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역사의 맛, 단팥빵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역사의 맛, 단팥빵
  • 강태희 기자
  • 승인 2019.07.24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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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빵이다. 시장 빵집에서부터 유명 호텔 베이커리에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팥빵. 역시 단팥빵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럼 단팥빵은 언제, 어디서 등장하게 된 것일까? 사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팥을 앙금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히 서양의 주식인 빵과 팥을 접목한 한국 특유의 빵으로 단팥빵의 유래를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팥빵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앙팡(あんパン)을 원조로 한다. 언제부터 단팥빵은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곁으로 오게 된 것일까.

 

 

단팥빵의 역사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은 식생활도 서구식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빵과 고기를 주식으로 삼으려 노력하면서 일본에는 새로운 일본식 양식(洋食)들이 출현하였다. 일본인들은 기존의 소금과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서양의 딱딱한 빵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빵 반죽에 사케(酒)를 넣어 부드러운 빵을 만들어 내었다. 술누룩으로 발효시킨 반죽은 사실 잘 부풀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설탕을 첨가하면서 서양의 빵과는 다른 달콤한 맛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단팥으로 친숙함을 살리며 1874년 처음으로 등장한 앙팡(あんパン)은 일본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앙팡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이바라키현 출신의 사무라이 키무라 야스베에(木村安兵衛)로, 그는 아들 이사부로와 함께 수차례 실패를 거듭하여 앙팡을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그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인기를 끈 앙팡은 일왕의 식탁에까지 진상되었고 곧 일왕과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머지않아 일본의 국민 빵으로까지 자리매김한 앙팡은 당시 일제의 손아래 놓여 있던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앙팡, 단팥빵의역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 가게, 이성당

한국의 단팥빵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지역이 바로 군산이다. 군산에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빵집인 이성당(李盛堂)이 여전히 인기리에 영업을 하고 있다. 사실 군산에 빵집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군산은 일제가 호남 지역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거점으로 삼은 수탈 지역이었다. 1876년 체결된 병자수호조약을 통해 1899년 5월 군산이 개항되었고 1910년에는 한일 합방으로 일본인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쌀을 본격적으로 착취하면서 1919년에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228명이나 더 많은 도시가 되어 버리기도 하였다. 곧 1920년대 일제의 식민지로서 식량 및 원료 생산지가 되어 쌀을 수출하며 전국 제1의 수출항이 되었다. 군산항 부두에 쌓인 쌀을 보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은 “쌀의 군산!”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광복 후 비로소 이 아픈 수탈의 역사는 멈추게 되었지만,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건축물과 도로 등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 군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인들의 가옥과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이 군산에 생긴 이유도 군산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기 때문이다.

 

시중의 단팥빵들
시중의 단팥빵들

 

이성당도 본래는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이라는 일본 화과자점이었다. 일본의 소도시 ‘이즈모(出雲)’시의 이름에서 따온 이 제과점은 태평양 전쟁에 징집될 아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1906년 한국으로 이주해 온 한 일본인 가족이 연 제과점이었다. 이들은 이로부터 4년 뒤인 1910년 이즈모야 제과점을 차리고 튀긴 양과자를 팔아 영업을 개시하였다. 1920년에는 큰아들 겐이치가 도쿄로 빵 기술을 배우러 유학을 다녀온 후 서양의 제과 제빵 기술이 가게에 유입되면서 크림빵, 케이크, 단팥빵과 같은 다양한 빵이 인기리에 팔려 나갔다. 작은아들 스케지로 또한 이 기술을 전수받아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즈모야 제과점은 당시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임에도 빵을 배달하는 삼륜차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성공한 가게였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빵의 주재료였던 밀가루는 군산에서 구하여 사용하였으며, 그 안에 들어가는 빵의 속 재료들은 일본의 메이지 제과에서 공급받았다. 또한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자동화 기계와 조리 기구로 일본식 빵과 과자를 마치 본토에서 만들어 내듯 제작하였다. <군산일보>에까지 광고를 내는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군산의 명물 제과점으로 자리를 잡은 이즈모야 제과점은 송방골목에 분점까지 내며 승승장구한다. 분점은 커피숍과 레스토랑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는지,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하여 그 위에서 성공의 영광을 누리던 이즈모야 제과점은 1945년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더 이상 그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었다. 가게를 지키고 싶었던 겐이치는 끝끝내 군산에 남아 있고자 했으나 결국 해방 이후 머지않아 그도 대한민국을 영영 떠나게 된다. 이후 한국인 이석우 씨가 이즈모야 제과점을 인수하고 이성당으로 상호를 바꾸어 한국의 빵집으로 운영하였다. 그래서 군산 이성당에는 ‘since 1945’라고 적혀 있으며 가게의 모든 빵 포장지에서도 1945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볼 수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새 출발하게 된 까닭이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군산 쌀의 자존심, 이성당 쌀빵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에서 이성당(李盛堂)이 된 후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군산시청이 이전한 후로 중앙로 주변이 급속도로 상권을 잃어 가면서 이성당은 약 10년간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더욱이 1997년에 찾아온 IMF 금융 위기로 매출을 이어 나가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 속에 기회가 있듯 2010년 급작스레 불어온 복고 열풍으로 군산의 옛 모습과 거리가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곧 관광객들은 군산의 이모저모를 찾아다니다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빵집 이성당에 호기심을 갖고 방문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 온 빵 맛에 대한 노력의 대가일까, 이성당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짧은 시간 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最高)의 빵집으로 변모하였다.

