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예술, 서예
문자의 예술, 서예
  • 권민정 기자
  • 승인 2019.07.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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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상형 문자의 원형을 그대로 지닌 한자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전해진 것은 고조선 시대로 추정되니 우리나라의 서예는 약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행위로써 서예의 중요한 목적은 일상이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었을 터. 하지만 이는 서예의 단편적인 면모만 바라본 것이다.

‘서예書藝’란 한자를 해석하면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로 풀이된다. 단순한 글쓰기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서(書)’의 한자를 뜯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聿’ 다섯 손가락으로 붓을 잡고, ‘曰’ 말하다.’ 즉 다섯 손가락을 통하여 붓으로써 무언가를 토로하는 것이란 해석이 된다.1)

 

붓으로 나를 표현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조상들은 종이 위에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을 심신을 단련하고 마음의 혼을 문자에 담는 일련의 과정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서예를 통해 무엇을 말했던 걸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한국양명학회 제49호 논문집>에 실린 ‘조선 유학자들의 서예 인식에 관한 연구(장지훈, 2018)’에 따르면 조선 시대 학자들은 학문 사상과 서예를 연계 지어 서예의 예술성, 윤리성을 다양하게 피력하였다고 한다. 덧붙여 퇴계 이황은 성리학적 심성론에 기인하여 궁극적으로 敬, 즉 공경의 자세로 일관하면서 마음을 단련하는 법을 서예의 본질로 상정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우암 송시열은 곧은 마음의 자세를 중요시했고, 원교 이광사는 자기 진정의 참다움을 구현하는 것으로 서예를 해석했다. 대체적으로 서예는 인정칙서정(人正則書正), 해석하자면 ‘글을 쓴 사람이 올바르면 곧 그 글도 올바르다’라는 서예관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서예는 사람마다 그 필체가 다르다. 사람마다 글씨의 점, 획, 짜임 등이 달라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서예의 예술성을 감안한다면 그 표현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서예와 일종의 친척 지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엽서 위에 예술 작품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글씨를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서예적 기법에 디자인이 가미된 서양의 캘리그래피는 포스터, 책 표지, 상품 패키지 등에서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서예도 캘리그래피도 ‘자신만의 방법 문자를 종이 위에 표현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서예와 캘리그래피는 도구적인 측면에서 엄연히 다르다. 서예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도구가 준비되어야 한다. 먹, 벼루, 붓, 종이를 뜻하는 이른바 ‘문방사우’가 그것이다. 가장 먼저 벼루에 먹을 담아 적당한 시점이 될 때까지 정성 들여 먹을 갈아야 한다. 먹을 갈며 마음도 갈고 닦는 이 행위는 서예와 캘리그래피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먹은 구성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소나무를 태워서 생긴 그을음을 받아 향료, 사향 등을 섞은 ‘송연묵’, 식물의 씨에서 얻은 기름을 태워 만드는 ‘유연묵’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석묵, 유송묵 등 다양하다. 붓 또한 마찬가지. 말, 쥐, 노루, 족제비 등 다양한 동물의 털이 사용된다. 털의 탄력이나 크기에 따라 과거에는 수십 종의 붓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

어떤 종이 위에 어떤 크기의 붓으로 쓸지, 어떤 벼루 위에 어떤 먹을 갈지는 옛 조상들에겐 사뭇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모든 준비가 제대로 갖춰진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썼을 문장. 종이 위에 새긴 고결한 마음과 정신은 후대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호(韓濩)가 있다. 우리에게 한석봉으로 유명한 인물로 조선 중기의 서예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한호 해서첩>의 설명에 따르면 한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격려로 서예에 정진하여 왕희지(王蓍之)·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혔고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 등에 능하였다고 한다. 안평 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조선 초 4대 서예가로 꼽힐 정도로 그 필치가 뛰어나 명(明)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국가의 문서를 다루는 서사정식(書寫程式)을 이룰 만큼 독창적인 서풍(書風)을 확립하였으며 그로부터 사자관체(寫字官體)가 형성되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나, 외형의 미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서체라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고 한다. <한호 해서첩>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호가 평소 절친했던 간이당 최립의 시문 21편이 단정한 해서로 필사되어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서체로는 추사체(秋史體)가 있다. 추사체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체다. 조선 시대 후기 문신이며 문인이자 금석학자 겸 서화가로, 경의와 서예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18년 4월 김정희의 글씨 3점은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1978호 김정희 필 대팽고회, 보물 제1980호 김정희 필 침계, 보물 제1979호 김정희 필 차호호공을 보도 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김정희 필 침계 (출처 문화재청)
김정희 필 침계 (출처 문화재청)

 

보물 제1980호 김정희 필 침계(金正喜 筆 梣溪)는 김정희가 윤정현의 부탁을 받고 30년간의 고민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윤정현의 호(號)를 쓴 것으로, 발문에 의하면 윤정현이 김정희한테 자신의 호인 ‘침계’를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한나라 예서2)에 침(梣) 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3), 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혼합해서 쓴 침계는 김정희의 개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김정희의 학문, 예술, 인품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보물 제1979호 김정희 필 차호호공(金正喜 筆 且呼好共)은 “잠시 밝은 달을 불러 세 벗을 이루고, 좋아서 매화와 함께 한 산에 사네(且呼明月成三友, 好共梅花住一山)”라는 문장을 예서로 쓴 대련(對鍊) 형식이다. 또, 보물 제1978호 김정희 필 대팽고회(金正喜 筆 大烹高會)는 작가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에 쓴 만년작으로, 두 폭으로 구성된 예서 대련이다. 내용은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吳宗潛)의 중추가연(中秋家宴)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 아들딸, 손자라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라는 글귀를 쓴 것이다.

문화재청은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라는 내용에 걸맞게 꾸밈이 없는 소박한 필치로 붓을 자유자재로 운용해 노 서예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응축된 만년의 대표작”이라고 밝혔다. 세 작품은 모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이다.

 

김정희 필 대팽고회 (출처 문화재청)
김정희 필 대팽고회 (출처 문화재청)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우리나라의 서예

서울 인사동과 삼청동 등에서는 우리나라 서예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다양한 전시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서예를 배우려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는 서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계적으로 알리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전라북도는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주최하고 있다. 사단법인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외교부 등이 후원하는 국제 전시 행사로 전북의 서예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의 서예를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2017년에 열린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순수와 응용 - 서(書), 「역力·기氣·도道·예藝」를 말하다’를 주제로 30일간 전라북도의 다양한 문화 공간 곳곳에서 열렸다.

서예를 감상하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을 추천한다. 특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 서예를 볼 수 있다. 한글 서예와 관련한 기획 전시가 열리니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서예를 직접 배우는 것도 서예를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는 준비부터 글씨를 쓰기까지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이다 보면 어느새 차분해진 마음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좌) 2017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국문 포스터 (우) 영문 포스터
(좌) 2017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국문 포스터 (우) 영문 포스터

 

1) 선주선 저, <서예>, 39쪽, 대원사, 2014
2) 예서(隸書): 중국 한나라 때부터 쓰인 옛 서체
3) 해서(楷書): 예서에서 발달한 서체로 일점일획을 정확히 독립시켜 쓴 서체

 

[사진] 문화재청,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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