 깊었는데, 이 병풍은 조선 시대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오로지 국왕만이 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내외를 불문하고 국왕이 자리하는 곳에는 이 병풍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왕 뒤에 펼쳐져 있던 것을 자주 본 것 같아 꽤나 반가웠다.

 

일월오봉도 8폭 병풍
일월오봉도 8폭 병풍

 

왕실의 행복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과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도 10폭 병풍>은 조선 병풍의 중심을 보여 준다. ‘곽분양’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당나라 명장 곽자의의 생일 연회를 묘사한 것이다. 평생 부귀와 복록을 누리며 장수했고 8명의 아들과 7명의 딸들 역시 번창했다. 그리하여 그의 일생은 부귀공명과 수복장생, 백자천손의 상징으로 문학과 회화의 주제가 되었다. 그림은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로 치밀하게 묘사되어 숙련된 화원의 필치를 엿볼 수 있었다. 병풍을 가까이서 보니 인물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 똑같은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섬뜩해 보이기도 했다. 인물들의 크기나 모습이 일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과 머리 모양 등이 동일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일부 확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일부 확대

 

<십장생도 10폭 병풍>은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 자연물과 동식물을 그린 그림으로, 무병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졌다. 십장생은 대체로 해, 물, 돌, 구름, 소나무, 대나무, 거북, 학, 사슴, 영지로 구성되는데, 영지는 불로초의 다른 명칭이다. 이러한 구성은 때때로 달, 산, 복숭아로도 변주된다. 숫자 십(十)은 예로부터 완전하고 영원한 수로 여겨졌는데, 이처럼 숫자와 연결하여 장생물을 구성한 것은 조선만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보는데 기분이 좋았고, 초록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지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불로초라는 단어는 왠지 유토피아를 연상시켜 이 그림조차 신비로워 보였다.

 

십장생도 10폭 병풍
십장생도 10폭 병풍

 

그다음 네 번째 전시실에서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소망이 깃든 병풍, 당시 유행했던 소설을 옮겨 그린 병풍, 유교 윤리를 전달하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병풍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화조도 병풍>과 <어해도 병풍>은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었는데, 그 속에서 조선 시대 사람들의 장수, 자손 번창, 출세 등 현실적인 소망과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화조도 8폭 병풍
화조도 8폭 병풍

 

<화조도 8폭 병풍>은 여러 종류의 꽃나무를 도안화하여 그린 병풍이다. 복숭아꽃, 부용꽃, 모란꽃은 실재하는 꽃이고 나머지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가상의 꽃이다. 기하학적 도형들로 패턴화하여 완성한 꽃의 형태와 감각적으로 구성한 구부러진 가지들로 인해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특이하고 독특한 형태의 화조도라고 할 수 있다. <어해도 8폭 병풍>은 강이나 바다에 사는 어류와 갑각류 등을 그린 그림으로 풀숲이나 꽃나무를 함께 그리기도 한다. 어해도는 다양한 상징으로 해석되며 사실적인 묘사부터 특징만을 살린 도식화된 그림까지 다양한 화풍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물고기와 꽃나무들이 청록의 진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암석과 꽃나무가 있는 물 밖 냇가와 물고기들이 노니는 물속 장면이 몽환적으로 혼재되어 있었다.

 

어해도 8폭 병풍
어해도 8폭 병풍

 

바로 옆 다섯 번째 공간에서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재미있게 표현한 <문자도 병풍>을 보았다. 문자도로 사용되는 글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儀廉恥)’의 여덟 글자다. 이러한 유형의 문자도를 효제문자도 혹은 윤리문자도, 팔자도 등으로 부른다. 현재 남아 있는 병풍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채색과 세밀하게 공들여 쓴 필체는 상류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근거가 된다. 병풍을 처음 보았을 때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오늘날 그라피티나 캘리그래피 등 글씨체를 변형하여 그림 또는 예술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당시 그런 느낌으로 이 병풍을 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봤다.

 

문자도 8폭 병풍
문자도 8폭 병풍

 

여섯 번째 전시실 매화의 방에서는 보물 제1199호인 유숙의 <홍백매도 8폭 병풍>과 양기훈이 초본을 그리고 그 위에 수를 놓은 <자수매화도 10폭 병풍>을 나란히 배치했다. 서로 다른 재질인 수묵과 자수로 표현한 매화 그림을 한 공간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했다. 두 작품을 통해서 화첩이나 두루마리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호장한 구도와 감각적인 필치를 구사한 매화 병풍의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홍백매도 8폭 병풍
홍백매도 8폭 병풍

 

원래 매화는 선비의 절개와 이상을 나타내는 주제 중 하나지만 이 시기에는 장식성을 강조한 병풍 형태의 매화 그림이 유행했다. 문인화의 주된 소재인 매화는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회화의 규모가 커지는 경향에 의해 화면 한가운데에 큰 매화나무가 배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같은 매화를 표현했지만 표현한 재질에 차이가 있어 서로 다른 느낌이 드는 매화가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자수로 표현된 매화가 더 예뻐 보였다. 더 뚜렷해 보이고 눈에 확 들어왔으며, 매화의 매력인 붉은색이 자수로 잘 표현되었다.

