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을 간직한 한국의 산토리니, 흰여울 문화마을을 걷다
삶의 터전을 간직한 한국의 산토리니, 흰여울 문화마을을 걷다
  • 강태희 기자
  • 승인 2019.07.03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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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 문화마을이 위치한 영도구는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부산에는 이렇게 피난민들이 모여 거주했던 마을들이 몇 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감천 문화마을을 뒤로하고 소박하고 은은한 매력을 가진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도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영도구는 2011년도에 본격적으로 달동네의 폐·공가를 리모델링하여 창작 공간을 만들면서 ‘흰여울 문화마을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아직까지도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집들과, 관광지로 발돋움하면서 생겨난 카페들 그리고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 작품을 위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마을을 꾸미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모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모습은 그리스 산토리니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얼핏 하얀 담장과 푸른 바닷가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에서 닮았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순우리말인 ‘흰여울’은 물줄기가 바다에 부딪혀 하얀 물거품으로 변하는 모습을 뜻한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감싸고 있는 너른 바다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리스 산토리니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될 것이다. 특히 영도구는 부산항 전체를 관람하기에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어서 부산 어느 곳보다도 짙은 여운을 남겨 준다. 이렇게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이국적인 색다른 면 때문인지 흰여울 문화마을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 드라마 <영도다리를 건너다> 등의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실제로 아름다운 바닷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도착한 흰여울 문화마을은 거주지와 관광지의 묘한 공존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집들과 왠지 모르게 피난민들의 고된 삶이 느껴지는 삐뚤삐뚤한 길과 계단들, 그리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그에 따라 반짝이는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꾸며 둔 마을 구석구석에는 주민들이 걸쳐 놓은 장독대와 그물들이 마을에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마치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듯 흰여울 문화마을의 오브제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오래된 낡은 벽들은 페인트칠되어 현대적인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고 작은 전시를 하는 청년 작가들은 옹기종기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카페도 그다지 많지 않은데, 가장 유명한 카페인 듯 보이는 ‘카페 피라’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지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까지 있었다. 안내판을 따라 도착해 보니 주변의 낡은 집들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도시의 카페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현대적인 곳이었다. ‘카페 피라’는 흰여울 문화마을의 바다 쪽으로 트인 아름다운 전망을 향해 지어진 곳으로, 마을을 구경하다 지쳤을 때 잠시 쉬어 갈 수 있으면서도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명소였다.

마을을 구경하다 보면 화장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는 피난민들이 가파른 산비탈에 집을 짓다 보니 화장실을 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흰여울 문화마을에는 아직까지도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들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벼랑 끝으로 몰려 살아가야 했던 선조들의 아픔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

 

 

 

마을의 계단들을 따라 끝까지 오르면 폐 갤러리들을 지나 흰여울 루프탑에 도착하는데, 여기에는 전망을 관람할 수 있게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다. 목마름과 간단한 요기를 위해 설치된 자판기에는 여러 종류의 음료수와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독특한 것은 자판기 옆에 전자레인지가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전자레인지로 따뜻하게 데워 두고 테이블에 올린 채 아름다운 바다를 누구든지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절영 해안 산책로
절영 해안 산책로

 

절영은 영도의 옛 이름이다. 이 이름에서 유래한 절영 해안 산책로는 흰여울 문화마을과 접한 3km 길이의 해안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바다와 선박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산책로를 따라 설치된 벽에는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영도의 역사를 테마로 하여 40개의 흥미로운 작품들이 선보여지고 있다. 영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케이블카도 모자이크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최근에 보수한 듯 떨어진 타일 하나 없이 반듯한 모습이었다.

해안길은 전체적으로 파란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 푸르른 바다와 조화를 잘 이루어 더욱 시야가 트이는 듯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해안길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해안로를 따라가면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기암괴석들을 마주치게 된다. 금강산바위, 노래미바위, 넓적바위 등 저마다 특징적인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이 바위들에까지 이르러서 보는 해안 광경은 더욱 더 절경이라고 하니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또한 절영 해안 산책로는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5대 대표 노선 중 하나로 당당히 선정되기도 했다고 하니, 꼭 한 번 그 운치와 낭만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

 

 

흰여울 문화마을에 살고 있는 피난민은 2016년 기준 9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비집고 들어온 관광객들이 때로는 귀찮지만 또 반가운 존재라고도 한다. 덕분에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달동네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예쁜 벽화로 둘러싸인 마을이 되었다. 그러니 흰여울 문화마을을 찾을 때면 그저 한 번 들르고 말 관광지라고 생각하여 들뜬 마음에 크게 웃고 떠들기만 하기보다는, 오래전부터 피난민으로서의 아픔을 간직한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봄을 앞두고 겨울의 부산을 찾은 나에게도 흰여울 문화마을은 피난민들의 벼랑 끝에 몰린 삶의 터전을 보여 주면서도아름다운 모습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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