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불교 역사를 집성한 정림사지박물관
백제의 불교 역사를 집성한 정림사지박물관
  • 송영대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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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박물관 전경
정림사지박물관 전경

 

정림사지는 부여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오랫동안 절터로만 남아 있었다. 부여군에서는 정림사지 옆에 박물관을 조성하여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2006년에 정림사지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며, 그 내부에는 상설 전시실 2관과 기획 전시실이 조성되었다. 박물관의 테마는 백제 불교와 정림사지로 설정되어 각각의 상설 전시실은 백제불교역사관과 정림사지관으로 이름이 붙었다.

박물관은 하늘에서 바라보았을 때 만(卍) 자의 형태로 보이도록 기획되었는데, 실제로 살펴보면 약간 차이가 있다.

 

정림사지를 방문하면 정림사지박물관도 함께 볼 수 있다. 정림사지박물관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에는 박물관 앞에 입구를 두고, 기존 정림사지 쪽에 있었던 입구를 닫아 두었다. 지금은 다시 정림사지박물관 앞의 입구를 폐쇄하고 정림사지 쪽의 입구를 통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문에 현재는 정림사지를 둘러보고 정림사지박물관으로 이동하도록 동선이 기획되었으며, 중간에 2곳의 출입구가 마련되었다.

이 중에서 안쪽의 출입구로 이동하면 둥그스름한 바위에 ‘세계 유산 백제 역사 유적 지구 정림사지’라고 새겨져 있다. 백제 역사 유적 지구의 다른 유적지들은 모두 네모난 표지석을 제작하여 형식이 통일되었음에 반해, 정림사지박물관 옆에 있는 표지석은 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정림사지의 표지석은 유네스코에서 발표 전날에 이미 부여군에서 가져다 놓았고, 세계 유산 등재가 확정되는 즉시 제막하였다. 이렇게 최초의 백제 역사 유적 지구 표지석이 되었으나, 대신 그 형태는 다른 유적지와는 별개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표지석
유네스코 세계 유산 표지석

 

백제의 불교 전래와 융성을 한눈에 보다

정림사지박물관 내부는 오른쪽부터 관람할 수 있도록 구조가 마련되었다. 상설 전시실 중 첫 번째인 ‘백제불교전시관’으로 들어서면 2개의 스크린에 ‘침류왕과 마라난타 그리고 백제 불교’라는 내용의 영상이 자동으로 상영된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동진(東晋)의 마라난타라는 승려가 백제에 와서 불교를 전래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옆으로 이동하면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라는 주제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인도에서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지도가 그려졌고, 작은 화면이 지도의 주요 지점을 이동하면서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앞선 불교 전래 영상과는 다르게 아래쪽의 버튼을 눌러야 영상이 재생된다. 그 맞은편에는 ‘사비성의 사찰 분포’라고 하여 부여 지역의 위성 지도와 함께 부여에 있는 여러 백제 시대 사찰을 표시하였다. 관람객이 각 장소를 밟으면 불이 켜지도록 하였다. 옆면의 벽에는 ‘백제 불교신문’이라는 주제로 침류왕-아신왕, 위덕왕, 법왕-무왕, 의자왕으로 섹션을 두어 전시하였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글이 다소 많다 보니 관람객 중 제대로 보지 않고 지나갈 사람이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를 주제로 한 영상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를 주제로 한 영상

 

불교 역사라는 주제에 맞게 ‘한국·중국·일본의 가람 배치’라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즉 중국·고구려·백제·신라·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사찰 가람 배치도를 그려서 볼 수 있게 했다. 각 나라별로 가람 배치의 방식이 차이 나거나 혹은 영향 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관람객보다 관련 전공자들에게 좀 더 유용하게 만들어졌다. 맞은편에는 ‘사비시대의 가람 입지’라고 하여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서복사지, 금강사지의 가람을 입체 지형도와 위성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옆의 전시실로는 ‘극락정토’라고 적힌 복도를 따라 이동한다. 바닥에는 청색의 조명을 써서 연꽃을 장식하였고, 복도 양쪽은 작은 석등에서 불빛이 나와 길을 조성하였다. 카메라로 촬영하면 빛 노출 시간에 맞춰 조명이 제대로 나타나지만 육안으로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어두컴컴한 모습이다. 개관 당시에 이곳은 화려하고 신비한 조명으로 인상 깊은 장소였는데, 지금은 10년이 지나 노후화되면서 예전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아쉬웠다.

