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공간 속으로 5] 공간, 예술을 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트렌드 공간 속으로 5] 공간, 예술을 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 이승리 기자
  • 승인 2019.07.03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벨기에 대사관이었던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경이다.
옛 벨기에 대사관이었던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경이다.

 

높은 담벼락 위에 있었던 예술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소통’에 나서는 것이 최근 추세다. 공원 산책로에는 신진 작가들의 조각상이 세워지고 건물 한쪽 벽에는 미술품이 걸린다. 길을 걷고, 볼일을 보러 실내로 들어가면서도 우리는 짧지만 강렬한 ‘예술’을 만난다. 이렇듯 예술이 관객을 익숙한 공간으로 초대하면서, 점차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은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

‘옛 벨기에 영사관’ 역시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위용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끌어안았다. 대사관이라는 건축물로써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기획 전시를 내놓으며 역사의 옛이야기를 전하고, 새롭게 말 붙이기에 나서기도 한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앞에 서면 순간 서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현대 건축물들 사이에 낯설게 선 이 고풍스러운 건물의 탄생 원년은 ‘대한 제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벨기에 대사관의 위치는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서울 중구 회현동이었다. 1901년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면서 현 우리은행 본점 사옥 위치에 착공, 1905년 완공된 바 있다. 1918년 대사관이 폐쇄된 이후부터 광복 전까지 건물은 요코하마 생명 보험 회사 사옥, 기생 조합인 본권번,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사용되기도 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내부 모습이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내부 모습이다.

 

광복 이후에는 해군에서 사용하다 대창흥업에 매각됐고 도심 재개발 사업이 결정되면서 1982년 지금의 자리인 남현동으로 이축했다. 뒤이어 퇴색됐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1977년 5월 사적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대사관의 이축은 무려 3여 년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1980년 삼성건축이 이축을 위해 실측 설계와 이축 설계를 했고, 설계가 끝나자 절차에 따라 건물은 해체됐다.

벽돌과 석재 그리고 나무 자재 등을 일일이 분리하는 작업이 끝나고, 1981년부터 2년간 ㈜신성이 실측된 설계 도면에 따라 대사관을 복원했다.

 

1층에 있는 상설 전시관이다.
1층에 있는 상설 전시관이다.

 

상설 전시관 내부 전경이다.
상설 전시관 내부 전경이다.

 

상설 전시인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 영사관’이 열리는 1층 전시실에서는 이축 등 건축물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축 전·후의 모습과 재탄생의 과정 등을 담은 도면을 보다 보면 1층·외관 등의 도면과는 달리 2층의 도면이 2개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층 일부 실의 활용도를 고려해 통폐합이 이뤄짐에 따라 1905년 완공된 건물과 1982년 완공된 건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당시의 건축물 사진을 비롯해 건축 자재인 석고 기둥 일부와 타일도 전시되어 있다.

관련 사료와 문헌을 통해서 당시의 관련 상황들을 유추할 수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대한 제국과 벨기에의 ‘한비 수호 통상 조약’에는 양국 간의 13개의 조항이 담겼다. 각국 공사관의 위치가 담긴 ‘가사에 관한 조복 문서’에 수록된 ‘정동 약도’와 회현동 시절 대사관의 위치가 표시된 <최신경성전도>에서는 벨기에 대사관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해당 상설 전시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남서울미술관은 북서울미술관, 백남준 기념관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 중 하나로 2004년 9월에 개관했다. 옛 벨기에 대사관이라는 건물의 역사적 의미 외에도 1층과 2층의 7개의 전시실을 오가며 복도, 계단, 기둥, 천장, 벽난로 등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또 언제라도 편하게 찾아가는 공간이 되기에 충분한데, 우선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사당역과 가깝다는 편의성이 있다. 또 다채로운 기획 전시를 연중 무료로 운영한다는 이점도 갖췄다. 관람료가 없지만 있을 건 또 다 있어서, 기획 전시전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안내하는 ‘도슨트 시간’이 운영된다. 미리 시간을 확인하면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해당 전시 주제에 관해 깊은 조예를 기를 수 있겠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강서경, 김민애, 이은우, 정소영 작가가 ‘확장된 매뉴얼’을 주제로 전시를 펼쳤었다. 이번 주제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참조하고 사용해 다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동시대 예술의 의미 있는 양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작가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미술이 주목하는 위의 여성 작가 4명이 선정됐다. 이후 작업의 새로운 전개, 변화, 발전을 위해서 비결정성, 미완결성, 개방성 등을 내용으로 하거나 형식으로 하는 이들의 작품들이 후보에 올랐고, 그중 남서울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설치하거나 전시하기 적합한 것들이 전시의 주인공이 됐다.

전시는 행인의 시선과 가까워졌다. 미술관 정원에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붙잡기 때문이다. 하얗고 커다란 철제 조각 한 덩어리는 미술관 밖, 정면에서 보면 그 모양을 알 수 없지만, 정원 안으로 들어와 자세히 살펴보면 ‘FREESTANDING’ 12개의 영문 알파벳의 조합이다. 이는 김민애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자립조각’이다. 철판 재질로 된 각 알파벳을 연결한 구조물이다. 작가는 이를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각 알파벳이 연결로 서로를 지지하기 때문에 서 있는 상태를 지속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3월 1일부터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의미를 더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3·1 운동의 정신을 미술의 보편적 관점으로 확대하는 계기의 장을 마련한 이번 전시는 5월 26일까지 진행된다.

미술관의 향후 기획 전시 일정은 다음과 같다. 6월에는 시각예술 인접 장르의 특성과 동향을 느낄 수 있는 기획전이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다. 다만, 전시 준비를 위해 휴관하는 경우가 있으니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 수시로 공지되는 임시 휴관일을 확인할 것을 권한다.

 

김민애 작가의 자립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 마당이다.
김민애 작가의 자립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 마당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