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통영 2] 통영 1945, 박경리의 소설로 바라본 그 무대
[내 이름은 통영 2] 통영 1945, 박경리의 소설로 바라본 그 무대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7.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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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작가는 현실을 노래한다. 단순히 희망찬 꿈과 헛된 내일의 즐거움만을 이야기하는 삼류 소설을 쓰는 저자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작중의 구석구석에는 시린 오늘이 뼈저리게 묻어 있다. 글이란, 우리의 소설이란 결국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살아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약국의 딸들>, <토지> 등을 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이야기로 잠시 들어가 보자. 선생은통영의 토호인 김약국네 집안 다섯 딸의 인생을 담은 장편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쓰면서, 그 내용의 영감이 당시 통영 시내에 떠돌던 숱한 아무개 여성들이 겪은 비극에 기인했노라고 밝혔다. 요컨대, 박경리 선생이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완고한 그 과정 속에는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통영시의 지역 여성사가 담겨 있던 셈이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은 그만큼 통영이라는 지역, 그 땅의 사람과 여성을 새삼 되짚어 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오늘날의 매개체이다.

 

통제영 세병관 앞에 서서 바라본 통영
통제영 세병관 앞에 서서 바라본 통영

 

박경리와 빅토르 위고, 다른 듯 닮은 두 작가

이와 관련해 다시 한 번 더 주목해야 할 소설가가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다. 지금은 파리의 명소로 자리하고 있는 몽마르뜨 언덕이 오늘날 우리의 곁에 남기까지에는 바로 이 빅토르 위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사실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더 안타깝다.

몽마르뜨 언덕은 예나 지금이나 당시 파리를 배회하던 서민들의 집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다. 온갖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이 화려하게 운집된 샹젤리제 거리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프랑스 서민들의 쉼터였던 곳마저 밀려드는 부동산 개발에 파괴될 위기에 처할 즈음, 빅토르 위고는 사비를 들여 몽마르뜨 언덕 인근의 땅을 사고 그곳에서 한 권의 소설을 집필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민중의 노래(원제: Do You Hear The People Sing?)’로 기억되는 대작, <레미제라블>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은 진정 그 바람만큼이나 세상에 몰아닥치던 비관적인 내일을 뒤바꿨다. 그는 몽마르뜨 언덕을 지켰으며, 오늘의 후손들에게 자신의 소설과 함께 이를 전하고 있다. 덩달아 빅토르 위고가 그린 <레미제라블>의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박경리 선생의 문학 역시 작품이 세상에 드러난 지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에는 그의 고향 통영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것은 진정 해방 전후를 이야기한 우리 조부모 세대의 아픈 역사이며, 독자는 단지 <김약국의 딸들> 작중의 첫 문단만 읽고도 저 멀리 경상남도 통영의 맑고 푸른 바다, 그 푸르른 빛깔이 꼭 지중해를 닮았음을 안다. 그 이유는 바로 박경리 선생의 오늘을 있게 한 그 문학적인 자양분이, 곧 선생의 고향 땅인 경상남도 통영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경리 선생의 작품 속 곳곳에 통영의 골목과 선창 그리고 바다와 섬, 그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날 통영시가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박물관을 건립하고, 지역 곳곳에 선생의 작품 속 글귀를 형상화한 포인트를 설치한 것은 따라서 참 기념비적이라 하겠다.

 

동피랑 마을에서 바라본 세병관
동피랑 마을에서 바라본 세병관

 

통영과 통제영,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본래 통영 시가지 가장 중심부에는 흔히 통제영이라고 부르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조선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통제영의 축이라 할 수 있는 핵심 건물인 세병관은 예부터 통제사가 이곳 단 위에 올라 통영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병사들을 관리했다는 곳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과 2개의 암문이 있었다. 통영과 통제영의 상관관계는 참으로 깊고 유한하다. 사실상 통영이라는 지명 역시 조선조 때부터 내려온 이곳 통제영에서 온 것이라 해도 좋다.

박경리 선생과 통제영 건물과의 관계는 절대 얕지 않다. 연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에 이곳 통제영이 통영초등학교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전하는 바, 여기에 박경리 선생이 통영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더하면 그 유구한 인연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히 통영 시내의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고 해도 좋을 통제영 세병관, 그곳의 단 아래 서서 통영 시가지를 얼추 바라보면 어떨까. 귀에 익은 오늘날의 지명으로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오른쪽에는 근래 통영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서피랑, 왼쪽에는 전통의 명소인 동피랑벽화마을이 보인다. 그 아래로 중앙시장과 통영 동쪽 항구의 바다가 하얀 윤슬로 부서진다.

