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그린 잊지 못할 ‘위안부’ 이야기
그림으로 그린 잊지 못할 ‘위안부’ 이야기
  • 이승리 기자
  • 승인 2019.07.0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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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전경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 이야기' 전시장 전경이다.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타고난 ‘한국’은 내륙과 바다 건너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받아 왔다. 하지만 거대한 병력을 바탕으로 신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들을 상대로 기지를 발휘해 국가를 지켜 냈고 그 기록을 역사로 만들어 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역사를 쌓아 가면서 다 승리의 기록만을 채울 수는 없었으니 지워 버리고 싶은,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줄의 아픔이 과거라는 시간에 남아 있다. 그 아픔의 기록 중에는 여전히 처절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피해자에게 위로를 전하지 못한 ‘위안부’ 문제가 있다.
 

지난해 서울 시청 시민청 지하 1층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진행됐다. 서울시가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 이야기’를 개최한 것이다. 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그리고, 그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경신 화가와 미술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경신 화가는 1993년부터 5년 간 서울 혜화동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강덕경 할머니, 김순덕 할머니, 이용녀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미술치료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을 소박하고 정갈한 연필화로 그려낸 이 화가의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이 화가와 함께 그림을 그린 ‘할머니 미술반’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할머니 미술반’은 총 4명으로 다음과 같다.

미술 수업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한 故 강덕경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표작으로 <빼앗긴 순정>이 있다.

故 김순덕 할머니는 어린 시절 일본군에 끌려간 모습을 그린 <못다 핀 꽃>이 대표작이다. 할머니는 처음에 그림 그리기에 자신이 없어 했지만 꾸준히 수업에 참여해 그림 안에 ‘자신만의 순박한 선’을 표현해내기에 이르렀다.

故 이용녀 할머니는 아들 집과 ‘나눔의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미술 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그리기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며, <자화상>, <끌려가는 조선 처녀> 등의 데생 그림들을 남겼다.

유일한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 역시 거처가 ‘나눔의 집’이 아니라서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으로 <내 마음 별과 같이> 등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당시 대구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수업에 참여할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한다.

전시된 그림 중에는 이 화가와 함께 그림을 그린 총 4명의 ‘할머니 미술반’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특히,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담담하게 상처와 마주한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서는 더 진한 여운이 느껴진다.

작품의 구성은 총 3개 섹션으로 ▲199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미술 수업이 시작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표현하는 심상표현을 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염원이 그림으로 피어나다 등이다.

제1섹션은 이 화가가 처음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미술수업을 하게 된 이야기로 <첫 만남>, <미술수업>, <그림 그리는 세 할머니> 등의 작품이 실렸다.

 

제1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제1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제2섹션에서는 기쁨, 슬픔 등 그림 수업 중 떠오르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수업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복잡한 세상살이>, <심술쟁이 우리 선생>, <붉은 내 입술>, <두려움>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제2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제2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제3섹션에서는 <끌려가는 배 안>, <빼앗긴 순정>,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소녀>, <못다핀 꽃> 등의 작품을 통해 할머니들의 상처가 그림을 통해 치유되고 회복해 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제3섹션 전시 작품들이 이어진다.
제3섹션 전시 작품들이 이어진다.

 

제3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제3섹션 전시 작품들이다.

 

위안부란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던 여성을 말한다. 당시 일본은 만주사변부터 태평양전쟁 등의 전쟁을 치르면서 전장에 나가 있는 병사들의 성적인 위로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위안소를 설치했다. 위안소에 강제 동원된 피해 여성은 비단 조선의 국적자만은 아니었다. 중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전쟁을 통해 점령한 나라의 여성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피해 여성의 구체적인 수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는 여전히 추측만 될 뿐 정확히 그 피해 규모를 수치화시킬 수 없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 주오대학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조선인 여성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렇듯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날이지만, 그래도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변화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희생을 기리고자 1991년 8월 14일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진술한 故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로부터 시작된 그날을 기억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 이야기’ 전시 역시 ‘역사 바로 보기의 장’을 열며 현대인에게 역사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전시는 그림으로 존재하며, 분명 그림으로 기억될 테지만, 우리를 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처와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노력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림 하나하나가 피해자들의 진솔한 목소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세월을 버티고 버티며 살다가, 그 한을 마음에 더는 담아 두지 못하고 용기 내 소리쳤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세상에 들리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도, 진실은 여전히 멀다. 치유되지 못한 채 미제(未濟)로 남은 그 상처의 기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담아낸 전시는 그래서 더 애달프다.

전시 구성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위안부’라는 참혹한 사건을 겪으면서 편히 눈 감을 수조차 없었던, 그 켜켜이 쌓인 한 많은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상처와 고통을 그림 그리기를 통해 승화시킨 할머니들의 모습을 마음으로 스케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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