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 조수연 기자
  • 승인 2019.05.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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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상
강감찬 장군상

 

강감찬은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군으로 유명하다. 강감찬이 태어난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강감찬의 생가 터를 낙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낙성대공원에는 안국사와 사리탑식의 낙성대 3층 석탑이 있다. 그리고 낙성대공원에서 도보 5분 정도로 떨어진 곳에 강감찬 생가 터가 있다.

 

강감찬 장군과 귀주대첩

인헌군 강감찬(仁憲公 姜邯瓚 948~1031)은 고려 정종 3년 금주(衿州)에서 태어났다. 금주는 현재 서울 관악산 일대이다. 강감찬의 탄생설화가 있다. 사신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별은 어느 집으로 떨어졌고 마침 그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강감찬이다. 강감찬이 태어난 자리를 ‘낙성대(落星臺)’라고 부른다. 강감찬의 초명(初名)인 ‘은천(殷川)’과 시호인 ‘인헌(仁憲)’을 따와 은천동과 인헌동의 지명이 붙었다.

고려 때 목종(穆宗)을 이어 현종(顯宗)이 즉위하자, 거란은 강조(康兆)의 정변을 구실로 삼아서 고려를 침략하였다. 거란은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다. 거란의 3차 침입이었다. 당시 70세의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20만 8천 대군을 이끌고 적에 맞섰다.

흥화진(興化鎭)은 평안북도 의주이다. 서희(徐熙)가 확보한 강동 6주의 하나로 995년(성종 14)에 구축한 요충지다. 거란군은 압록강 방면의 흥화진을 거쳐 남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거란군의 작전을 간파한 강감찬은 흥화진성 전면의 삼교천(三橋川) 상류 둑을 막고 1만 2천 명의 군사를 매복시켰다. 거란군을 강으로 유인해 둑을 치워서 물을 한꺼번에 내려보내는 수공(水攻)을 펼쳤다. 숨어 있던 군사들도 나와 거란군을 공격했고 거란군 1만 명을 물리쳤다.

소배압은 개경(開京)으로 향했지만 평안남도 자산인 자주(慈州)에서 고려의 부원수 강민첨(姜民瞻)의 공격을 받았다. 개경은 이미 병마판관 김종현(金宗鉉)이 1만 대군을 이끌며 지키고 있었다. 거란군은 개경에서 멀지 않은 황해도 신은현(新恩縣)에 도착했으나 개경을 함락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회군하려 했다. 거란군이 청천강 유역의 연주(漣州)와 위주(渭州)를 지날 때 강감찬은 다시 거란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귀주(龜州)에서 김종현의 공격에 달아나는 거란군을 뒤쫓아 섬멸했다. 석천(石川)을 지나 반령(盤嶺)까지 추격을 받은 거란군은 2천 명만이 살아 돌아갔다. 이를 귀주대첩(龜州大捷)이라 부른다. 귀주는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이다.

강감찬이 개선할 때 현종이 영파역(迎破驛)까지 마중을 나가 금으로 만든 꽃 여덟 가지를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었다고 한다. 귀주대첩 이후 거란에서는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고려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국경 주변에 천리장성을 쌓았다.

 

영웅의 설화

낙성대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강감찬에 대한 다양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역사기록뿐만 아니라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강감찬과 관련해 65편의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조금씩 변이되기도 하고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 민중들의 기억 속의 남은 강감찬의 영웅적 면모 때문일 것이다. 설화 몇 가지만 소개한다.

 

문곡성(文曲星)과 염정성(廉貞星)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강감찬의 탄생설화를 전하면서, 송나라 사신이 와서 강감찬을 만나보고는 문곡성(文曲星)의 화신(化身)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을 보고 염정성(廉貞星)의 화신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로 문운(文運)을 주관하고 염정성은 북두칠성의 다섯 번째 별로 형살(刑殺)을 주관한다. 강감찬이 갑과(甲科)에 장원급제하여 문하시중까지 지낸 문신이면서도 거란군을 물리친 무장이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숫대

강감찬은 어린 나이로 원님에 부임했다. 아전들은 강감찬이 너무 어리다고 무시하였다. 강감찬은 아전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집어넣어 보라고 했다. 수숫대는 소매 속에 다 들어가지 못했다. 강감찬은, 겨우 1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 속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호랑이

