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공간이, 살아 있는 가슴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
‘살아 있는 공간이, 살아 있는 가슴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
  • 손주희 기자
  • 승인 2019.07.0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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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헌책방 골목
배다리 헌책방 골목

 

1호선 경인전철은 요즘 새롭게 신설된 지하철역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지하철이란 명성에 걸맞게 오랜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준 자연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지하철 1호선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 매력을 느끼며 1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동인천역을 찾았다.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0여 분 남짓 거리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19세기 말까지는 밀물 때면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밀려 들어와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수로가 만들어졌다. 그 수로 끝에는 배를 댈 수 있는 다리 형태의 잔교(棧橋)가 놓여 있었다.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배다리’라는 지명은 남아 골목과 상가 등의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도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인천이 개항한 후 1883년 일본 조계, 1884년 청국 조계가 개항장 일대에 형성되면서 인천 바닷가의 작은 어촌 마을의 조선인들은 새로운 인천의 변두리로 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경인철도의 개통으로 동인천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공업 지대로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우각리 정미소와 양조장, 송림리의 햄 공장과 양조장 등이 들어서면서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생활필수품을 공급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토지는 소수의 외국인들의 소유였고 수많은 조선인들은 노동자가 되어 이 변두리에 조선인 마을을 이루었다. 이때 조선인들이 밀집하여 주거지를 형성하던 마을의 중심지가 바로 현재의 금창동, 송림동 일대로 당시 ‘배다리’라고 일컫던 지역이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과거

인천 배다리 하면 헌책방 골목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여서 더 유명해졌다. 이 골목의 헌책방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배다리는 인천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었고 인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광복 후에도 배다리 일대는 인천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인 우각리 시장이 있었으며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배다리 헌책방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의 자취를 찾는 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1948년 당시 20대였던 박경리 선생은 남편(김형도)이 주안염전에서 일하게 되면서 금곡동에 거주지를 두게 된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약 2년간 헌책방을 운영하였다. 배다리 헌책방의 역사도 그즈음 해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헌책방이 생겨나 골목 상권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60~70년대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1970년대는 전국적으로 헌책방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골목은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더불어 전국 3대 헌책방 골목으로 불리었다. 한때 40여 개의 헌책방이 모여 있던 인천 유일의 헌책방 골목으로 배움에 목말라하던 학생들과 지식인들로 북적거렸다. 현재까지 이 골목에 남아 있는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삼성서림, 대창서림 등은 그 시기에 생겨난 책방으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역사의 장소이다.

 

 

배다리, 삶으로 이어 흐르네 ‘아벨서점’

“살아 있는 글은 사람이 살아 있는 눈길로만 봐줘도 우리에게 저절로 흘러 들어온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45년째 ‘아벨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현숙 대표의 말이다. 서점에 들어서면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은 책장과 이렇게 높은 책장에 빼곡히 꽂혔음에도 자리가 부족하여 책장 옆과 앞에 삐죽하게 쌓인 수많은 책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1973년 11월 문을 연 아벨서점은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의 풍파를 겪으면서 꿋꿋하게 이 골목을 지켜 온 헌책방 중 한 곳이다.

 

아벨서점
아벨서점

 

2007년에는 서점 옆에 아벨전시관을 마련하였다. 1954년에 지어진 근대식 건물로 원래 사진관으로 운영되던 곳을 서점의 별관으로 활용하면서 1층에는 문화·예술 서적을 모아 놓았고, 2층에는 전시관 및 모임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평범한 서점과 같은 외관이지만 이 건물은 매력은 2층 다락방에 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 것 같은 작은 공간이 드러난다. 건물의 벽면은 오래전 화재로 인해 드러난 근대식 벽돌 구조물과 그을림을 그대로 두어 건물이 간직한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을 마주하게 한다.

공간 곳곳에는 곽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테리어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마음을 담아 공간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조금씩 다듬고 꾸몄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소 둔탁한 느낌이 난다고 얘기하는 곽 대표의 말에서는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사실 다락방 곳곳에서 배다리 골목에 대한 애정과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신의 안식처가 되는 아늑한 다락방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벨서점 내부
아벨서점 내부

 

다락방 한편에는 박경리 서점과 관련된 작은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1940년대 박경리 선생이 배다리 마을에 살았던 시기에 발행된 일본어책과 사진 등이 있다. 박경리 선생은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48년도에 박경리 선생이 금곡동(배다리)에서의 헌책방을 운영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곽 대표는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문학관을 방문하고 금곡동과 헌책방과 관련된 박경리 선생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는데 이 또한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곽 대표는 배다리 헌책방 역사의 시초를 이룬 박경리 선생과 생전에 만나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한다.