 

옆 전시실로 향하는 '극락정토' 복도
옆 전시실로 향하는 '극락정토' 복도

 

이어지는 전시실은 백제의 건축에 대한 주제로 꾸며졌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정림사지 석탑을 축조하는 석공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맞은편의 벽면에는 석탑의 구조, 부여의 백제 목탑, 백제계 석탑, 백제의 사리 장엄, 왕흥사지 목탑 복원 상상도, 백제의 석등 등의 안내판이 부착되었다. 천천히 그 내용을 음미하며 살펴보면 백제의 불교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백제의 기와 제작 과정과 건물 축조 모습도 마네킹을 이용하여 복원하였다.

백제의 건축물 아래에 들어서면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백제 시대 건물 안을 연상시키는 구조이며, 내부에는 ‘신이 내린 기술의 나라, 백제’라는 주제로 영상이 상영된다. 그 앞에는 ‘의자왕의 바둑판과 바둑알’이라고 하여 커다란 테이블처럼 생긴 바둑판이 위치한다. 각종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바둑판에는 낙타와 같은 이국적인 동물도 그려져 있다. 이 바둑판은 본래의 유물보다 9배 크게 만들어졌다. 본래의 바둑판은 일본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자단목에 상아를 박아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유물이다. 본래대로라면 검은색과 붉은색의 바둑알도 함께 전시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바둑판만 전시되어 있다.

 

의자왕의 바둑판과 바둑알
의자왕의 바둑판과 바둑알

 

다음으로 넘어가면 백제의 불상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백제의 여러 불상 사진과 함께 백제 불상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또한 건너편에서는 기와 제작 모습과 마찬가지로 불상 제작 과정을 마네킹으로 표현하였다. 복도를 지나 이동하면 백제의 스토리와 백제 불상 만져보기와 같은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복도에서는 본래 영상이 상영되었지만, 지금은 시설의 노후화 때문인지 별도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백제 스토리와 관련하여 예전에는 작은 방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 두었다.

 

백제의 불상 제작 과정 모형
백제의 불상 제작 과정 모형

 

박물관에서 만나는 백제의 정림사

정림사지박물관 중앙에는 작고 네모난 연못이 마련되어 있다. 백제불교전시관과 정림사지관으로 가는 길목에 중앙의 연못과 동쪽의 연못이 유사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걸어가면 정림사지관으로 이어진다.

정림사지관에 들어서면 중앙에 있는 정림사 복원 모형과 함께 벽면에 있는 부여의 백제 유적 지도를 마주하게 된다. 정림사 복원 모형을 보면 중문지를 제일 앞에 두고 전체를 회랑으로 둘러놓았다. 중문지를 지나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 있으며, 그 뒤에는 금당과 강당이 있는 모습으로 배치되었다. 현재 정림사지 유적지에서는 회랑 외에 강당 옆의 건물지 터는 물론 북승방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후대의 것으로 판단해서인지 복원도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다. 정림사 복원 모형을 보면 각종 다양한 복식을 한 사람들의 미니어처도 함께 표현되었다. 중문지와 정림사지 오층 석탑 사이에는 일반 백성들이 탑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으며, 석탑과 금당 사이에는 승려들이 탑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왕과 왕비는 승려 1명과 함께 금당 위에서 탑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어, 백제 시대의 불교 의식을 표현하였다. 정림사지 오층 석탑은 오늘날의 모습을 기본으로 하되, 금색으로 장식한 상륜부가 올려져 화려함을 더하였다.

