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 특별전, 고려의 태평성대를 열다
개태사 특별전, 고려의 태평성대를 열다
  • 송영대 기자
  • 승인 2019.05.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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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부여 박물관 개태사 특별전
국립 부여 박물관 개태사 특별전

 

태조 왕건이 건국한 고려는 불교 왕조였다. 고려의 건국 과정을 보면 불교와의 밀접한 연관성들이 확인된다. 왕건과 도선 국사의 관계는 잘 알려진 사례이다. 공산 전투에서도 대구 동화사에서 고려군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왕건과 관련된 고려 시대의 여러 사찰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논산 개태사는 고려의 국찰(國刹)에 해당된다. 고려의 통일을 기념하여 개태사가 세워졌으며, 고려 시대 내내 국가적인 중요 사찰로 기능하였다.

올해는 고려 개국 1100주년으로, 각지의 박물관이나 지자체에서는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였다. 마찬가지로 국립 부여 박물관에서도 이를 기념하여 ‘개태사, 고려의 태평성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열었다. 전시 기간은 지난 5월 22일부터 7월 22일까지였으며, 기획 전시관에서 특별 전시로 진행되었다.

개태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의 천호산 아래에 위치한다. 왕건은 936년에 후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은 대승을 거두었고 신검의 군대를 압박하였다. 황산 일대에서 왕건과 신검은 다시 대치하였으나, 결국 신검은 항복을 결정하였다. 개태사는 신검이 왕건에게 항복했던 곳으로, 왕건은 이를 기념하여 개태사를 세우게 되었다. 개태사에는 왕건의 그림, 즉 진영(眞影)이 모셔져서, 주기적으로 제사가 이루어졌다. 참고로 고려 시대의 개태사 터는 현재의 개태사 옆에 위치한다. 현재의 개태사는 과거에 비해 규모가 크게 줄어든 편이지만, 아직도 과거의 영광을 알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개태사 특별전>에 들어섰을 때 개태사의 연혁 및 태조 왕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되었다. 이 특별전의 주요 유물 중 하나는 천안시 목천읍에서 출토된 ‘청동인물상’이었다. 실눈을 뜨고 있으며 코는 낮게 표현되었는데, 목 일부도 함께 남아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마치 턱이 긴 것처럼 느껴졌다. 이 유물은 2016년 6월에 발견되었으며 머리에 쓴 관의 중앙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청동상의 주인공을 태조 왕건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저승 시왕(十王) 중 한 명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북한에서도 현릉에서 나온 태조 왕건상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그와 비슷하지만 작은 크기로 조성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천안은 고려가 통일하기 이전에 출발점으로 삼았던 곳이며, 그 명칭 또한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담아 ‘천안’(天安)이라 하였다.

청동인물상 옆에는 ‘청자보살상’이 있었다. 입술이 살짝 올라가서 새침한 인상을 주며 볼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서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이마 쪽에 있는 보관(寶冠)의 가운데에는 정병이 매우 조그마하게 표현되었다. 즉 새침데기 아기 보살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청동인물상과 청자보살상은 개태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고려 태조 및 고려의 불교 신앙과 관계된 유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전에 전시되었다.

 

청자보살상
청자보살상

 

고려의 불교 문화와 태조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유물도 함께 전시되었는데, 바로 보물 제1887호인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이다. 1307년에 작가 노영(魯英)이 흑칠한 바탕에 금칠로 그린 그림으로, 그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다소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매우 정교하다. 양면에 불화가 그려졌는데, 한 면이 아미타여래구존도, 다른 한 면이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이다. 개태사 특별전에는 복제품을 전시하였으며,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가 보이도록 전시되었다. 중앙 아래에 지장보살이 앉아 있고, 그 위쪽의 오른편에 담무갈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태조 왕건이 그려졌는데, 구름과 산 사이에 평상복을 입고 절을 하는 모습이며 육안으로 바로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작게 그려졌다. 다행히 ‘태조’(太祖)라는 글씨가 쓰여 있어서 겨우 구분이 가능하다. 이 작품은 고려 시대 불교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서 살펴본 유물들 옆에는 ‘신성왕께서 직접 지은 개태사 화엄법회 소’라는 글의 번역문과 원문이 패널에 적혀 있었다.

