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만화의 그 중간 어디쯤에서
회화와 만화의 그 중간 어디쯤에서
  • 전다영 기자
  • 승인 2019.06.0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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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미있는 웹툰(웹 사이트에 게재된 만화)이 참 많다. 필자의 대학 생활을 함께한 <치즈 인 더 트랩>도 있었고 삶의 깨알 웃음을 담당한 <마음의 소리>도 있다. 이 외에도 즐겨 보던 웹툰이 많지만 특히 이말년 작가의 4컷 만화 중 한 일화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직장인인 주인공이 오전 9시에 깬다. 늦잠을 잔 주인공은 직장 상사인 팀장에게 지각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그 순간이 꿈이기를 바란다. 번쩍. 다행히 9시에 일어난 건 꿈이었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며 너무나도 기뻐한다. 그러나 현실은 오전 10시. 꿈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건만 현실은 더 최악이었던 것이다. 간단명료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완전히 필자의 취향 저격이었다.

지금이 웹툰 전성시대라지만 원래 만화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은 콘텐츠였다.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집으로 달려가기도 했고,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여러 권 빌려 읽기도 했다. 웹툰은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편화에 따라 우리가 좀 더 쉽게 만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만화의 한 종류일 뿐이다. 만화는 어쩐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될 것만 같았는데, 어른들도 적극적으로 즐겨 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만화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된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행동 묘사를 통해 표현되는 스토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만화의 정의는 ‘어떤 대상이든 그 사물의 형태나 사건의 성격을 과장된 표현 또는 생략된 표현으로 웃음의 소재나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회화(繪畫)’라고 한다. 만화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만화가 순수 미술(Fine Art)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건 다른 문제겠지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만화도 회화 종류 중 하나라는 점이다. 만화를 회화 작품이라고 잘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일반회화와 만화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회화가 대상을 미화하고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만화는 대상을 과장, 희화, 풍자하거나 그 내면 성격 등을 나타내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이러한 만화적 요소에 중점을 두고 회화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만화의 그 첫 시작을 알 수 있다. 일단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만화의 원조로는 남프랑스의 라스코 동물 벽화 등과 같은 고대 원시의 벽화와 초기 피라미드 내부 벽화들이 언급된다. 고대 원시 벽화의 간략하면서도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된 동물들의 모습과 초기 피라미드 내부 벽화 속에 나타난 의인화된 동물들의 모습 등이 만화적 요소를 충분히 부여해 준다.

 

〈대한민보〉 창간호 1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대한민보〉 창간호 1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만화의 첫 시작이 언제였을까? 우리나라 만화 역사는 프랑스 고대 원시 벽화만큼 길진 않다. 한국 최초의 만화는 ‘삽화’라는 이름의 그림으로 애국 단체 대한 협회가 1909년 발간한 <대한민보> 창간호에서 시작하였다. 이 그림은 대한민국 최초의 시사만화로 화가 이도영이 밑그림을 그리고 목판화가 이우승이 목판에 새긴 작품이다. 이 그림 속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의 입에서 4개의 가는 선과 글이 연결되어 마치 인물이 말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도영은 ‘국가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보도 내용을 다채롭게 하겠다’는 내용의 대한민보 창간 취지를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압축하여 표현해 냈다. 이 그림을 통해 나타난 단순한 표현과 해학적 구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라고 불리울 만한 만화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보에 실린 최초의 만화를 ‘삽화’라고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에서는 ‘철필사진’으로, <동아일보>에서는 ‘그림이야기’라고 표기하는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만화를 희평(戱評)·희화(戱畫) 또는 풍자화라고 부르곤 하였는데 ‘만연히(덮어놓고 되는 대로) 그린다’는 뜻에서 ‘만화’라고 그 표현이 굳어졌고 우리나라는 1923년 이후 만화로 그 이름을 통일시켜 부르게 되었다.

서양의 경우, 유럽에서는 만화를 캐리커처(Caricature)라고 하며 영국 및 미국 등지에서는 카툰(Cartoon)이라고 부른다. 근래에는 캐리커처를 어떤 사람의 특징을 과장하여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림을 말하는데, 그 어원은 이탈리아어 중 ‘과장한다’는 뜻의 caricare에서 유래한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대상을 과장하거나 희화하고 풍자하는 것은 만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회화의 역사 속에서의 ‘풍자화’가 만화의 전신으로 일컬어진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 신윤복이다. 조선 시대 화가인 신윤복은 양반들의 삶을 풍자한 인물로 유명하다. 가늘고 유연한 필치와 빨강, 파랑 등 눈에 띄는 색감의 사용으로 조선 시대의 풍속을 세련되게 표현하였다. 신윤복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단오풍정도>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악동들의 모습을 희화한 것을 보면 마치 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김홍도, 단원 풍속도첩 중 〈서당〉, 조선, 종이, 26.9x2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단원 풍속도첩 중 〈점심〉, 조선, 종이, 28x2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윤복의 선배 화원이자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인 김홍도 또한 우리나라 만화 역사 속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홍도는 서민들의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을 <단원 풍속도첩>에 그려 넣었다. 서당에서 혼나는 아이, 즐겁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등이 인물들의 풍부한 표정과 동작으로 실감 나게 묘사되어 인간의 내면 성격까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이러한 묘사들은 인물 내면 묘사라는 만화의 커다란 요소들을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만화의 원조라 부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만화라고 했을 때 말풍선이 있고 여러 개의 칸들로 구성된 그림만을 떠올리곤 했다.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을 볼 때에도 일반회화로서만 감상했었지, 만화적 요소를 지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서민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만화적 요소에 따라 그 역사를 살펴보니 회화 작품들이 색다른 매력으로 탈바꿈되는 듯하다.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작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그 시대의 상황과 연관 지어 감상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한 번쯤은 만화에 대한 시선으로 한국 회화를 돌아보는 것도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작품들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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