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路 문화재 탐방 4
지하철路 문화재 탐방 4
  • 이승리 기자
  • 승인 2019.07.0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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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정문이다.
환구단 정문이다.

 

예부터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조상들은 맑은 마음으로 정안수를 놓고 빈다거나 서낭당 앞에서 정성스럽게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다.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신성시 여기는 매개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비는 행위를 했고, 그 마음이 닿아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천하를 다 가진 듯 보이는 한 나라의 황제 역시 그랬다. 조선이라는 땅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새 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황제는 ‘독립’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하늘에 닿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녀야 했다.

 

‘독립’이라는 시대 염원을 담은 하늘과 땅의 공간 ‘환구단’

-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시청역 6번 출구로 나가면 서울광장을 지나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운 문 하나가 보인다. 언뜻 봐서는 어떤 공간인지 추측하기 어렵기만 하다. 콘크리트로 지은 높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주변 경관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나무와 기와를 소재로 해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이곳이 바로 ‘환구단 정문’이다.

환구단 정문은 대한제국 초기 환구단을 건설하면서 그 정문으로 지은 것으로 원래는 현재의 자리가 아니었다. 원래 위치는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변에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철거가 결정되면서 그 소재가 모호해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잊혔다.

그러나 그 소재가 정확히 파악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그린파크호텔 재개발’이다. 2007년 서울 강북구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은 재개발을 단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활용했던 문이 환구단 정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환구단 정문은 다시 세상 앞에 나올 수 있었다. 다만 더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래 자리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세워지게 되었다.

환구단 정문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한제국 황실문장인 오얏꽃 문양 봉황문 등이 장식되어 있어 심미적으로나 사료적으로나 그 역사적 가치를 추론해 볼 만하다. 문의 형태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삼문(정면으로 보아 3칸의 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가운데 칸이 넓고 양측 칸은 좁은 것이 특징이다.

이 정문 옆에는 환구단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호텔 건물 사이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시설인 환구단이 자리 잡고 있다. 덕수궁과 마주 보는 위치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로 인해 이곳에 지어졌다고 한다.

‘황단’, ‘원구단’, ‘원단’이라고도 불리는 ‘환구단(圜丘壇)’은 사적 제157호로, 당시 왕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이 설계해 1897년 건축되었다.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은 연호를 바꾸고, 즉위하면서 조선 후기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었던 자리에 제국의 예법에 맞춰 환구단을 만들었다. 고종이 1897년 10월 11일 이 환구단에서 제사를 올린 뒤 황제에 즉위하면서 독립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가 부여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환구단은 건설 당시의 구성을 다 갖추지 못하고 있다. 원래 환구단은 지붕이 있는 원형 제단으로 제를 올리는 환구단과 황궁우, 주변 시설인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이 있었으나,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돌로 만든 북, 삼문, 협문 등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정철도호텔을 지으면서 일부가 소실된 것이다.

 

환구단 협문이 보인다.
환구단 협문이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인 황궁우는 3층 팔각 건물로,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1, 2층은 통층(通層 하나로 트여있다), 3층은 각 면에 3개의 창이 내어져 있다. 조선 시대의 건축양식도 엿볼 수 있는데 청동으로 만들어진 토수(목조 건물 네 귀의 추녀 끝에 끼우는 기와)가 그렇다.

 

황궁우 전경이다.
황궁우 전경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토수가 보인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토수가 보인다.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인 석고는 1902년 고종 황위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이다. 3개의 돌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로서 당시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된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돌북이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돌북이다.

 

명칭은 다르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의 환구단은 기존 환구단과는 건립 이념이 다르다. 기우제를 지내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곳에서 한층 더 나아가 자주독립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당시 열강들의 빈번한 침략으로 정세는 어지러웠고 나라는 위태로웠다. 조선의 폐막과 대한제국의 개막의 기로라는 혼돈의 시대 속 환구단은 희망의 공간이었다. 주권을 되찾아 ‘독립’을 이루고 나라의 안위를 꾀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하늘에 전하는 연결통로의 장소였던 것이다. 외교권과 주권을 차례로 빼앗기게 되면서 환구단도 본래의 자태를 잃어버리게 됐다.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추측할 수 없는 환구단의 복원 모습은 을사조약, 일제 강점기로 고단했던 나라의 아픔 그 자체다.

 

환구단

위치         서울시 중구 소공로 81

관람 시간  07:00 ~ 21:00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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