일곱 번째로는 금강산과 같은 명승지나 지역의 명소를 그린 병풍과 호사 취미를 엿볼 수 있는 병풍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근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하는 형태와 재료로 만든 병풍도 함께 전시했다. <금강산도 8폭 병풍>은 18세기 유기 문학과 정선의 금강산을 주제로 한 진경산수화가 유행하면서 금강산은 조선의 대표적인 명승지가 되었다. 이 병풍의 그림은 19세기 문인화가인 도암 신학권(1785~1866)이 그린 것으로 그가 1861년 3월 77세에 완성한 그림이다. 전형적인 정선풍 금강산도의 표현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외에는 특히 <태평성시도 8폭 병풍>이 인상 깊었는데 조선 시대 사람들이 꿈꾼 이상적인 도시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 병풍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2,100여 명의 등장인물이 도성에서 활동하는 장관을 그린 도시 풍속화이다. 깨알 같은 디테일로 상점과 번화가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곳곳에 전통 시대의 이상적 삶이 표현되었으며 각종 수공업과 상업 활동이 그려졌다. 인물들은 중국식 복식을 하고 있지만 생활 양식은 조선화되어 나타난다. 소비와 유흥을 즐기는 모습은 새로운 도시상을 지향하던 이들에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되었을 것이다. 거대한 병풍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태평성시도 8폭 병풍
태평성시도 8폭 병풍

 

더불어 낙화 기법으로 제작된 병풍과 서양화의 영향을 반영한 가리개를 통해 전통과 근대를 잇는 새로운 시도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낙화화조도 10폭 병풍>은 철필이나 인두를 달궈 종이의 표면을 지져 그림을 그리는 낙화 기법으로 화조를 그려냈다. 우리나라에서 낙화는 정조 때 박창규(1796~1855)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낙화는 그의 친족들을 통해 전통을 잇게 되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지금까지 보던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회화 병풍이 아닌, 자수 기법을 활용한 병풍을 선보였다. 자수 병풍은 왕실이나 일부 계층에서 주문하고 사용하던 고급 병풍이었는데 일반 병풍보다 제작 비용이 몇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자수백수백복자 10폭 병풍>과 <자수화조도 병풍>은 일반 병풍에서도 볼 수 있는 주제와 바탕 그림이 사용되었지만, 재료의 차이로 인한 독특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자수백수백복자 10폭 병풍>은 다양한 종류의 전서체로 쓴 ‘수’와 ‘복’ 자를 한 폭씩 번갈아 36자씩 수놓은 10폭 병풍이다. 이외에 동식물이나 보배 문양 등을 조합해 다채로운 모양으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이를 글자마다 여러 가지 다른 색실로 수놓아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자수뿐 아니라 서예 병풍으로도 만들어진 백수백복도는 국왕의 어진 통치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수백수백복자 10폭 병풍
자수백수백복자 10폭 병풍

 

자수 병풍의 제작 공정은 회화에 비해 까다로우며 장식적인 효과가 한층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자수화조도 10폭 병풍>은 화조라는 길상도의 주제를 자수 기법에 맞게 과감히 단순화하고 도안화하여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진채로 그려지는 화조도와 달리 차분한 색조의 색실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담백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여러 전시실을 거쳐 마지막 공간에 오기 직전까지 살짝 지루하던 찰나 자수 기법의 병풍은 눈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확실히 이전 병풍들보다 선명하니 고급스러워 보였고 우수했다.

 

자수화조도 10폭 병풍
자수화조도 10폭 병풍

 

이 전시를 통해 조선 시대 병풍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았다. 굉장히 큰 규모의 전시였고 병풍의 가짓수도 엄청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많은 병풍에 뒤로 가면서 좀 지치고 힘들었다. 지금껏 필자는 병풍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히 왕의 거처나 양반의 방 뒤에 펼쳐 놓는 장식 용도, 혹은 장례 용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과거 시대에 이런 여러 작품들이 나왔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탄스러웠고 다양한 용도와 주제의 병풍들이 현존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 여덟 번째 전시실의 자수 병풍들은 색감 자체도 선명하고 다채로워서 집에 가져다 놓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했다. 한편으로는, 전시회에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병풍이 있는데 현 시대에서는 병풍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해설을 읽고 작품들을 보면서 병풍에 반영된 조선의 시대상이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한층 더 그 시대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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