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 이중섭
다정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 이중섭
  • 서민지 기자
  • 승인 2019.07.24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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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바닷가 근처에는 ‘이중섭거리’가 있다. 이중섭이 잠시 머물렀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후대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선보이며 판매하는 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중섭미술관, 이중섭공원이 주변에 있는데 이곳 주위를 둘러보며 예술가 이중섭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좋겠다.

 

기억 속의 이중섭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이중섭이란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필자는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 실린 이중섭의 <황소>란 작품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림의 소재가 익숙해서 그랬는지 강렬한 화풍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이중섭, 이름 석 자가 기억에 쉽게 남았다.

이중섭은 흔히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비운의 삶을 그대로 살다 갔다. 짧은 생을 살다간 예술가라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당시 가난하고 외로웠던 그는 지금에 와서 한국의 대표 근대 서양화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이번에 이중섭거리와 미술관, 거주지 주변을 둘러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중섭이 생전에 엄청난 지지를 받고 그에 맞는 부를 얻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예술가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그의 인생 많은 부분이 달라졌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족과의 이야기는 지금처럼 애달프지 않았을 것 같다.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거주지

전쟁이 집단 속의 가족, 개인,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중섭에게 시대가 미친 영향은 참 슬프다. 일본인 아내, 두 아들과 원산에서 생활하던 이중섭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오게 된다. 네 식구는 서귀포 작은 단칸방에서 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이중섭 거주지’다.

 

이중섭 거주지 전경
이중섭 거주지 전경

 

이중섭과 그의 가족이 생활하던 방의 크기는 정말 작다. 아이가 둘이라지만 네 사람이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이중섭은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이중섭 거주지는 예전 모습을 잃지 않고 지켜 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생활했던 방에는 작은 크기의 이중섭 사진이 정면에 놓여 있다. 또렷한 눈빛이 어쩐지 예술가답게 보였다. 제주도로 피난을 와서도 그림 작업을 놓지 않고 이어 갔던 그의 작가 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생활고는 심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이의 건강마저 나빠져 어쩔 수 없이 가족은 흩어지게 된다.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아이와 아내를 보내고 이중섭은 홀로 부산과 통영 일대를 전전하게 된다. 통영에서는 데생을 가르치며 작업을 이어 갔는데 이 시기에는 풍경화에 몰두하였다.

 

방에 놓여 있는 이중섭 사진
방에 놓여 있는 이중섭 사진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거주지 옆에는 이중섭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거주지 옆에 있어서일까 이중섭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감상하니 이중섭이 느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중섭의 작품에는 소, 어린이, 가족이 많이 등장한다. <황소> 그림은 역동적이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린 은지화는 아이들의 모습 덕분에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중섭의 대표 작품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은지화’다. 은지화는 담뱃갑 속의 은박지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다음, 먹이나 검은 물감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손바닥 크기의 은지화는 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은지화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은지화
은지화

 

이중섭은 1955년 1월에 개최한 개인전에서 은지화를 비롯해 4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독특한 화풍과 독창적인 소재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하지만 개인전 도중 당국에서 은지화 일부를 춘화로 분류해 작품을 철거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이중섭은 좌절감을 느낀다.

당국에서는 춘화로 분류된 반면에 미국에서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개인전 당시 은지화 3점을 구입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당시 대구미문화원 책임자였던 맥타가트다. 맥타가트는 구입한 은지화를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고 그로 인해 이중섭의 작품은 매혹적인 작품이란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비운의 예술가

이중섭미술관에는 작가의 예술혼이 보이는 작품과 함께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도 전시돼 있다. 편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내용이다. 가족과 떨어진 시기에 딱 한 번 이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의 정식 수교가 없었던 탓에 긴 시간 체류하지 못하고 어렵게 일주일의 체류 기간을 얻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헤어졌지만 그 후,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6년 이중섭은 영양실조와 정신 이상으로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참 쓸쓸한 마무리다. 이중섭 이름 앞에는 ‘비운의 예술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살다 간 삶을 보면 외롭고 쓸쓸하고 순탄치 못해 비운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어쩌면 그의 작품 뒤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라는 짐작을 해 본다.

 

이중섭의 작품 〈닭과 게〉
이중섭의 작품 〈닭과 게〉

 

이중섭의 일생을 알기 전에 이중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황소>였다. 그렇지만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에는 가족을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남게 되었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 그림은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리고 다정할수록 왠지 모를 쓸쓸함도 함께 다가왔다.

이제는 이중섭거리,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미술관은 서귀포시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곧 있음 가정의 달, 5월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이중섭의 작품을 관람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을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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