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절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
해변의 절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
  • 박기상 기자
  • 승인 2019.08.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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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철썩이는 해동 용궁사에 봄바람이 살랑인다.

수도승의 염불 소리도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구나.

백팔 계단 오르면 인간의 고뇌를 해소할 수 있는가.

오늘도 해동 용궁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해동 용궁사는 꼭 바다 위에 사찰이 서 있는 듯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상쾌한 느낌도 들고 도심에 있다가 이렇게 조용한 자연 속에 있으니 맘도 편안해진다.

 

해변 길에서 바라본 해동 용궁사
해변 길에서 바라본 해동 용궁사

 

해안가 바위 절벽 사이에 묘하게 세워진 절

해동 용궁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에 소재한 사찰이다. 기장(機張)이라는 지명은 신라 시대에는 갑화양곡(甲畵良谷)이라 했다. 그 후 기장으로 개명되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갑화양곡(甲畵良谷)이라는 말을 신라 시대 이두(吏頭)식으로 풀이하면 첫째를 의미한다. 어의를 그대로 살려 ‘첫째 마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귀환할 때 처음으로 닿는다는 정감 어린 표현이 지명으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은 부산 기장에 있는 해동 용궁사를 답사하기로 했다. 서경주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용궁사로 향했다. 아파트 숲 사이로 지나는 열차는 평소 늘 생활하는 곳이지만 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좀 더 흥미롭고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많은 세월을 여유 없이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런 여유 있는 속도로 여행하는 것이 얼마 만인가. 사람들은 평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속하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는가 보다.

1시간 반 정도 후 기장역에 도착했다. 가는 길이 초행길이라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동 용궁사 입구에 들어서니 날씨도 쾌청하고 봄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란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사찰 입구 양쪽으로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절 입구를 지키는 십이지 신상
절 입구를 지키는 십이지 신상

 

해동 용궁사는 해안가 바위 절벽 사이에 묘하게 세워진 절이다. 산속의 고즈넉한 절의 분위기와 차이가 많이 난다. 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水上法堂)이다. 절 입구에는 십이지 신상이 지키고 있다. 본인 띠에 맞는 십이지 신상 옆에서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분주하다.

 

해동 용궁사 표지석
해동 용궁사 표지석

 

교통안전기원탑
교통안전기원탑

 

1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절

그 옆 현판에는 ‘이 해동 용궁사는 1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다. 108계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교통안전기원탑이 서 있다.

 

해수관음대불
해수관음대불

 

108계단을 내려가면 바닷가 기암괴석들 뒤에 천연 요새 같은 절경을 감싸 안은 용궁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배 부위에 까만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 재미있다. 계단이 너무 비좁아서 사람들과 서로 비켜 가면서 내려간다. 마음을 닦아주는 듯 단아한 돌계단을 내려가면 마치 용궁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바다를 마주한 용궁사를 만나게 된다. 여러 곳에 소원을 기도하는 장소들이 있고 그 앞에는 예외 없이 여러 개의 불전함이 놓여 있다. 황금 돼지 두 마리가 인자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도 슬쩍 한번 만지며 복을 기원해 보았다.

대웅전 앞에는 4사자 3층 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고 6·25 전쟁 당시 해안 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 이 밖에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인 약 10m 높이의 약사여래불이 있다. 이 불상은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는 좌상으로, 어깨와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고 신체 비례도 적당하다.

감로약수(甘露藥水)터가 보인다.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 보니 물속에 사람들이 동전을 너무 많이 던져 놓았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굴법당은 미륵전이라고 하여 창건 때부터 미륵좌상 석불이 있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기도하면 자손을 얻게 된다 하여 득남불이라고 부른다. 법당에 들어가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절집의 특색처럼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사찰의 스님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이 절의 스님들은 어디에서 수행(修行)과 고행(苦行)을 하는지 무척 궁금하다.

황금색을 칠한 아주 큰 부처에서부터 여러 곳에 많은 부처와 석등 등의 석조물이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 전통 사찰에서 보는 모습과 좀 다르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 특이한 점이 많은 사찰이다. 이제 절도 국제화 시대의 영향을 받는 건가? 어딘지 모르게 중국 사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2014년 11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된 목조여래좌상이 있다. 목조여래좌상은 결가부좌의 자세에 오른쪽 손바닥은 바깥으로 하여 어깨 부위까지 들고, 왼쪽 손은 다리 위에 살짝 든 상태에서 1지와 3지를 맞댄 아미타인을 하고 있다. 내부 구조는 다리와 몸통 2부분이 결구된 접목조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이 불상은 17세기 전반에 전국적으로 활동한 조각승인 현진의 불상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해동 용궁사 전경
해동 용궁사 전경

 

해동 용궁사 반대편 바닷가로 산책로 길이 펼쳐져 있어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이어진 곳에 국립수산과학관이 있다. 과학관에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많다.

 

해동 용궁사의 창건 역사

해동 용궁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한국의 삼대(三代) 관음 성지 중 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어 그 어느 곳보다도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절이다.

동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동 용궁사는 1376년에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 창건하였다. 나옹화상 혜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蓬萊山)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곳에 절을 지어 보문사(普門寺)라 하였고, 산 이름을 봉래산이라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雲崗)이 중창하였다.

1974년 정암(晸菴)이 부임하여 관음 도량(관세음보살의 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을 해동 용궁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 용왕당(용궁단),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70년대에 정암이 중창하였다.

부산은 어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부산에서 유명 관광지인 해동 용궁사 입구에서 부산 어묵 4대 명가를 중심으로 주말마다 부산어묵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해동 용궁사에서 운치 있는 사찰과 바다를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산의 대표 간식거리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주말마다 해동 용궁사를 찾는다.

봄 햇살이 좋았다. 봄의 햇빛이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날씨는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여행 중에는 더욱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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