개태사의 창건 과정을 태조 왕건이 직접 지은 것이라 역사적 가치가 높지만, 정작 해당 글이 기재된 서적이나 유물을 전시하고 있지 않는 점은 아쉽게 여겨졌다. 전시된 유물 중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대략의 내용을 다루어 놓긴 하였으나, 전체 내용이 포함된 것을 전시하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특별전에는 ‘봉업사가 새겨진 쇠북’도 전시되었다. 봉업사는 고려 시대에 태조의 영정을 봉안했던 곳으로, 개태사와 마찬가지로 고려 창업을 기념하여 세워진 사찰이다. 해당 유물은 1217년에 봉업사에서 발원하여 만든 쇠북이다. 고려 시대의 정교한 기술이 잘 반영되어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보물 제576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태조의 진영은 현재 연천 숭의전에 모셔져 있다. 다만 현재의 진영은 오래된 것은 아니다. 6·25전쟁으로 인하여 옛 그림이 불타 버렸기 때문이다.

<개태사 특별전>에 전시된 진영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기증받은 것으로, 태조 왕건이 황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현재 개태사의 위치는 ‘개태사’라는 글씨가 적힌 기와들의 존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기와에 사찰 이름이나 제작 시기, 건물 이름 등을 적은 사례가 많다. 마찬가지로 개태사지에서는 ‘개’(開), ‘개태사’(開泰寺), ‘삼천불보’(三千佛寶)와 같은 글씨가 적힌 기와들이 출토되었으며, 연대를 알 수 있는 기와들도 여럿 확인된다. 주로 암키와에 글씨가 적혀 있지만, 수키와에 글씨가 새겨진 사례들도 있다.

 

'개태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개태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고려 시대의 많은 유적지들이 그러하듯이 개태사에서도 수많은 기와와 청자가 출토되었다. 특별전에서도 개태사에서 출토된 기와와 청자가 다수 전시되었다. 금속으로 된 유물들도 여럿 전시되었는데, 개중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금동탑도 전시되었다. 다만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국보 제213호 금동탑이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해당 유물은 155cm에 이를 정도로 제법 큰 크기의 유물인데, 아무래도 박물관 간에 협의가 잘 되지 않아 전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개태사 특별전>을 하는데, 개태사를 대표할 만한 중요 유물이 전시되지 않고, 심지어 사진도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 중인 개태사 출토 국보 제213호 금동탑 (출처 문화재청)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 중인 개태사 출토 국보 제213호 금동탑 (출처 문화재청)

 

이 특별전에는 충청남도 지역 사찰의 청동 불교 용구들도 전시되었다. 개중에 관심이 간 유물은 보령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령 성주사지 출토 접시’였다. 유물 자체는 자그마한 그릇이나, 오늘날의 그릇과 마찬가지로 겹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마치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 같이 보였다. 순천 송광사의 성보 박물관에는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놋그릇이 있다.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원나라에서 가져온 유물이라 한다. 보령 성주사지의 접시 또한 능견난사와 비슷한 유물이라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관심이 갔다.

전시실 한 켠에서는 개태사 불전 안에 있는 ‘석조삼존여래입상’이 영상으로 나타났다. 조명이 비치면서 그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굵은 선으로 만들어져서 마치 장군의 위엄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소조상도 전시되었는데, 흙으로 빚은 옛날 불상들로 지금은 눈, 코, 입 정도만 남아 있으며 크기는 제법 큰 편이다.

전시실 중앙에는 개태사 쇠북이 전시되어 있었다. 쇠북의 소리가 간간히 울려 퍼지는데, 그 시각에 맞춰 조명을 쏘았다. 마치 돌멩이가 물에 떨어질 때 퍼져나가는 파장처럼, 소리의 파장이 쇠북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쇠북 뒤쪽으로는 쇠북에 새겨진 문양이 다시 한 번 파장이 이는 모습으로 만들어 여러모로 인상이 깊었다.

전시 말미에는 최영 장군의 홍산 대첩을 다루었다. 개태사를 약탈하고 나온 왜구를 최영 장군이 홍산에서 격파했는데, 당시 전투의 모습을 박창돈 화백이 민족기록화로 그려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간간히 책자에서 보던 그림이었는데, <개태사 특별전>에 그 그림이 전시되었다.

개태사는 고려의 개국 사찰이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지금은 작은 사찰로 남아 예전만큼의 위엄과 영광은 없지만, 개태사에 대한 기억은 유물과 기록으로 남아있다. 국립 부여 박물관에서는 그러한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전시로 만들게 되었다.

 

개태사 쇠북에 비치는 조명
개태사 쇠북에 비치는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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