아벨전시관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 낭송회를 진행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한 이 모임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겨 2019년 1월로 125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벨서점과 함께 사람들도 삶도 농익어 가며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아벨전시관 내부 1층
아벨전시관 내부 1층

 

아벨전시관 내부 2층
아벨전시관 내부 2층

 

배다리 마을을 사랑하다. ‘나비날다 책방’, ‘요일가게-다 괜찮아’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초입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서점이 ‘나비날다 책방’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배다리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배다리 마을의 안내소이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문을 열면서 다소 당황하게 된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고양이 반달이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손님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무인 책방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며 쉬었다 가면 된다. 물건을 구입하고 싶다면 쪽지에 품명을 적고 돈과 함께 지정된 장소에 넣어두거나 칠판에 적힌 주인의 번호로 전화하면 된다.

나비날다 책방의 실제 주인은 배다리 마을의 문화 기획자 청산별곡이다. 2009년도에 배다리 마을에 들어오면서 사람들과 함께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나비날다 책방
나비날다 책방

 

청산별곡 대표는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영화나 화보를 촬영하러 오곤 하는데 만약 이곳이 없다면 세트장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이곳은 살아 있는 현장이에요. 주민들이 함께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뜻이 맞아 이렇게 (지역 문화 활동을)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나비날다 책방의 2층은 작은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마을 곳곳의 모습을 담아 사진, 드로잉, 자수 등으로 제작하여 만든 물품들이 전시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재능 나눔을 통한 공방수업으로 진행이 되고 있으며 이렇게 제작된 전시물들은 엽서와 달력으로 제작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배포하거나 책방에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비날다 책방 1층 내부
나비날다 책방 1층 내부

 

나비날다 책방 2층 전시실
나비날다 책방 2층 전시실

 

보통 공방 수업은 책방의 옆 건물에 있는 ‘요일가게-다 괜찮아’에서 진행하고 있다. 요일가게-다 괜찮아는 요일마다 주인이 바뀌는 가게이다. 마을 공동체의 활동화를 위한 공간으로 여러 사람이 요일별로 나누어 운영하면서 때로는 공방으로 쓰이기도 하고 물품을 판매하거나 전시를 하는 등 마을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이다. 요일가게를 설명하던 청산별곡 대표는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을 들여다보고 생활을 하다 보니 여기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꾸미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일가게-다 괜찮아 내부
요일가게-다 괜찮아 내부

 

배다리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배다리 마을은 10여 년 전 송도와 청라 신도시를 잊는 산업도로공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지역 주민들과 문화 예술인들의 노력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후 배다리 지역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지역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는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는 모습이다. ‘한미서점’대표는 어느 날, 서점 골목 전체가 어둡다는 생각에 서점의 외관을 노란색을 칠하면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가 되었고, 배다리 마을을 널리 알리고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데 일조하게 된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한미서점 (출처 tvN)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한미서점 (출처 tvN)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양조장 건물을 지역주민공동체가 나서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전시관이자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새롭게 탄생한 ‘스페이스 빔’과 이곳을 지키는 깡통 로봇은 배다리 마을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부상하고 있다.

마을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작은 생각의 전환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거나 혹은 도로로 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된 것들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야 하는 것임을 배다리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몸소 보여 주며 실천하고 있다.

그럼에도 배다리 마을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인천 전역에 부는 도시재생, 재개발로 인해 헌책방 골목과 배다리 마을의 역사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언제 사라질 위기가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스페이스 빔
스페이스 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사적 애환을 품고 있는 배다리 마을은 인천의 역사를 간직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 <시장과 전장>에서는 역성적인 배다리 시장, 역전 옆 고물상, 배다리의 굴다리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박경리 선생은 이곳 배다리 마을에서의 생활을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하였다.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이자 토지문화재단의 책임자 김영주 이사장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볼 수 없는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해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역사적 공간을 통해 오랜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자신이 볼 수 없는 과거의 세계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는 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배다리 마을은 있는 그대로의 생활 전시실이다. 오랜 시간과 흐름과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우리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보내 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아벨서점 간판에는 ‘살아 있는 글들이, 살아 있는 가슴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책을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다리 마을의 헌책방 골목이 오랜 시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아, 살아 있는 우리의 가슴에 영원한 울림이 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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