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보다 2] 전주 한옥마을, 전통이란 무엇인가
[전주를 보다 2] 전주 한옥마을, 전통이란 무엇인가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7.03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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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무엇일까?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매개로 근래에 상업화된 관광 단지, 가령 전주 한옥마을이나 인사동 등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질문을 던져 봤을 것이다.

 

 

특히나 최근 화려한 서양풍의 파티용 드레스에 가깝게 변화해 버린 퓨전 한복의 모습을 보면, 이걸 정말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 의상이라고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얼핏 든다. 실제로 종로구청과 구내 일부 시민 단체 사이에서는 이렇듯 최근에 매우 드레시(Dressy)하게 개량된 퓨전 한복이 선조들이 입던 우리 통상의 전통 한복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라며, 법적으로 규정한 한복 착용자의 4대 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 이하 ‘4대 궁’) 입장료 면제 방침에서 이러한 퓨전 한복 착용자들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여 인근 상인들과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종로구청은 더 나아가 ‘과도하게 개량된 퓨전 한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선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아니하므로, 퓨전 한복 착용자들을 4대 궁 입장료 면제에서 제외하는 한편 종래의 식당 할인 혜택에서도 이들을 열외하겠다’는 구 나름의 대처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이에 그간 국가 문화재 관리 담당 기관으로서 종로구청과 협업하여 4대 궁 입장료 면제 방침 등 우리 전통 살리기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문화재청 일각에서는 ‘한복을 제대로 입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가볍게라도 한복이 놀이 문화로써 일반 대중에 유행할 수 있게끔 기여한 퓨전 한복을 너무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인근에서 한복 대여업을 하는 상인을 포함하여 지역 패션계 일부에서는 종로구청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소비자의 니즈를 전혀 파악하지 않은 행정의 무모한 규제’라고 지적하며, ‘전통을 지키는 일은 분명 소중하지만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므로, 이렇듯 동태적인 시대 흐름에 따라서 종래의 전통 역시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 개선되어야 옳다’는 의견 또한 피력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근래 우리 국민 사이에서 일었던 전통 한복에 관한 의견 꾸러미를 빅 데이터로 치환해 보면, 전통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보는 견해에 관해서 세대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으나 이 지켜야 할 전통을 마냥 답습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다’는 의견 또한 있었다.

 

전라북도가 낳은 최고의 핫 플레이스, 전주 한옥마을
전라북도가 낳은 최고의 핫 플레이스, 전주 한옥마을

 

전주가 낳은 최고의 상업적인 문화유산에 대해서

지금까지 위에서 과연 우리가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범주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는 정해져 있는 것인지, 만약 정해져 있다면 그 틀은 유동적인지 고정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퓨전 한복의 예를 통해 제시했다.

그렇다면 다시 본 주제인 ‘전주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주 한옥마을은 완벽하게 상업화된, 그야말로 전라북도가 자랑하는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났다. 전북도청에서 전라북도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추진·판매하는 교통 겸 관광 티켓 꾸러미인 ‘전북 투어 패스’의 경우에도 제안하는 코스 대부분이나 그 활용도 면에서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라북도의 주변 지역을 방문하는 형식이 가장 실용성이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만큼 전주에 자리한 이 전통 핫 플레이스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문화 플랫폼이 되었다.

그러나 전주 한옥마을을 향한 우려 또한 나날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서울의 4대 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주 역시 여행하며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의 일종으로 한복 대여업이 널리 홍보되고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의 소비자가 좀 더 현대적인 미학에 걸맞은 퓨전 한복을 선호하는 현상이 이곳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여론은 서울처럼 역시 일파만파 갈리는 양상을 보인다. 혹자는 ‘한복 공해’라고 힐난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전통 역시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퓨전 한복은 그에 걸맞은 훌륭한 대안’이라는 의견 또한 피력했다. 다시 말해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이렇게라도 알리고 한복을 입는 문화가 국민의 일상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것이 아니냐는 투다. 과연 정말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함께 논해 보자.

 

퓨전 한복 부대가 정말 전주를 아프게 하는가

다들 전주 한옥마을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나 누가 뭐래도 한옥마을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퓨전 한복 부대’다. 혹자는 이러한 퓨전 한복을 입은 청춘들이 진짜 지켜야 할 우리 전통 한복의 고유한 결과 멋을 훼손한다고 말하며 깊이 우려하기도 한다.

