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역사, 국립 청주 박물관에서 만나 보자
청주의 역사, 국립 청주 박물관에서 만나 보자
  • 박영진 기자
  • 승인 2019.05.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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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청주 박물관 전경
국립 청주 박물관 전경

 

한반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청주. 청주는 한반도의 내륙 지역으로서 한강 줄기를 따라 서울 등 수도권을 관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와 같은 곳이었다. 한강 유역 못지않게 삼국 시대에는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각축장이었으며, 통일 신라 시기에는 제2의 수도와 같은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또한 고려 시대에는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의 중심지로 변모하면서 한반도의 문화가 번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격동의 세월과 역사의 중심에 청주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역사를 공부할 때 청주에 대해 대부분 접하기가 쉽지 않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주로 등장하는 곳이라면 서울 등 수도권 지역과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부여 지역, 신라의 수도 경주, 현재 북한에 있지만 고려의 수도 개성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청주의 숨겨져 있는 다양한 역사를 만나기 위해 국립 청주 박물관으로 떠나 보고자 한다.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총 4개 관으로 나뉘어 있는 박물관에는 청주 지역의 역사는 물론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과 문화재 등이 전시돼 있다.

 

고대 문명의 시대, 강과 구릉을 벗 삼다

먼 옛날 고대 문명이 시작되던 때, 청주 지역에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형성했다. 특히 청주 지역은 남한강과 금강 그리고 산 등을 바탕으로 한 구릉과 평야 지대가 잘 형성돼 있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환경이 매우 적절하게 갖춰져 있다. 이런 환경 덕분에 오늘날 많은 고대 유물이 발굴된 좋은 요인이 되기도 했다.

청주 박물관 선사 문화실에는 청주에서 발굴되고 우리가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물 등이 대거 전시돼 있다. 구석기 시대 주먹 도끼와 찌르개를 시작으로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 이어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토기 등이 그러하다. 특히 다양한 농경 도구들이 대량으로 발굴되면서 청주를 비롯한 충청도 지역에서 오래된 과거부터 농경 생활이 어떻게 발달돼 왔는지를 잘 볼 수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물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물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물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물

 

전투의 중심에서 수도로 거듭난 고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이 중심이 되는 고대 시대로 넘어오면서 청주는 본격적으로 이들 국가의 중요한 요충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삼한 시대 충청북도 지역은 마한에 속한 여러 나라가 있었고, 일찌감치 철기가 널리 보급되고 사용되면서 사회 발전을 빠르게 이뤄 나갔다. 특히 금강 상류와 남한강 유역의 발굴 자료를 통해 충청북도에 있었던 마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청주와 진천 지역에서는 영남 지역의 삼한 사람들이 사용하던 토기가 발견되어 주변 지역과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시대 유물
고대 시대 유물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고 난 후 청주와 충청도 지역은 철 생산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백제는 4~5세기경 청주 인근의 남한강과 금강 유역에서 철 생산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백제가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중원 지역에서 절대 빼앗기지 않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철 생산의 흔적을 보여 주듯 한금강 상류인 미호천 일대에서는 철 생산 유적과 함께 진천 산수리와 삼룡리, 청주 오산리 등에서 백제 토기 가마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고구려와 신라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의 영토 확장 정책에 이어 장수왕이 남한 정책을 펼치면서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 지역과 중원 지역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고구려는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 남한강 유역의 충주를 교두보로 삼고 금강 상류인 청주 지역에서 백제와 대립했다. 이후 신라는 5세기 무렵부터 소백산맥 이북으로의 진출을 꾀하여 진흥왕이 즉위하고 난 6세기 중반 이후 충청북도 지역을 세력권에 넣고 한강 유역 진출과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4~6세기경 청주 지역은 각기 다른 국가가 지배할 만큼 경합의 장이자 뺏고 빼앗기면서 치열한 전투의 장이기도 했다.