이성당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도 하였는데, 2006년에는 밀가루를 쌀가루로 대체해 만든 반죽으로 쌀빵을 만들어 판매하고자 하였다. 이는 밀가루보다 몸에 좋은 쌀로 빵을 만들겠다는 조성용 대표의 오랜 염원을 담은 것으로 그는 1년 전인 2005년 ‘햇쌀마루’라는 브랜드로 군산에 쌀가루 전문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쌀빵은 이성당의 빵을 더욱 고소하게 만들어 주어 출시 이후부터 계속해서 매출이 늘게 되었다. 이성당은 샌드위치와 핫도그 반죽도 쌀가루로 만들며 아직까지도 모든 빵들을 100% 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 내고 있다. 확실히 이성당의 빵은 많이 먹어도 더부룩한 느낌이 없다. 일제 강점기부터 만들어졌던 밀가루 빵을 군산의 질 좋은 쌀로 대체하고 건강한 빵을 만들려는 노력과 정신은 이성당을 아직까지도 최고의 빵집으로 유지하게끔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성당은 빵에 인공 향료, 색소도 사용하지 않는다. 색을 내기 위해서 과일을 으깨고 천연 효모로 빵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다소 번거롭지만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대표 메뉴인 단팥빵 안의 앙금 또한 30년간 줄인 적이 없다고 한다. 조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늘 최선의 빵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우리 집을 대표하는 빵들은 수십 년 동안 내려온 레시피 그대로를 정확하게 지킵니다. 공장장이 바뀌어도 빵 맛은 바뀌지 않지요”라고 말하였다. 이성당의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빵 맛을 지키기 위한 수고로움과 대를 잇는 노력이 그대로 묻어난다.

쌀 수탈의 거점지 군산에서 100% 쌀빵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는 이성당의 빵들은 마치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저항하였던 우리의 자존심을 보는 것만 같다.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한국인 모두가 사랑하는 단팥빵. 단팥빵을 먹을 때마다 가슴 아픈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중의 단팥빵들
시중의 단팥빵들

 

오늘날 단팥빵의 현주소

어찌 보면 촌스럽고 둥글둥글 멋없는 단팥빵. 동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이 단팥빵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제 물릴 때도 되었건만 단팥빵 시장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빵 종류가 무궁무진해진 21세기에도 단팥빵은 아직도 언제나 판매 랭킹 상위권에 든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서양과자와 빵들 사이에서도 단팥빵은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켜 준 적이 없다. 심지어 서울의 고급 호텔 베이커리에서도 단팥빵은 없어서 못 파는 메뉴이다. 롯데호텔 베이커리 ‘델리카한스’의 단팥빵은 전체 빵 매출의 20%를 책임지고, 손님들은 하루에 세 번 단팥빵을 굽는 시간에 맞춰 빵을 사 간다. 단팥빵과 관련된 어느 기사의 인터뷰에서는 웨스틴조선호텔 베이커리 ‘조선델리’의 파티쉐가 단팥빵 판매로 당일의 빵 판매 흐름을 가늠한다고까지 하였다. 프랜차이즈 업계도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심지어 ‘파리바게뜨’의 한 체인점은 단팥빵을 매일 미끼 상품으로 팔면서 손님들을 유혹한다.

 

거리의 단팥빵 가게
거리의 단팥빵 가게

 

익숙함과 전통의 맛 단팥빵이 최근에는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춰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군산의 이성당과 대전의 ‘성심당’처럼 오래된 빵 가게의 익숙한 맛도 좋지만 지금은 ‘대구 근대골목단팥빵’, ‘빵장수단팥빵’처럼 아예 단팥빵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이 새로운 빵 가게들은 1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 단팥빵 시장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필자 또한 집 앞을 지나다 새로 생긴 단팥빵 가게를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 온 딸기 생크림 단팥빵은 기존의 단팥빵에 상큼한 딸기 생크림과 호두가 추가되어 신선하고 재미있는 맛과 식감을 즐긴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이렇게 생크림이 들어간 단팥빵들이 인기를 끌면서 하루에도 수백 개씩 불티나게 팔린다. 또 단팥빵에 버터를 끼운 버터 단팥빵, 프레첼에 버터와 단팥을 같이 넣은 새로운 형태의 서양식 단팥빵도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팥빵의 새로운 변신. 70년간 이어져 온 단팥빵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물론 우리의 역사도 잊지 않고 함께.

 

딸기 생크림 단팥빵
딸기 생크림 단팥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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