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고향, 정릉의 아리랑고개
한국 영화의 고향, 정릉의 아리랑고개
  • 이선주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리랑고개를 오르내리는 차량들
아리랑고개를 오르내리는 차량들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듣고, 또 불러 봤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부터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등 쉽게 부를 수 있는 ‘아리랑’만 해도 몇 종류가 된다. 민요 ‘아리랑’이 다양한 만큼 ‘아리랑고개’라는 지명을 갖고 있는 곳도 여러 곳인데, 아리랑고개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자.

 

‘아리랑고개’ 얼마나 많나

아리랑고개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명으로,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리랑고개로 불리는 곳은 대개 구불구불 여러 구비를 돌아 산을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다. 우선 대표적인 아리랑고개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아리랑고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2가의 아리랑고개, 강원도 철원군 외학리의 아리랑고개,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부터 전북 완주군 운주면 안심리로 넘어가는 곳에 자리한 아리랑고개,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의 아리랑고개가 있다. 북한의 평안남도 은산군 동삼리의 아리랑고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고개들이 ‘아리랑고개’로 불리게 된 이유도 다양한데, 강원 철원 외학리의 고개는 옛날에 아리랑 타령을 하면서 동냥을 다니다 죽은 중의 무덤이 있다 하여 아리랑고개로 부른다고 한다. 충남 논산~전북 완주의 고개는 일제 강점기 당시 사람들이 이곳에 있던 술집에서 민족의 한을 달래기 위해 ‘아리랑’을 불렀다 하여 아리랑고개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부산 봉래동의 고개는 산세가 험해, 울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리랑 고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명의 유래는 제각기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개인이나 민족의 아픔과 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결국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서울 정릉에 있는 아리랑고개를 찾아가 보고자 한다.

 

영화 <아리랑> 통해 ‘아리랑고개’로 불리게 돼

서울 정릉에 위치한 아리랑고개는 정확히 말하면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돈암사거리 부근인 동소문로 98에서 아리랑시장이 있는 아리랑로 127에 이르는 도로로, 그 길이는 1,450m 정도이다. 예전에는 정릉에 있다고 하여 ‘정릉고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제정된 249개 가로명 가운데 ‘○○대로’, ‘○○로’, ‘○○길’이 아닌 ‘○○고개’로 이름 붙여진 유일한 도로이기도 했다. 현재 이 아리랑 고개는 차도가 되면서 많이 정비되어서인지, 주변에 주택 및 생활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고갯길의 험난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이곳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1926년에 일제에 항거한 민족정신을 형상화한 나운규(羅雲奎)의 영화 <아리랑>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일제 강점기였던 1935년경에 요식업자들이 정릉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용해 고급 요정을 꾸며 놓고 손님들을 끌기 위해 민요 ‘아리랑’의 이름을 붙여 ‘아리랑 고개’라는 표목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마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영화 <아리랑>의 촬영으로 이곳이 ‘아리랑 고개’로 불리게 되자, 요정에서 이 영화의 유명세에 합류해 ‘아리랑고개’라는 표목을 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 <아리랑>은 나운규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무성 영화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초창기에 제작

된 것으로, 3·1 운동 때 잡혀 일제의 고문으로 정신 이상이 된 청년 영진과 일제에 아부하는 반민족적인 기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올바로 살 수 없었던 일제 강점기를 시대상을 그린 영화이다. ‘아리랑 고개’가 담고 있는 민족의 한을 이 영화 역시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고개를 오르는 주민
아리랑고개를 오르는 주민

 

‘아리랑고개’에 민족정신과 예술혼 담아

정릉의 아리랑고개 주변에는 ‘아리랑’이라는 용어를 딴 이름들이 많이 있다. 우선 고개 옆으로 조성된 작은 공원에는 아리랑쉼터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또한 성북구민들을 위한 도서관인 아리랑도서관, 아리랑어린이도서관과 영화관인 아리랑시네센터도 자리하고 있다.

 

아리랑쉼터
아리랑쉼터

 

아리랑어린이도서관
아리랑어린이도서관

 

세 기관 모두 성북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리랑시네센터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촬영된 곳에 위치한 영화관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선두주자이자, 독립투사로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헌신한 나운규의 영향과 의미를 되살려 2014년 3월 재개관하였다. 아리랑시네센터 앞에는 김규동 시인의 ‘별의 노래’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조국의 독립운동과/근대 민족예술의 찬연한 길을/한꺼번에 열어 주신 분/영화 <아리랑>은/천 년을 두고/잊혀지지 않을 겨레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부분은 아리랑시네센터가 나운규의 예술 정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김규동 시인의 ‘별의 노래’ 시비
김규동 시인의 ‘별의 노래’ 시비

 

아리랑시네센터는 독립 영화 배급 및 상영 활성화와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성북구청과의 협약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독립 영화뿐만 아니라 일반 상업 영화도 상영하고 있으며, 공연 예술 다목적관으로의 기능도 갖추고 있어, 영화 상영 및 영화제, 콘서트, 뮤지컬 등을 공연하고 있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의 지상 2층에는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방송 스튜디오가, 지상 3층에는 강북권 유일의 독립 영화 전용관이 있어, 지역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리랑시네센터 내부
아리랑시네센터 내부

 

아리랑고개의 도로 옆 인도에는 아리랑 영화의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1997년부터 영화 관련 전문 인사로 구성된 ‘아리랑 영화의 거리 자문위원회’를 조직하여 거리를 조성하였다. 거리가 만들어진 초반에는 국내외 유명 영화 포스터 166개를 실물 크기의 청동 부조로 재현하여,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된 1926년을 기점으로 2000년까지의 작품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청동 부조는 철거된 상태이고, 보도블록에 영화와 관련 간략한 정보들이 쓰여 있을 뿐이다. 바닥에 글자만으로 남겨져 있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정릉의 아리랑고개는 비록 외관상으로는 험난했던 민족의 삶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민족정신과 예술혼을 현대에 맞게 표현해 내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통해 정릉의 아리랑고개가 한국의 중추적인 문화 인프라로 구축되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정보가 적힌 아리랑고개 인도
영화 정보가 적힌 아리랑고개 인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