위에 서술한, 퓨전 한복 착용자를 종래의 혜택 범주에서 제외하겠다는 종로구청의 주장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퓨전 한복은 ‘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더 묻고 싶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이 전통이 정확히 말해서 도대체 무엇일까? 이는 정말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강권하고 있을까? 이에 관한 필자의 생각은 분명하다.

사실 좀 더 엄밀히 말해서, 우리 사회가 전통과 구습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3·1 운동에 버금가는 대표적인 항일 투쟁 운동인 중국의 5·4 운동을 촉발한 크나큰 계기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신해혁명, 그리고 그에 뒤이은 신문화 운동에서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였던 ‘구습 철폐’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여기서 말하는 ‘구습(舊習)’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얼핏 우리 사회 일각에서 숭상되고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통이라는 산물과 이 신문화 운동 시대의 구습 사이에는 과연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시대는 바뀐다. 과거의 전근대적 사회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적인 사회가 흐르는 양상이 전혀 다르듯, 세상은 현재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단순히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태적인 환경이 아닌, 도리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하고 동태적인 상태에 처해 있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사실 대부분 의견을 같이 두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시대도 변한다, 구습과 전통을 구분하자

우리가 처한 사회가 동태적이라고 가정한다면, 바로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이라는 것 역시 과연 본래부터 원형 그대로 내려온 것인지 한 번쯤 ‘왜’라는 의심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사회가 변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주된 담론이 바뀐다면 우리의 전통도 언제든 혁파해야만 할 구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역사가 말하는 ‘유서 깊은’ 전통과 ‘버려야만 할’ 구습의 차이는 실은 정말 한 뼘의 거리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대는 동태적이다. 어느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는 언제든 새로운 물결로 변해 종래의 패러다임을 또 다른 패러독스로 바꾸어 버린다. 이렇듯 무어라 감히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고 시류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의 전통 역시도 화려했던 어제의 순간에 마냥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고 감히 강조하려 한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통이 구습이고 구습이 곧 전통이다. 전통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이에 맞서기만 한다면 그것은 곧 버려야 할 과거의 구습이며, 반대로 동태적인 시류와 후손들의 니즈에 응답하여 새로운 시도를 꾀한다면 그것은 곧 어제의 구습이 아니라 우리 후대가 마땅히 지켜야 할 오늘의 소중한 전통인 것이다.

사람이, 변화한 오늘의 사회가 과거의 풍습에 맞추는 일은 옳지 않다. 풍습이 생겨난 데에는 반드시 과거에 이러한 풍습과 상황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필요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옛 풍습을 고집한다는 것은 실은 매우 지나친 행태가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아는 전통이 진짜 본래의 원형?

이쯤에서 다 함께 참고하면 좋을 이야기가 ‘한복의 역사’에 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구절 중에 있다.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에 관해서는 학계에서도 다분한 논쟁의 소지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고이 보존된 전통의 원형’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의 전통 한복이란 존재 역시 옛날부터 수많은 변형과 개량을 거듭해 온 역사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글은 없다고 본다.

 

기본복(基本服)의 원류는 스키타이계이며 북방 민족의 복식이다. 고대 한국의 복식 문화는 주변 국가보다 매우 발달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우리의 유(襦)와 고(袴)를 서기전 4세기경에 중국의 조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융복(戎服)으로 채용하였다.

