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의 선구자 한정동 시인과 동요
아동 문학의 선구자 한정동 시인과 동요
  • 박기범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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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동선생의 묘지 인근에 있는 공원. 시흥시는 2016년에 이곳에 따오기 노래비를 세웠다.
한정동선생의 묘지 인근에 있는 공원. 시흥시는 2016년에 이곳에 따오기 노래비를 세웠다.

 

따오기는 저어샛과의 물새로 해방 무렵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우리나라에서는 멸종했다. 따오기는 우리에게 물새보다는 동요로 더 익숙하다. “보일 듯이~보일 듯이~보이지 않는 (중략) 잡힐 듯이~잡힐 듯이~잡히지 않는~”하며 부르는 동요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불러 봤을 것이다.

 

윤극영이 곡을 붙이면서 동요로 애창

본래 동요 <따오기>는 한정동 시인의 동시이다. 여기에 작곡가이자 아동 문학가인 윤극영이 곡을 붙이면서 널리 알려졌고, 광복 전부터 많은 아이들이 즐겨 불렀다. 한정동은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따오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한정동은 등단 초기에는 민족적인 슬픔을, 후기에는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오기>는 처량한 새소리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담아낸 동시다. 부모를 잃은 슬픔은 일제 강점기의 나라 잃은 슬픔을 상징한다. 한정동은 이렇게 민족적 아픔을 동요에 담아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그만큼 이 노래는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잘 담아내고 있다.

한정동은 아동 문학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20~1930년에 왕성한 활동을 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묘는 현재 시흥시에 있으며 묘지에는 동료 아동 문학가들이 세운 동요비와 묘비가 있다. 시흥시도 2016년에 묘지 인근 공원에 따오기 노래비를 세우고 그의 삶을 기리고 있다.

 

시흥시 행고랑골 입구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정동 시인의 묘를 찾을 수 있다.
시흥시 행고랑골 입구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정동 시인의 묘를 찾을 수 있다.

 

한정동 시인의 묘를 찾아가는 길

한정동의 묘는 시흥시 산현동 산5-1번지 일원이다. 이곳은 한 교회가 신도들의 영면을 위해 마련한 묘지이다. 그런데 한정동의 묘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묘역에서 두어 번 길을 헤맨 뒤에야 묘를 찾을 수 있었다. 주소를 따라 길을 찾다 보면 큰길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작은길을 만나게 된다. 길을 따라 산으로 향하면 컨테이너와 공장 몇 곳을 지나 ‘따오기 동요비’라는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이정표가 빛이 바래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 길을 걸으면서 전신주나 가로등 위를 잘 살펴봐야 찾을 수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선 뒤, 작은 도랑을 건너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아리송하다. 방금 보았던 이정표는 길에서 우측으로 100m를 가라고만 되어 있고 이후의 방향은 안내되어 있지 않다. 주변을 살펴보니 왼쪽 길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듯 보인다. 하지만 한정동의 묘는 도랑을 건너자마자 오른쪽의 숲길로 향해야 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묘비가 두 개인 묘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한정동의 묘다.

유명한 시인의 무덤이라고 해서 화려하거나 웅장한 모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묘의 크기가 고인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묘 앞에서 묵례를 올렸다. 웅장하지 않은 평범한 묘였지만, 한적한 산속에서 시인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정동 시인의 묘와 묘비
한정동 시인의 묘와 묘비

 

동료와 제자들이 세운 동요비와 추모비

한정동의 묘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하나는 아동 문학가 동료들이 세운 동요비이고 다른 하나는 한정동의 제자들이 세운 추모비이다. 동요비에는 <따오기> 시 원문이 새겨져 있고, 추모비에는 그의 삶이 소개되어 있다. 동요비와 추모비를 통해 한정동에 대한 애정과 아동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추모비에는 한정동이 항상 옳은 일을 위해 노력했고, 항일과 반공의 본보기를 보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또한, 한정동아동문학상을 만들어 후진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했다고 적혀 있다.

 

동료 아동 문학가들이 세운 따오기 동요비
동료 아동 문학가들이 세운 따오기 동요비

 

한정동은 1930년에 <굴레 벗은 말>을 발표했다. 이 시는 굴레를 벗은 말이 산과 들을 거침없이 뛰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그러나 이 시의 ‘굴레’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일제였고, 굴레를 벗고 싶은 말은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한정동은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총독부가 원고를 사전 검열하는 상황에서도 동요를 통해 독립의 중요성과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평생을 옳은 일을 위해 노력하고, 항일과 반공의 본보기로 일관했다”는 추모비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또한, ‘한정동아동문학상’은 시인이 원고료와 상금 등을 모아 마련한 제도로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아동 문학계의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지역 문화 발전 위한 활용 기대

한정동 묘에서 900m가량 떨어진 작은 공원에는 2016년 시흥시에서 건립한 따오기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는 따오기 원문과 한정동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원에 노래비가 마련돼 공원을 이용하는 누구나 한정동과 아동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에는 이곳에서 한정동의 정신을 기리는 ‘제1회 따오기 아동 문화제’도 열렸다. 따오기 노래비가 건립된 곳은 택지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선 마을이다. 이런 곳에 노래비가 건립돼 신·구 주민 간의 화합과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오기 노래비의 모습. 따오기 가사와 시인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따오기 노래비의 모습. 따오기 가사와 시인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아동 문학의 순수성에 주목했던 작가

한정동이 등단한 시기의 아동 문학은 계몽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아동 문학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보다는 훌륭한 어른을 길러내는 수단으로 이해되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한정동은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아픔을, 해방 후에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천진난만하게 담아내는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며 많은 아동 문학가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아동 문학은 아이들만을 위한 작품도 아니고, 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길러내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아이 또는 어른에게도 남아 있는 동심의 세계가 반영된 문학이다. 한정동의 묘를 보며 아동 문학의 순수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동요 <따오기>는 알면서 작가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지난날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앞으로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작가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우리와 대화하고 싶은 작가들의 말이 더욱더 또렷하게 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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