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의 문자의 시각적 상상력을 잊고 산다
우리는 표의 문자의 시각적 상상력을 잊고 산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7.24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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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필자가 과천에서 자원봉사 교육을 받았을 때 “자원봉사로 과천은 늘 행복합니다”라는 로고를 보고 문득 우리가 표의 문자의 시각적 상상력을 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고의 글자를 한자로 쓰면 ‘自願奉仕로 果川은 늘 幸福합니다’가 되어 과천(果川)이라는 지명이 갖고 있는 의미, 그리고 행복(幸福)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원봉사(自願奉仕)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영어와 같은 표음 문자(表音文字)이든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表意文字)이든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의미 단위인 어근을 기본으로 하여 의미를 확장해 간다. 우리나라 말의 어근의 대부분은 한자로 되어 있다.

한자는 자연의 현상이나 사물의 형상 등을 모방하여 표의 문자를 만들었고, 영어와 같은 표음 문자는 알파벳의 조합을 통하여 단어를 만들고, 기본 의미 단위를 만들고, 그 기본적인 의미 단어를 기본으로 확장해 간다. 특히 영어에서 학술 용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접두사, 어근, 어미, 접미사 등을 기본 단위로 하여 어휘를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 문자가 없이 언어생활을 해 오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쓰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한문 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다음 주를 기점으로 한문 수업은 없어지고 작문 시간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한문 시간이 폐지되고 작문 시간으로 바뀐 뒤, 48년째 교육 기관과 행정 기관에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모국어를 통하여 사고(思考)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모국어의 대부분은 한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자를 배제하고 한글만을 사용하는 것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정확한 사유와 사고를 한다고 말할 수 없고, 사고를 확장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비행기(飛行機)를 ‘날틀’로 쓰고, 학교(學校)를 ‘배움 집’이라고 쓰는 것은 동의하지만 한자를 쓰지 않고 그냥 ‘비행기’나 ‘학교’처럼 한글로만 쓰는 것은 반대한다. 날틀은 ‘날다’와 ‘틀(기계器械를 나타내는 순우리말)’이 합쳐진 말이기 때문에 飛行機라고 쓰지 않고 날틀이라고 쓰거나, 배움 집은 ‘배우다’에 명사 어미 ‘ㅁ’과 ‘집’이 결합되어 學校라고 쓰지 않고 배움 집이라고 쓸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학교를 쓰면서 한글로만 표기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한글로 표기된 비행기나 학교는 날틀이나 배움 집처럼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의미 단위로 나눌 수 없어 의미를 유추해 낼 수 없다. 한글로만 비행기를 쓰면 비행기가 어떻게 날아다니는 물체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학교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라는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호(國號)는 ‘大韓民國’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한글로 써 놓은 대한민국에 무슨 뜻이 있는가? 아무런 뜻도 없는 기억된 소리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大韓民國이라고 써야 주권(主權)이 국민(國民)에게 있는 큰 나라라는 뜻이 살아난다.

비행기가 영어의 ‘airplane’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날 비(飛)+다닐 행(行)+기계 기(機)처럼 최소 단위로 분해해야 한다. airplane도 ‘air’와 ‘plane’이라는 최소 의미 단위의 조합으로 비행기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로만 비행기라고 쓰면 날아다니는 기계라는 의미를 전혀 유추할 수가 없다. 비행기라는 소리를 ‘airplane(비행기)’이라고 기억해서 습관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이런 단순한 기억만으로는 다양한 사고와 추상적인 사유가 불가능하다.

필자가 어떤 독서 모임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이 “영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국어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질문의 내용을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비행기는 airplane이라고 일상에서 이해한다고 치자. 그럼 ‘추상’, ‘묘약’, ‘묘수’, ‘묘책’을 한글로 써 놓으면 어떻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한자를 몰라 쓸 수가 없으니 추상(abstract), 묘약(miracle drug), 묘수(excellent skill), 묘책(excellent plan)이라고 쓴다. 한자는 쓰지 않으면서 영어를 병기한다. 이 무슨 일인가!