 

서피랑 마을에서 바라본 강구안
서피랑 마을에서 바라본 강구안

 

서피랑 마을의 가장 위쪽으로 내달리면 조선 시대와 오늘의 통영을 잇는 하나의 매개체, 서포루가 있다. 이에 앞서 동피랑 벽화마을의 오늘이 있기까지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과 빅토르 위고의 관계만큼이나 아픈 상처로 남은 과거의 또 하나의 매개물인 동포루 역시, 동피랑 마을의 가장 맨 위로 달려가면 볼 수 있다. 이 두 곳 모두 간간이 통제사가 그 단 위에 올라 군사들을 사열하던 곳이라는 통영 나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세병관을 똑바로 걸어 내려가면, 박경리 선생의 소설 속 익숙한 풍경과 조우할 수 있다. 선생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속에서 셋째 딸 용란을 짝사랑하였으나 결국 넷째 딸 용옥과 맺어진 비운의 남자, ‘뱃놈’ 기두의 일터였던 육지로 바다가 들어온 항구인 강구안이 얼핏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통영의 맑고 푸른 바닷속에 담긴 숱한 인생

강구안의 맡을 스치고 통영의 맑고 푸른 바다가 흐른다. 그곳은 사뭇 평온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겪을 수 있을 세상의 가장 서러운 비극을 모두 아울렀다 해도 좋을 <김약국의 딸들> 속 이야기는 이제 아주 옛날 것이 된 것처럼 낯선,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위에 다닥다닥 줄지어 붙은 조개 무리처럼 항구 맡에 모여 선 어선들은 따스한 바닷바람 가운데 느리게 졸고 있다. 사이사이에는 거북선을 꼭 닮은 모형 선박도 여러 척 떠 있어, 흡사 이곳 한산도 앞바다에서 ‘우리 장군님’이 나라를 침범한 왜적을 모조리 격침했다는 바로 그 전투를 떠올리게끔 만든다.

항구 맞은편을 보면, 통영의 중심에 있어 중앙시장이라 하는 이 지역 최고의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거리에는 그 유명한 통영의 명물, 충무김밥과 꿀빵 등을 파는 식당이며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여기서 시장 안으로 잠시 들어가면 싱싱한 활어와 그 고기를 말린 건어물, 각종 공산품까지 정말 ‘없는 게 없는’, 예부터 그랬던 터전이 바로 이곳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을 나와 다시 세병관 쪽으로 가면 언덕을 향해 가파르게 뻗은 도로가 나오는데, 그 오른편이 바로 ‘간창골’, <김약국의 딸들> 작중에서 주인공인 통영의 토호 김약국의 집이 있던 장소다.

그 도로를 따라 다시 쭉 걸어 올라가면, 역시 소설을 읽었다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장소인 ‘서문고개’가 나온다. 이 서문고개 너머로는 소설 속에서 셋째 딸 용란이 처녀가 아니라는 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편쟁이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 살던 대밭골이 자리해 있고, 그 고개 꼭대기에 자리한 자그마한 마을이 바로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위치한 곳이다.

서문고개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과연 작중에서 박경리 선생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충무공을 기린 충렬사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충렬사의 맞은편에 자리한 마을에 ‘박경리길’이 있다. 선생이 소설을 통해 남긴 문장들이 좁은 골목 사이사이 벽에 적혀 있다. 한 문장 한문장 읽으며 골목을 걷다 보면 진짜 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일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새삼 다시 자문하게 한다.

 

진짜 작가를 꿈꾸는 이야기꾼이여, 뛰어라

다시 말해 박경리 선생의 소설에는 통영이, 그 땅이 지닌 유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무릇 그 토지의 역사라 말해도 좋으련만, 이는 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글에서도 마찬가지인 지점이다.

빅토르 위고의 글 역시, 그 문장 하나하나와 문단에 파리와 몽마르뜨 언덕을 향한 작자의 사랑이 담뿍 녹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레미제라블>을 놓지 못하며, 귀로는 그 노래를 음미하며 당시 민중들이 자유를 외치던 시절의 파리를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진짜 소설이란, 진정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그 마음에 기록되는 불멸의 글이란 결국 그 저자가 나고 자란 땅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인공 주디 역시 글을 쓴다. 그녀 역시 소설가를 꿈꾸며 이곳저곳에 투고하는 대학생이다. 그때 그녀의 글을 봐 준 ‘키다리 아저씨’의 평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는가? “주디, 이 글에는 네 이야기가 없구나.”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아마도 이랬다. 기교는 있으되, 그 글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까닭은 결국 그 안에 진짜 사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것이 박경리와 빅토르 위고, 두 작가가 이토록 위대한 이유다.

두 소설가가 서로 그 토지를 오가며 들은 이야기, 혹자는 이를 작가의 ‘취재’라고 표현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작가가 객으로서 마을의 노천 카페 어디에 앉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워듣는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들의 글이 우리에게 오랜 시간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거한 이 마을의 이야기를 글에 온전히 담아 펼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진짜 소설이란 마냥 허구와 가장의 이야기만을 꾸며 쓰는 것이 아닌, 진정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것.

박경리와 빅토르 위고. 참으로 멀고도 가까운, 또한 전혀 다른 시대와 나라의 두 소설가의 면면이 이토록 닮았음에 놀라며 이 글을 마친다.

 

통영 바닷가에 떠 있는 거북선
통영 바닷가에 떠 있는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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