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찾은 이순신, 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여수에서 찾은 이순신, 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 박영진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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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

 

한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 이순신(李舜臣)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수군으로부터 남해안 지역을 보호하면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유례없는 승리의 역사로도 유명하다. 특히 첫 전투였던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도 대첩과 명량 대첩 그리고 전사했던 노량 해전 등은 현재까지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만큼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그가 활약했던 남해안은 현재 국내 여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여수가 있다. ‘여수 밤바다’라고 하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로 여수는 아름다운 바다와 수많은 섬 그리고 바다 위에 펼쳐져 있는 다리 등으로 근사한 풍경을 자랑하는 도시다. 그러나 이런 낭만의 지역은 지금으로부터 520년 전 이순신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필사즉생의 각오로 싸우던 격전지였다. 또한 이순신 관련 드라마에 흔히 나오던 전라도 수군의 중심지인 전라 좌수영(全羅左水營)도 바로 여수에서 위치해 있었다. 지금부터 그 격동의 현장으로 떠나 보자.

 

여수에서 찾는 이순신의 흔적

여수에서는 이순신과 관련한 흔적들을 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이순신의 위대한 공을 기리기 위해 시내 곳곳에 광장을 비롯해 역사 유적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순신이 살아생전 여수를 배경으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왜구를 무찔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후 1601년(선조 34)에는 우의정 이항복이 사당 건립을 제안하여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李時言)의 주관 아래 충민사가 건립되었고 영당에도 영정이 모셔져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이순신 광장은 그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 광장은 여수 해전에서 왜군에게 11전 전승을 거둔 역사적 위업을 기리기 위해 2010년 3월 27일 개장한 광장이다. 이곳에는 실제 거북선을 재현해 놓은 모형과 이순신, 임진왜란과 관련해 작성돼 있는 기념비 등도 있다. 이순신 광장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곳 로터리에는 “민족의 태양, 이순신 장군 동상”이라고 적혀 있는 이순신 동상이 있다.

이순신 광장 앞에는 곧바로 여수 앞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곳이 약 520여 년 전에 왜구들을 격침시켰던 이순신의 무대다. 지금은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어 밤에는 청춘들이 즐기는 낭만포차가 즐비해 있는 곳으로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저 멀리 펼쳐져 있는 바다는 고요한 침묵만 가득한 채 어떠한 말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순신의 정기를 우리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거북선

 

거북선과 그 내부
거북선과 그 내부

 

이제 거북선으로 들어가 본다. 거북선 안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장에 나가 왜적에 싸우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개의 층으로 나뉜 거북선은 크게 전투를 하는 공간과 전투 이외에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주로 1층은 병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놓았고, 2층은 실제 전투 현장에서 대포를 쏘거나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2층에 전시돼 있는 수군 병사들과 진두지휘하는 장군 그리고 밖으로 화포를 쏘기 위해 준비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실제 전투 현장을 방불케 한다. 저 조그마한 구멍에 대포를 꽂아 적군에게 쉴 새 없이 공격을 가하던 모습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얼마나 긴박했을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1층에는 병사들의 휴식 용도로 쓰이는 방과 전투 현장에서 쓰일 포탄을 준비하는 공간 그리고 식량 저장 창고 등이 위치해 있다. 2층이 실제 전투 현장이라면 1층은 2층에서 쓰일 것들과 자신들의 몸을 미리 만들고 대비하는 공간인 셈이다. 저 조그마한 공간에서 오로지 조국에 대한 애정과 신념만으로 버텨 내 이 땅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조선 시대 복장을 하고 행사 중인 모습
조선 시대 복장을 하고 행사 중인 모습

 

짧지만 강렬했던 거북선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광장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향해 온다. 자세히 보니 조선 시대 여인과 수군의 복장을 한 노인분들이었다. 광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이곳으로 향한다. 거북선 앞에서 줄을 맞춰 나란히 선 이들은 어떤 구호를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얼핏 보아 어떠한 의미의 행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조선 수군의 강한 정신을 보여 주기 위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정기, 진남관

이순신 광장 외에도 이순신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있는데, 바로 진남관이다. 진남관은 1963년 보물 제324호로 지정됐다가 38년 뒤인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본래 건물이 있는 자리는 이순신이 전라 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으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그러나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타 소실되자 1599년(선조 32)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부르며 수군의 중심 기지로 사용했다.

이곳이 전라 좌수영 건물로 쓰였다는 것은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알 수 있다. 진남관의 대문 역할을 하는 2층 누각 망해루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진남관이 언덕 위에 있다 보니 이렇게 바다가 바로 보여 지형적으로 수군들이 전술을 짜기에 더없이 좋은 위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망해루는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으나 재복원됐다.

 

전사한 수군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
전사한 수군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

 

안타깝게도 현재 진남관은 2020년까지 보수 공사로 인해 매주 토요일에 방문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 진남관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정면과 측면, 총 75칸이 되는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이나 화랑,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 곳뿐이다. 현재 진남관 입구 왼편에는 비석들 여러 개가 함께 모여 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던 수군들을 위한 비석으로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두 곳을 둘러보고 난 후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낮에 본 바다는 조선 수군과 사람들의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말도 해 주지 않은 채 잔잔한 파도와 바닷물이 들이치는 소리만 들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있자니 필자는 500여 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으로 왠지 모를 어떤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 2019년은 혼돈의 시대다. 매일 같이 새로운 뉴스와 정보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5G와 AI 등을 비롯한 기술 혁신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분명 외적인 환경은 갈수록 윤택해져만 가는 듯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팍팍해지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억압에 눌린 영향 때문인지 흉악한 범죄들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나라와 정부에 대한 불만은 극도에 달했고, 급기야 3년 전에는 이순신 장군이 서 있는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잘못된 정부와 대통령에 일침을 가했다.

이순신이 살아갔던 500여 년 전도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대였다. 비록 정보화된 사회는 아니었지만, 왜적의 침입으로 인해 온 나라는 피폐해졌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가 경제는 물론 나라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극도의 위기와 혼돈이 뒤섞인 시대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충신들이 있었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끝내 임진왜란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비록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같은 땅을 살고 살아갔던 사람들로서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500여 년 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은 조선 조정이 아닌 충신들과 백성들이었고, 2010년대 민주주의에 크게 흠집이 나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던 때에 다시 바로잡고자 일어섰던 것도 국민들이었다. 필자는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렇게 느꼈다. 역사는 물리적인 시간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여수에서 만난 이순신은 바로 그러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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