<용재총화(慵齋叢話)>에 호랑이 관련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강감찬이 한양 판관이 되었을 때 호랑이가 백성을 해쳤다는 민원을 듣게 되었다. 강감찬은 종이에 첩(貼)을 써서 아전에게 주면서 ‘내일 새벽에 북동에 가면 늙은 스님이 바위에 앉아있을 것이니 데리고 오너라’고 했다. 아전이 그 말대로 가보니 스님이 있어 편지를 주었다. 스님이 오니 강감찬은 ‘너는 짐승이지만 영물이기도 한데 어찌 사람을 헤치느냐. 닷새를 줄 터이니 무리를 데리고 떠나라.’며 꾸짖었다. 스님은 호랑이로 변했다가 다시 스님의 모습을 하고 물러났다. 이튿날 호랑이들이 강을 건너 한양을 떠났다고 한다.

 

역사와 휴식이 만나는 낙성대공원

낙성대공원은 강감찬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1973~1974년 2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에 위치한다. 관악구는 1988년부터 매해 10월이면 이곳에서 인헌제를 지낸다.

 

낙성대공원
낙성대공원

 

안국사

낙성대공원에 있는 강감찬의 사당이다. 강감찬은 귀주대첩 후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이라는 호를 받았다. 강감찬의 호를 따와 이곳을 안국사라고 이름 지었다. 방형 육면체의 화강암으로 담장이 둘러싸여 있다. 외삼문에는 안국문(安國門)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안국사 안은 정원으로 깔끔하게 조경되어 있다. 정원 왼쪽에는 낙성대 3층 석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고려 강감찬 장군 사적비가 있다. 정원 안의 낮은 계단을 올라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사당이 나온다. 안국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정면은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관람객들이 향을 피울 수 있다.

 

안국사
안국사

 

고려 강감찬장군 사적비
고려 강감찬장군 사적비

 

낙성대 3층 석탑

화강암 자재에 ‘강감찬 낙성대’라고 새겨져 있다. 높이 4.48m의 사리탑식 3층 석탑이다. 본래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었으나 낙성대 공원을 조성하면서 옮겨왔다. 원래 3층 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2m의 유허비를 세워 놓았다.

 

낙성대 3층 석탑
낙성대 3층 석탑

 

강감찬 전시관

강감찬을 소개하며 어린이들도 보기 쉽게 자료를 전시한다. 전시관은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의 탄생’ 구역에서는 강감찬의 탄생 설화를 소개한다. ‘별빛의 영웅’ 구역에서는 고려 역사와 대외 정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강감찬이 거란군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전한다. ‘별이 비춘 세상’ 구역은 강감찬 관련 설화를 소개한다. 낙성대 3층 석탑과 강감찬 장군상을 색칠하는 체험활동과 트릭아트 포토존으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게 했다. 전시관 뒤편의 영상실(다목적실)에서는 ‘명장, 강감찬’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강감찬 전시관
강감찬 전시관

 

영상실
영상실

 

강감찬 전시관

관람 시간  화~금 10:00~18:00, 토·일·공휴일 10:0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전시해설 및 체험프로그램  매주 수·목요일(사전예약)

문의 전화 879-5618 / FAX 879-7820

 

별이 떨어진 곳, 강감찬 생가 터

강감찬이 태어난 집터이다. 낙성대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관악구 낙성대동 218-14에 위치한다. 낙성대 3층 석탑이 본래 있던 자리이다. 이곳에는 강감찬과 함께 자랐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있었다. 향나무는 높이 17m, 둘레 4.2m의 큰 나무였다. 1968년 서울특별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나 그다음 해에 고사되어 지정보호수에서 해제되었다. 이후엔 생가 터의 소유자가 바뀌면서 향나무가 잘려진 후 분실되었다. 수소문을 하여 2014년엔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의 밑동 하나를 찾았다. 현재 강감찬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지금 강감찬 생가 터에 있는 나무는 1996년 수령 150년 된 나무를 구해 대체해 놓은 것이다.

 

강감찬 생가 터
강감찬 생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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