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의 모든 것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의 모든 것
  • 강태희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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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의 전경
차이나타운의 전경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인천 제물포는 조용했던 어촌 마을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곧 중국인들의 경제 중심지가 되면서 인천 선린동 일대에 청국 조계지가 형성되었고, 화교들이 대거 이 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화교(華僑)’란 해외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중국인과 그 자손들을 일컫는데, 우리나라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수사 제독 우창칭(吳長慶) 휘하 군대와 함께 입국한 40명의 상인들을 한국 화교의 시초로 보고 있다. 사실 한국 화교의 90%는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중국인으로, 이들은 북청 사변(北淸事變)이 일어나자 가까운 한국으로 피난 오게 된 피난민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화교로 거주하게 된 이들은 부두 노동자나 인력거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들이 일하는 시간을 쪼개 빠르게 허기를 달랬던 음식이 바로 짜장면의 시초이다.

중국 산둥 지방 요리 중에는 작장면(炸醬麵)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짜장면의 어원이 되는 요리다. 중국 된장인 미옌장을 불에 달군 양념을 면 위에 올려 야채와 비벼 먹었는데, 작장면은 지금의 짜장면과는 다르게 색도 더 연하고 주로 짠맛이 나기 때문에 둘을 같은 요리로 볼 수는 없다. 이 한국인의 입맛에 점점 맞추어지면서 작장면보다 달콤하고 물기 많은 짜장면이 탄생했다. 즉, 차이나타운에서 배고픈 화교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주던 짜장면에는 화교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근대 한국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한국에서 고된 일을 하던 화교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먹기 위해서는 작장면 같이 양념과 면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면서도 배부른 한 끼 식사가 필요했다. 또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맛으로 점점 짜장면을 찾는 화교들이 늘어나면서, 손수레에 짜장면을 넣고 다니며 즉석에서 면을 담고 위에 양념을 부어 파는 상인들까지 등장했다. 곧 짜장면은 화교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해서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음식으로 선보였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춘장에 캐러멜을 첨가한 달콤한 짜장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조금씩 국민 음식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인천 선린동 공화춘(仁川 善隣洞 共和春)

짜장면을 최초로 팔기 시작한 공화춘(共和春)은 산둥 지방 출신 화교 우희광이 세운 청요릿집으로, 1908년 인천의 선린동에 개업하였다. 사실 초기에는 무역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이었으나 중화요리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식점으로 영업하게 된다. 공화춘은 음식을 만들고 남은 야채들을 춘장에 볶아 면에 올려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 짜장면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경인 지역 5대 청요릿집으로 성업하면서 공화춘은 차이나타운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 화교들의 거주 자격 심사가 강화되고 무역과 외환 거래가 규제됨에 따라서 제도적으로 살기 어려워진 화교들이 본격적으로 인천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공화춘도 1984년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공화춘의 맛과 멋은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옛날의 기억이 되고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차이나타운 패루를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다보면 화려한 중국 문양들로 치장된 중화요릿집 공화춘이 등장한다. 이 공화춘을 옛 공화춘 건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공화춘은 2004년 공화춘 상표를 취득한 CJ의 공화춘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오픈한 새 건물이다. 옛 화교들이 먹던 짜장면의 맛, 그 맛을 다시 차이나타운에서 느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 오픈한 공화춘 건물
새로 오픈한 공화춘 건물

 

옛 공화춘 건물은 근대 한국 문화생활에 가치가 있는 장소로 인정받아 2012년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화춘 건물은 청나라 조계지의 건축 양식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주는 건축 문화재로 당시 중국 산둥 지방의 건축 장인이 직접 참여하여 지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붉은색 벽돌을 사용한 목(目) 자형의 중정형(中庭型) 건물로 마당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복원을 거쳐 건물에는 화려한 색의 타일과 조형물을 붙여 장식하였다. 2006년 4월 14일 등록 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었다. 이 곳에서는 인천 개항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발전해 온 짜장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짜장면을 통해 차이나타운의 문화와 역사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로, 차이나타운을 찾는 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명소이자 문화재이다.

 

짜장면박물관의 내부
짜장면박물관의 내부

 

짜장면박물관

짜장면박물관은 6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차이나타운 화교들과 짜장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제1 전시실, 개항기 인천항 중국인 노동자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있는 제2 전시실, 1930년대 공화춘의 접객실을 재현하고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제3 전시실, 1970년대 중국 음식점을 재현하여 짜장면의 인기를 간접 체험하게 하는 제4 전시실, 오늘날의 짜장면의 모습과 면, 배달통 등 짜장면에 관련된 요소들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제5 전시실, 마지막으로 1960년대 공화춘의 주방을 재현한 제6 전시실까지 이 곳에서는 무려 100년의 세월을 거친 짜장면의 변천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짜장라면의 역사
짜장라면의 역사

 

특히 맛깔나게 만들어 놓은 윤기가 흐르는 짜장면 모형들과 짜장면을 먹는 친구들, 가족들의 행복한 표정을 잘 재현해 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학생 모형들의 빈 옆자리 의자에 앉아 그들과 함께 근대식 짜장면을 즐겨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닥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산둥 지방 화교들의 모형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 옆에는 양념장과 면이 담긴 손수레에서 짜장면을 막 판 것 같은 상인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들은 머리를 하나로 길게 땋은 후 작은 모자를 덮어 쓴 당시 중국인의 모습으로 잘 재현되어 있다.

또 이 곳에서는 짜장라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도 하다. 1970~80년대에 출시되었던 짜장라면들을 전시해 두고 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 ‘짜짜로니’, ‘왕서방 삼선 짜장면’, ‘우짜짜’ 등 진열된 수많은 짜장라면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짜장면의 인기가 얼마나 굉장했는지 알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짜장면을 먹기 전에 짜장면박물관을 먼저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물관 안에서 짜장면의 모든 것을 체험하다 보면 어느새 옛 한국인들과 같이 중화요릿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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