‘한자를 쓰지 않아도 그 뜻을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쓰고, 읽고 있으며 영어와 같은 표음 문자에는 문자의 시각성이 없지 않느냐’고 필자의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영어와 기타 표음 문자들은 표의 문자인 한자와 같은 시각성은 없지만, 영어 단어도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이외의 것들은 접미사+어근+어미+접미사와 같은 최소 의미 단위의 구조로 되어 있다. 어휘의 뜻이 복잡하거나 추상화된 학술 용어, 특히 의학 용어의 거의 대부분은 위와 같은 구조로 분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영어도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의미의 최소 단위는 한자처럼 시각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어 단어 ‘electrocardiogram’은 심전도(心電圖)라는 말이다. electrocardiogram은 ‘electr(전기)’에 ‘o(연결 어미)’ 그리고 ‘cardi(심장)’에 ‘o(연결 어미)’와 ‘gram(기록)’이 조합된 것이므로 心電圖라는 의미가 된다. 영어 단어도 이렇게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의미 단위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心電圖라고 쓰지 않고 한글로 심전도라고만 쓰면 최소 의미 단위로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를 추론할 수 없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하려고 한자를 배운다’는 분명한 철학을 갖고 한자 교육을 시킨다. 우리나라는 세종 대왕이 창제한 한글만 쓰기를 고집하여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세종 대왕이 한자를 쓰지 말라고 한글을 창제하셨을까?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바른 음을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 한자를 가르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①국어는 중국 말과 다르므로 한자를 가지고는 잘 표현할 수 없고, ②우리의 국자(國字)가 없어서 문자 생활의 불편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③일상생활에서 편히 쓸 수 있게 하려고 만든 글자가 한글이지, 한자를 쓰지 말라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양 사람들은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죽은 언어인 라틴어 교육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키고 있다. 라틴어를 배우지 않으면 일상 언어 이상의 단계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라틴어를 배운다. 그리고 새로운 학술 용어를 만들 때 아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의 어근을 기반으로 하여 만든다.

다시 말해, 비행기가 airplane이 되기 이해서는 飛行機라고 표기되어야만 ‘비행기’가 되는 것이지, 한글로 비행기라고만 쓰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국가’, ‘경제’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우리말은 최소 의미 단위의 한자로 분해할 수 없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모국어로 제대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한자를 써야 한다는 관점으로 쓰였다. 한자를 써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억지 주장인가? 호적(戶籍)에 분명히 한글 이름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는데 일상에서는 한자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름은 거의 대부분 한자로 지으면서 왜 호적에 한자를 병기해도 한글만을 쓰게 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우리말 중에 ‘대추하다’라는 말이 있다. 가을을 기다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추(待秋)’는 한자어인데 한글로 ‘대추하다’라고 쓰고 가을을 기다린다는 의미라며 아름다운 한글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우매한가! 정녕 이러한 일을 우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러한 태도의 대한민국이 통탄스럽지 않은가?

모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다. 모국어 교육의 기본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한자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1492년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수천 년 동안 한자를 써 왔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단어와 학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도 거의 모두 한자로 되어 있다.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만 쓰게 되면 뜻도 잘 모르고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깊은 사유를 할 수 없고, 과거 조상들이 써 놓은 글을 읽을 수도 없게 된다.

요즈음 아름다운 모양으로 한글을 쓰는 캘리그래피가 유행하고 있다. 아름다운 한글 글씨를 개발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동야행(貞洞夜行)’을 한글로만 디자인하여 써 놓으면 멋진 한글 모양은 될지 모르겠지만, 貞洞夜行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모르면서 차량이 통제된 정동을 그저 걷고 즐기기만 하게 될 뿐이다. 하루빨리 한글과 한자를 함께 사용하여 표의 문자가 갖는 시각적 상상력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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