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도심에 있다고?! 남산골 한옥마을
한옥이 도심에 있다고?! 남산골 한옥마을
  • 서용하 기자
  • 승인 2019.07.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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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 전경 (출처 남산골 한옥마을 축제기획팀)
남산골 한옥마을 전경 (출처 남산골 한옥마을 축제기획팀)

 

한옥은 불과 100년 전 우리 삶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늘어선 적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 우리는 잊고 살아왔다. 이제는 머나먼 이야기처럼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서울 충무로역 3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가면 바로 우리의 전통 가옥, 이전 복원된 남산 마루 밑 한옥 다섯 채를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남산골 한옥마을 입구는 그리 웅장하지 않다. 소소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웃집에 방문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입구로 들어서면 우리 조상들이 정자를 짓고 풍류와 여가 생활을 했던 곳, 남산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한복 차림 모형의 포토 존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천우각, 물결 속에 비친 내 마음?

천우각은 조선 시대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 있던 곳이라고 한다. 누각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잔잔한 호수에 비친 누각을 보노라면 필자 마음속의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바람에 따라 물결이 요동칠 때 천우각이 흔들리는 모습은 필자의 안정과 불안을 살포시 담아내는 것 같았다. 연인 또는 친구와 물결이 일 듯 관계가 소원해질 때 함께 천우각 위에서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면 요동치는 물결도 금세 잔잔해질 것이다.

 

천우각
천우각

 

관어정, 고기가 춤을 춘다?

관어정은 멀리서 보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오두막처럼 느껴진다. 한겨울이라 물이 얼어 고기는 보지 못했지만 한구석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물레방아는 쉴 새 없이 돌았던 여름을 보내고 겨울잠을 자는 모습처럼 보였다. 여름에 편하게 앉아 고기를 구경하며 참외 한 조각 입에 물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듯싶었다.

 

관어정
관어정

 

조선 시대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옥 다섯 채가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본다. 사극의 한 장면처럼 “이리 오너라” 하고 불러 보고 싶어진다. 마치 필자가 조선 시대로 돌아가 양반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옥인동 윤씨의 가옥을 찾았다. 이 가옥은 대략 1910년대에 지어졌다고 알려진다.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건축 구조와 세부 기법은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옥인동 윤씨 가옥 (이하 출처 남산골 한옥마을 축제기획팀)
옥인동 윤씨 가옥 (이하 출처 남산골 한옥마을 축제기획팀)

 

현대인은 보기 힘들 아궁이가 눈에 띈다. 시골에나 가면 있을까? 특히 어린아이들은 “저게 뭐야” 하며 생소해 할 것 같다. 당시에는 저렇게 손수 아궁이에 불을 때며 솥에 밥을 했으리라. 아궁이 위에 걸쳐진 솥을 보니 따뜻한 솥 밥을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궁이는 사랑채에 온기를 전해 주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보일러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땔감을 만들고 불을 지피는 땀방울 그 자체가 곧 따스한 온기였을 것이다.

윤씨 댁을 지나 이번에는 관훈동 민씨 가옥으로 가 보자. 이 집은 민영휘(閔泳徽, 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였다. 전체 배치는 사랑채 뒤로 안채와 별당채를 구성하고 담과 문으로 적절하게 공간을 나눴다. 보통 ‘ㄱ’ 자형으로 꺾어 배치하는 편인데, 부엌과 안방을 나란하게 놓았다. 이 밖에도 고주 두 개를 세워 짠 넓고 큰 목조 구조와 여섯 칸에 달하는 부엌의 규모, 마루 밑에 뚫려 있는 벽돌 통기구 등은 당시 일반 가옥과 달랐던 최상류층 주택의 특징이라고 한다.

 

관훈동 민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사랑채에 들어가 보니 안에서도 시원하게 마당이 내다보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한쪽 처마 밑에 앉아 밖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시름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탁 트여 서로 연결돼 있는 내부 모습을 통해 여백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선조들의 생각을 사랑채 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상류층의 삶이었던 까닭인지, 바로 옆 우물까지 있었다. 우물은 직접 사용한 적은 없지만 어릴 적 본 기억은 어렴풋이 나는 것 같다. 우물을 길어 물 한 잔 마실 수 있는 체험도 제공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사 마시는 생수하고는 분명 맛이 다르지 않을까?

 

민씨 가옥 사랑채
민씨 가옥 사랑채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본 것은 커다란 장독대였다. 장독대는 꼭 옛 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필자가 어릴 때 시골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장독대에서 우러나는 김치와 된장, 고추장 맛을 어찌 지금의 김치와 비교할 수 있으랴. 필자는 직접 장독대를 사용해 본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적 김장철에 어머니가 힘들게 김장하던 모습, 방금 담근 김치를 입에 넣어 주던 어머니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장독대는 한마디로 어머니의 따스한 손맛이자 가족의 소중한 보물 창고다.

 

민씨 가옥 사랑채
민씨 가옥 사랑채

 

천년 타임캡슐, 200년 후 우리의 모습은?

가옥에서 나와 천년 타임캡슐을 묻은 광장으로 가 보았다. 남산 타워가 더욱 가깝게 보였고, 전망이 좋은 ‘망북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이하여 서울의 모습과 시민들의 생활을 대표하는 문물 600점을 캡슐에 담아 매장했다고 한다. 그 600점 안에는 필자가 생활했던 이야기도 분명 들어가 있을 것이다.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 29일에 타임캡슐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과 100년도 안 된 조선 시대 때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새로운데 200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어떤 감흥을 느낄까?

 

천년 타임캡슐
천년 타임캡슐

 

한옥마을 주변에는 도심 속 쉼터처럼

어렸을 적 추억에 잠길 수 있는 놀이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흔히 ‘비석치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전에는 ‘비사치기’로 실려 있는 놀이가 있다. 이외에도 비사잭기, 비켜치기, 자새치기, 망깨까기, 목자치기, 비석까기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고 한다.

주로 남자아이들이 많이 하던 전국적인 인기 놀이였는데, 놀이의 이름에 대한 추측은 크게 두 가지다. 탐관오리의 공을 기리는 송덕비를 돌이나 발로 차는 것이 놀이로 진화됨으로서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것과, 단순히 날아다니는 돌이라서 비석(飛石)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어렸을 적 필자도 비사치기는 많이 했는데 이제 와서 그때의 친구들과 놀이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시에는 이기고자 했지만 지금은 함께 웃으며 비석을 칠 것 같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전통 문화재를 관람하는 느낌보다는 현대인들이 도심 속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직장이 근처에 있다면 점심 식사 후 잠깐 방문해 한 바퀴 돌 수도 있는 그런 편안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활 만들기, 떡 빚기, 다례 등도 다채롭게 이어진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색 체험도 하고, 커피와 전통 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전부리도 준비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천연 잔디는 아니어서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푸른색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이다.

 

카페 '달강'의 내부
카페 '달강'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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