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쉼터, 서계 박세당 사랑채
스승과 제자의 쉼터, 서계 박세당 사랑채
  • 서용하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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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사랑채 전경
박세당 사랑채 전경

 

경기도 의정부 장암동 한적한 곳에 운치 있고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랑채가 하나 있다. 수락산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있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초가집처럼 보여 쉽게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박세당 선생의 사랑채와 오랜 벗 은행나무

바로 서계 박세당의 사랑채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박세당 선생은 유명한 실학자였다. 당시 실학은 성리학이라는 주류 정치학에 반하는 이른바 잡학 정도로만 인식되던 시대였다. 때문에 박세당 선생 역시 자신의 개혁 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일생에 있어 정계에 나가 자신의 철학을 실현시키는 것이 꿈이었지만, 자신의 이상과 철학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주류 정치에서 밀리게 되면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나 낙향하여 안빈낙도를 즐기며 살았다. 이렇듯 세상이 뜻에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삶은 이 시대의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미덕이 아닐까?

 

사랑채와 은행나무
사랑채와 은행나무

 

처음에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조선 후기 사대부가 정도의 규모였으나, 한국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 사랑채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박세당 선생은 이 사랑채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우리가 익히 국사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던 <색경>이라는 농학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사랑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은행나무는 400살이 넘었다고 한다. 의정부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이 나무는 서계 박세당 선생을 기억하고 있을까? 박세당 선생과 그의 제자들은 이 은행나무를 벗 삼아 공부했으리라. 이 은행나무 옆에 앉아 쉬고 있노라면 박세당 선생이 어떤 이였는지 속삭여 줄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랑채와 은행나무의 조화는 학업을 벗 삼은 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음에 틀림없다.

 

박세당 사랑채 내부 (출처 서계문화재단(서계 종가))
박세당 사랑채 내부 (출처 서계문화재단(서계 종가))

 

소박함, 편안함, 엄격함이 묻어 나오는 공간

물론 한국 전쟁 때 많이 소실되었다고는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랑채 자체만으로도 박세당 선생의 검소함과 소박함이 느껴졌다.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이 나그네들이 지나다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곳처럼 편안함이 묻어 나왔다. 이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규모로 남쪽으로 날개집 형식의 누마루가 덧붙은 형태라고 한다. 또한, 이 사랑채의 가장 큰 특징은 서향(西向)으로 지어졌다는 데 있다. 즉 문이 서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인데, 보통 남향집을 최고라고 친다는 사실을 그때의 박세당 선생은 몰랐을까? 해답은 본 글의 마지막 사진 속에 있다.

박세당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며 책을 집필했던 사랑채에서는 정계를 떠나 소박하게 지내던 그 모습이 연상된다. 이곳에서 제자를 혼내기도, 또 보듬어 주기도 했었으리라. 사랑채 안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박세당 선생은 바깥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은행나무와 도봉산
은행나무와 도봉산

 

도봉산을 뒤로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앞서 사랑채를 남향이 아닌 서향으로 지은 박세당 선생의 뜻이 위의 사진에 담겨 있다. 박세당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밑에서 수학하던 제자들이 종종 바람을 쐬며 쉬었다는 은행나무와, 저 멀리 보이는 도봉산의 산자락이 눈에 그림처럼 폭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놓치기 싫어 박세당 선생은 사랑채를 남향으로 짓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때론 마루에 나와 손님과 차를 마시거나, 후학을 양성하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도봉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누그러뜨렸으리라. 도봉산의 절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글을 읽는 박세당 선생의 마음을 필자도 처마 끝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잠시나마 느껴본다.

겨울이라 추워 처마 끝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순 없었지만 잠시라도 서계 박세당 선생의 삶을 느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모두 앞을 향해 쉼 없이 달리고 있다. 돈, 명예, 출세 등을 위해 간혹 물불 가리지 않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앞만 보며 사는 삶이란 항상 부족하고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수 없다. 가끔은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다. 박세당 선생의 사랑채를 보며, 이 삶은 뒤로 물러난 포기가 아니라 용기 있고 지혜가 묻어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만나고 배우고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각자의 마음속에 진정한 스승 한 분쯤 모시고 싶다면 서계 박세당 선생의 사랑채를 방문해 보자. 사랑채와 은행나무,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욕심과 사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 사랑채 전경과 외부는 누구라도 볼 수 있지만, 내부는 사전에 연락하여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서계문화재단 031-836-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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