 

고려 시대 유물
고려 시대 유물

 

고려 시대 유물
고려 시대 유물

 

이윽고 신라가 통일을 달성한 후 청주는 이전과는 다르게 한 국가의 중심 도시로 거듭난다. 신라 수도 경주는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라는 통일 직후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곳곳에 '소경(小京)’이라고 하는 수도 기능을 하는 도시를 지정했다. 그중 청주가 서원경이 되면서 5소경 가운데 하나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원래 소경은 557년 충주에 ‘국원소경’, 청주에서 '원소경’이 설치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국원소경이 중원소경으로 그리고 다시 중원경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청주에 설치됐던 서원소경은 경덕왕 때 서원경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중원경과 서원경은 신라 5소경 가운데 한반도 중심 지역을 다스리는 제2의 수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를 증명하듯 상당산성 등에서 발견된 ‘사량부(沙梁部)’와 ‘탁부(啄部)’ 글씨가 새겨진 기와는 당시 서원경이 경주 왕경처럼 6부가 존재하는 행정 도시였음을 잘 보여 준다.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이 곳에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청주는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한다. 국립 청주 박물관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유물 가운데 하나인 ‘직지’가 전시돼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지역에서 탄생했다. 청주 지역에는 왕실과 호족의 후원으로 많은 절이 세워졌는데 청주에 위치한 사뇌사, 용두사, 흥덕사를 중심으로 불교 금속 공예와 인쇄 문화가 크게 융성했다. 그중에서도 흥덕사는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를 간행한 절로 충청북도 불교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 시대의 생활 유적은 무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과 명암동, 충주시 단월동과 호암동 등에서는 대규모 무덤 유적이 발굴됐는데, 이 곳에 각종 토기와 청자를 비롯하여 청동 거울, 청동 수저와 그릇, 동곳, 동전 등이 묻혀 있었다. 특히 청주 명암동 무덤에서 나온 ‘단산오옥(丹山烏玉)’이 새겨진 고려 먹은 출토지가 알려진 고려 시대 유일의 먹으로, 문학과 예술을 중요시하던 이 지역의 높은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유교와 도자기가 모이다

조선 문화실에는 충청북도 지역에 살았던 이들이 만든 분청사기와 백자가 전시돼 있는데 당시 이 지역의 뛰어난 도자기 생산 능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각 도자기에는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으며 백자에는 철사(鐵砂) 안료나 청화(靑畫) 안료로 제작 시기, 지역, 관청, 시구를 한문이나 한글로 표기해 둔 흔적을 볼 수도 있다.

조선 시대 청주 지역에서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무덤에 백자나 동제 그릇 그리고 동제 숟가락 등을 함께 넣어 묻은 풍습이다. 이는 죽어서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편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남은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라고 볼 수 있다. 사대부 층에서는 작은 형태의 명기 등을 묻기도 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무덤의 외관을 꾸미는 등 제사의식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 시대 유물
조선 시대 유물

 

한편 조선 시대 충청도 지역은 성리학의 명맥을 잇는 고장의 역할을 했다. 이이와 성혼 등의 학풍을 잇는 기호학파와 이황의 계통을 잇는 영남학파로 나뉜 가운데,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기호학파이자 서인의 지도자였던 송시열과 그의 제자 권상하 등이 성리학의 의리와 명분을 상징하기 위해 이 지역에 만동묘를 건립했다. 이들 이후 조선 후기에는 유인석, 한봉수 등이 성리학의 줄기를 이어 가며 의병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전시실에는 서인의 우두머리였던 송시열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조선 시대 송시열의 초상화
조선 시대 송시열의 초상화

 

청주는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동안 수도권이나 과거 역사의 도읍지 등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립 청주 박물관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처럼 지형적인 이점으로 선사 시대부터 빠르게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고대 시대에는 영토 쟁탈전의 무대이기도 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또 다른 수도의 역할을 해냈으며, 고려 시대에는 불교와 직지의 고장,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의 명맥을 이어 왔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언제나 늘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도 국립 청주 박물관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청주의 숨겨진 역사를 알게 해주는 흥미로운 매개체가 될 것이다.

 

국립 청주 박물관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연락처     043-229-6300

관람 시간 화~금 10:00~18:00 (월요일 휴관)

            토요일(4~10월) 10:00~21:00

            토요일(1~3월, 11~12월), 일요일, 공휴일 10:00~19:00

관람료   무료

* 전시품 음성 안내기 대여 가능 (현장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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