후한 대에 고습(袴褶)이라고 불렸으며, 위진(魏晉) 이후 천자(天子), 백관의 융복과 사인(士人)·서민복으로, 당대(唐代)에는 삭망(朔望) 때 조회복(朝會服)으로도 입혀졌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집단으로 이주할 때 입고 간 우리 옷(유·고·상·포)을 계속 입었으며 원주민에게도 전했음을 하니와(稙輪)로 알 수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한복’에 관한 기본 정보 발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조상이 내려 준 숭고한 전통의 산물로 생각하고 있는 전통 한복이란 것 역시, 그 아득히 먼 옛날의 원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한복의 시초라고 부르는 고구려 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우리네 한복 저고리는 당시의 언어로는 ‘유’라고 불렸다. 길이감 역시 지금의 전통 한복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서를 참고한 것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표현에 의하면, ‘유의 길이는 둔부까지이다’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복이라면 당연히 있으리라고 우리들이 상상하는 고름조차도, 한복의 원류인 고구려 시대에는 하등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당시의 구분으로 치마를 저고리 위에 걸쳐 입으면 중국식이었고 저고리를 치마 위에 겹쳐 입으면 한국식이었다. 단지 이 정도의 구분만 있었을 뿐, 한복 저고리가 오늘날과 같이 짧은 길이감에 고름이 달린 형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고려 시대 말엽에 접어들어서야 가능했다. 그럼에도 서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고구려 시대부터 내려오던 ‘유’의 복식대로,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저고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서울의 어느 한복 대여점 (편집부 제공)
서울의 어느 한복 대여점 (편집부 제공)

 

실제로 우리가 아는 전통은 이미 많이 바뀐 것

특히 퓨전 한복을 비판하는 측에서 자주 언급하는 한복 치마의 역사를 보면, 이 또한 할 말이 없다. 먼저 통일 신라 시대부터 서술하자면, ‘밑단까지 주름이 잡힌 주름치마와 여러 쪽을 이은 치마, 색동치마가 있었으며, 밑단에 선을 댄 치마도 있었다. 상류층의 치마는 길고 하류층은 짧았는데, 치마 속에 여러 가지 속옷을 입어 A라인이 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전하고 있다. 요컨대 진짜 한복의 원형을 놓고 보면, 주름치마뿐만 아니라 미니스커트까지 다양하게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지금은 전통 한복의 구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조끼나 마고자조차도, 이 구성이 처음 도입된 시기는 조선사에서 ‘개화기’라 부르는 1880년대 이후부터이다. 한복의 본류인 고구려 시대와 북방 민족의 복식에 기반해 따지자면 우리 민족의 옷과 매우 이질적인 산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고자의 경우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처음 입었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쉽게 전통 의복으로 인정받았다.

필자의 말은 전통 한복을 보존하자는 주장이 옳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전통 한복을 우선하기 위해 퓨전 한복을 백안시할 것이라면, 정확히 그 전통의 본류를 따지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기실 퓨전 한복이 대중들 사이에서 취하는 포지션이나 차림새 또한, 우리 전통에 아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우리 모두 알 수 있으리라. 도리어 멋과 풍류를 아는 우리 조상들은 시대의 필요와 유행에 따라 전통 복식조차도 개량하고 변형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정작 우리 역시도 그렇게 바뀐 한복을 전통이라 부르고 있는 현실을 보면, 중간에 변형된 산물이 더는 전통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전주 한옥마을을 비추는 석양
전주 한옥마을을 비추는 석양

 

퓨전 한복은 일상복일 뿐, 예복은 더욱 아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전통 한복보다는 퓨전 한복을 입는 관광객들이 범람하는 전주 한옥마을의 오늘은 사실 그것들이 지닌 쓰임새를 생각했을 때 아주 당연한 풍경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아울러 그 문제는 결코 대립적인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피력하려는 바, 이유인즉슨 퓨전 한복은 지극히 단순히 오늘의 대중이 향유하고 있는 일상적인 형태의 놀이 문화이자 유희를 위한 파티복으로써 의 쓰임새가 담겨 있다. 따라서 퓨전 한복은 관혼상제 예복으로써의 전통 한복과 엄연히 구분될 일상복에 더 가깝다고 볼 소지가 충분하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만한 문제가 또 있다. 바로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일상에서 4대 궁과 전주 한옥마을이 지니는 의미가 과연 일상과 제례의 공간 중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실을 굳이 먼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단 우리 현대인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은 조선 시대도 전근대적인 왕조 시대도 아니다. 물론 역사가 낳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4대 궁과 전주 한옥마을의 가치에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장소가 현대인의 일상 속의 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지언정 제례의 공간으로 기억될 일은 없을 듯싶다.

전통이란 마땅히 보존해야 옳다. 이 명제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대중의 니즈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소중한 전통은 순식간에 이 사회를 구성하는 절대다수의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구습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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