 

정림사 복원 모형
정림사 복원 모형

 

정림사지관 전체에는 정림사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정리해 놓았다. 정림사 복원 모형 옆에는 정림사 금당 복원 모형이 크게 만들어져 전시되었으며 단청을 칠하지 않아 단출한 모습이다. 맞은편에는 1872년도에 제작된 ‘부여현지도’가 있다. 부여현지도를 자세히 관찰하면 지도 중간 부분에서 부여현을 통과하는 강에 ‘규암진(窺岩津)’이 적혀 있으며, 그 오른쪽에 평제탑과 부여향교가 그려져 있다. 평제탑이라는 표시 옆에는 4층으로 된 정림사지 석탑이 그려졌으며, 신라 김유신과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기념으로 새겼다는 내용이 함께 기재되었다.

 

부여현지도에 표시된 정림사지
부여현지도에 표시된 정림사지

 

전시실 한 켠에는 ‘대당평백제국비명’의 남면 탁본이 걸려 있으며, 주변에는 비문에 수록된 각종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누가 새겼는지, 의자왕 관련 기록은 무엇이 있는지, 백제의 인구가 어떻게 되는지, 왜 정림사지 석탑에 비문을 새겼는지, 나당 연합군의 장군들은 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주제로 비문의 내용을 번역하여 제시하며 설명하였다.

아울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비율과 구조를 그려 놓아서 얼마나 정교하게 제작된 것인지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게 하였다.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도 전시되었는데 불상의 경우에는 복제품을 전시하였고, 기와나 토기의 경우에는 진품을 전시하였다. 정림사가 새겨진 기와에 대해서도 설명해 놓았지만, 정작 이 유물의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정림사지 발굴 모습을 표현한 모형도 전시하였으며 발굴 과정에 대한 내용도 안내판을 제작하여 진열하였다.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부여를 예찬하다

정림사지박물관에서는 2018년 11월 19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 <부여예찬>이라는 주제로 기획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정림사지관의 2층에 있는 기획 전시실에 전시가 마련되었다. 부여의 영정과 부여의 금석 문화재 탁본이라는 두 주제로 구성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각종 영정이 눈에 들어온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표준 영정이 전시되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사비로 천도한 성왕의 영정이다. 백제의 영정을 먼저 제시하고 이후 시대 순으로 영정과 초상 등을 진열하였다. 성왕 영정 다음으로는 백제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무왕 영정이 있다. 무왕 영정을 이어서는 계백·성충·흥수의 영정이 전시되었다. 모두 부소산성의 삼충사에 있던 영정인데 현재 소장처는 정림사지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성왕의 영정
성왕의 영정

 

다음으로 단군 화상이 전시되었다. 가로 33cm, 세로 34cm의 다소 작은 화상으로 근대에 제작된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언욱의 영정도 전시되었는데, 1775년에 제작된 것으로 정언욱영정화기와 호패가 함께 진열되었다. 부여계성군영정과 부여김동효영정, 조응록영정도 전시되었다. 이 중에서 조응록영정은 훼손 상태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

명혜공주태실비와 선조대왕태실비, 의혜공주태실비의 탁본도 전시되었다. 이 중에서 명혜공주태실비는 현재 정림사지와 정림사지박물관 사이에 실물이 보존되어 있다. 탁본 중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여의 부산 각서석이다. 우암 송시열이 쓴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문구를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이 외에 부여의 여러 비석 탁본도 전시되었다.

 

부여의 부산 각서석 탁본
부여의 부산 각서석 탁본

 

<부여예찬> 기획 전시에서는 정림사지박물관에서 소장하는 여러 유물들 중에서 영정과 탁본을 위주로 전시하였다. 부여는 백제로만 기억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여러 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물 중에서 영정과 탁본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정림사지박물관은 처음 개관하였을 당시에는 다양한 기술을 전시에 접목하여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영상과 전시 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작 노후화되다 보니 몇몇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또한 설명이 많은 것은 좋지만 관람객들로서는 다소 번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제 개관한 지 12년이 넘었으니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고 새로운 전시 기법을 도입하여, 박물관이 조금 더 다채롭게 꾸며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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