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도 머물며 편안하게 쉬어 가던 곳
임금도 머물며 편안하게 쉬어 가던 곳
  • 박기범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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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객사인 과천 온온사
조선 시대 객사인 과천 온온사


객사는 임금에 대한 예를 올리거나 공무를 위해 지방으로 떠나던 관리들이 이용하던 숙소였다. 조선 시대 지방 관공서 중에서는 위상이 높은 건물이다. 강릉 객사문은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주 객사는 보물 제583호이다. 과천 온온사는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과천 온온사를 방문하기 위해 수도권 지하철 4호선 과천역에서 내렸다. 도로와 아파트 숲을 지나 20분 정도 걷자 온온사(穩穩舍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입구에 도착했다. 얼핏 사찰 이름처럼 들리지만 온온사는 조선 시대 객사이다. 인조 27년(1649)에 지어졌지만 현재 건물은 1986년에 완전 해체 후 복원됐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된 과천 온온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된 과천 온온사

 

객사는 평상시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떠나는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그러나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신성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조선 시대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있었는데, 초하루와 보름이면 고을 수령이 전패를 향해 절을 올리는 예를 행했다. 이를 향궐망배라고 부른다. 향궐망배 때 수령은 임금과 나라를 향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서 객사는 조선 시대 지방 관공서 중에서 높은 위상을 가졌다. 특히 과천 온온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가깝고, 임금이 남쪽 지방으로 행차를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왕이 머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객사에 비해 격식이나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 온온사 원형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복원 당시 낙안객사를 참고했다.

온온사 입구에 도착하자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령이 오래된 고목이었다. 안내문을 살펴보니 수령이 600년 이상 됐으며 나무의 높이는 25m에 달하는 보호수였다. 가을에 노란 은행잎이 가득할 때 방문하면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온온사 입구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온온사 입구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옆으로는 역대 현감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시대 과천현에 부임했던 현감들의 비석을 모아둔 곳이다. 정조 6년(1782)에 건립된 현감 정동준의 비부터 1928년에 세워진 변성환까지 15명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각 비석들은 건립연대가 잘 기록되어 있어 시대별로 유행했던 비석의 양식을 파악하기 좋은 자료다. 급하게 온온사로 향하다보면 지나칠 수도 있으니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잘 살펴보자. 이들도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온온사 입구에는 조선 시대 과천 현감을 지낸 인물들의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다.
온온사 입구에는 조선 시대 과천 현감을 지낸 인물들의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다.

 

은행나무와 역대 현감 비석군을 지나자 온온사가 나타났다. 온온사는 주변에는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뒤로는 관악산 줄기가 뻗어 있는 고즈넉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심에서 잠깐 벗어났을 뿐인데 온온사는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과천 온온사는 인조 27년(1649)에 세워진 건물로 과천현 관아의 부속 건물이었다. 당시 과천 현감이 객사 동헌을 세웠고, 현종 7년(1666)에 객사 서헌이 건립됐다. 온온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문화를 훼손시키려는 일본에 의해 과천면 청사로 사용됐다. 1932년에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원형을 변형해 새로 지었다. 1986년에는 완전 해체 후 전라남도의 낙안객사를 참고해 복원했다. 과천 온온사는 중앙에 정청이 있고, 좌우에 동헌과 서헌이 배치되어 있다. 정청 부분의 지붕은 동·서헌 보다 높게 지어져 있었다. 이런 구조는 조선 시대 객사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다.

 

현륭원 행차 중 머물렀던 정조가 하사한 이름

온온사 정청 내부의 모습.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다. 온온사 동헌과 서헌은 숙박이 가능하도록 온돌로 되어 있다. 온온사 마루에 앉아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온온사보다 키가 큰 아파트와 주택들이 주변에 빼곡하다. 멀리 매봉산과 청계산, 양재천이 있고 뒤로는 관악산 줄기가 펼쳐지는 자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선 시대에는 이 자리가 제법 아름다웠을 것으로 짐작됐다. 실제로 온온사라는 이름은 정조 임금이 지은 이름인데, 아름답고 편안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조 임금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화성에 있는 현륭원으로 종종 행차를 떠났다. 정조 14년(1790)에 행차를 떠난 정조는 잠시 온온사에 들렸다. 과천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멀지 않고, 남쪽 지방으로 행차를 떠날 때 지나야 했던 곳이다. 그래서 과천 온온사는 다른 지방의 객사와 달리 왕이 머물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 규모와 격식을 갖추어 지었다. 온온사에 머물던 정조는 ‘경치가 아름답고, 쉬어가기 편하다’며 온온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지금은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많아 아쉽지만, 여전히 한적하고 여유로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2014년에는 ‘아름다운 경기건축’에도 선정되는 등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온온사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등 과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조 임금은 이곳을 방문해 경치가 아름답고 편안하게 머물기 좋다며 온온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정조 임금은 이곳을 방문해 경치가 아름답고 편안하게 머물기 좋다며 온온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마루에서 일어나 정청으로 들어갔다. 정청은 정무를 보던 공간으로 바닥이 마루였고, 동헌과 서헌은 숙박을 할 수 있는 온돌로 되어 있었다. 온온사 바로 옆에는 과천현 관아지가 있다. 관아지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와 커다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과천현 관아는 발견되는 유물과 수목 등으로 짐작할 때 온온사를 중심으로 한 관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수도와 가까운 탓에 행궁의 기능까지 더해져 다른 지방의 관아보다 규모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온온사 동헌과 서헌은 숙박이 가능하도록 온돌로 되어 있다.
온온사 동헌과 서헌은 숙박이 가능하도록 온돌로 되어 있다.

 

과천현 관아지
과천현 관아지

 

작은 역사 여행 코스로 제격

과천 온온사는 잠깐의 시간으로 수령 600년이 넘는 고목부터 역대 현감의 비석군, 과천현 관아지를 함께 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1시간 20분 코스의 탐방로도 조성되어 있으니 온온사로 작은 역사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과천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시간 날 때 온온사에 들려 마루에 앉아만 있어도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과천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이라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조선 시대 객사를 찾아보자. 전국 곳곳에 조선 시대 객사가 남아 있는데, 객사는 마을의 중심지이면서 경치가 좋은 곳에 마련됐기 때문에 어느 곳을 방문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서 역사의 숨결과 함께하고 싶다면 이제부터 조선 시대 객사에 관심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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