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과학의 도시, 그 안에 숨겨진 이면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급성장한 과학의 도시, 그 안에 숨겨진 이면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9.05.23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녁이 찾아오는 옛 충남도청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저녁이 찾아오는 옛 충남도청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오늘날 사람들은 대전을 ‘과학의 도시’, ‘교통의 요충지’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전의 가파른 성장 이면에 한국 역사의 비극이 담겨 있음에도, 이 점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대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옛 충남도청에 자리한 근현대사 전시관

대전역을 등지고 대로변을 걷다보면 옛 충남도청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한말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은 대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31년 결성한 ‘충남도청 대전기성회’의 로비로 인해 1932년 10월 대전으 로 이전했다. 그 후 대전 충남도청은 2012년 12월 내포 신도시로 옮기기 전까지 약 80년 간 도민을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개보수가 있었지만, 원형을 잘 보존한 덕에 종종 드라마, 영화 촬영 장소로 쓰였고 영화 <변호인>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현재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개방된 대전 충남도청에는 2개의 전시관이 있다. 하나는 도청에서 근무했던 도지사의 집무실과 접견실이고, 다른 하 나는 본관 1층 왼편에 자리한 근현대사 전시관이다.

 

옛 충남도청 왼편에 위치한 근현대사 전시관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옛 충남도청 왼편에 위치한 근현대사 전시관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철도 역사와 함께하다

대전의 근대화는 철도 산업의 발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전역 옆에는 한국 철도 공사 본사가 있는데, 이는 대전과 철도 산업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는지 알려준다. 1905년 개통 된 대전역은 당시 간이역에 불과했다. 역이 자리한 원동, 중동, 정동 일대에는 원래 갈대만 무성해 사람 이 거의 살지 않았다. 배산임수를 중시한 조선인들은 인근 ‘소제호’(蘇堤湖)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소제호는 우암 송시열이 거처로 삼았을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 제는 대전을 식량 수탈과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한 교통의 요충지로 이용하고자, 치수 사업으로 소제호를 메우고 대전역을 건설했다. 이 주변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증가하자 도시 중심지 역시 조선인이 밀집된 회덕군, 진잠현, 유성현, 덕진현에서 대전역 일대로 이동했다. 중심지의 변화는 전통 마을의 파괴를 불러 왔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소제동인데, 오늘날 소제동은 우암 선생이 살던 그때의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관 안에 있는 구한말 대전 지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선인보다 일본인이 많았던 도시

대전의 변화에는 그곳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영향이 컸다. 1905년 부관 연락선(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 사이를 운항하는 연락선)이 설치되자 일본인들이 대거 조선으로 유입됐다. 그중 188명이 대전역 주변에 정 착했다. 일본인 이주자 수는 매년 증가해 1917년에는 대전에 거주하는 조선인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이 들은 대전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고자 거류민회를 조직, 조선 총독부에 로비하여 도시에 필요한 여러 시설을 정비했다. 1909년 조직된 삼남철도기성회는 대전이 호남선 철도 분기점으로 거듭나는 데 큰 역 할을 해냈고, 1931년에는 충남도청 대전기성회를 결성해 1년 뒤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 하도록 했다. 대전역에서 목척교를 지나 대전 충남도청까지의 거리는 시쳇말로 ‘핫 플레이스’로 변모했 다. 대전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노래 <대전소패>, <대전행진곡>에서도 드러나는데, 노래 가사 일부분이 근현대사 전시관에 적혀있다.

 

전시되어 있는 대전의 노래
전시되어 있는 대전의 노래

 

조선인이 존경하던 일본인

당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전통과 질서를 파괴한 침략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드물게 존경 을 받는 인물도 있었다. 1904년 대전으로 이주해온 후지츄 간장 공장의 2대 사장이었던 쓰지 만타로가 그중 한 사람이다. 1909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후지츄 간장을 대전·충남을 대표하던 기업을 넘어 경 성·만주에까지 대리점을 둘 정도로 번창시켰다. 그는 일제 식민 통치와 정책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는 데,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은 곧 패망할 것”이라고 일본군 장교들과 설전을 벌인 일과 일본이 패망한 뒤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인 종업원들이 부산항을 거쳐 일본까지 그를 배웅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전시 관에는 쓰지 만타로 부부 사진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 쟁의로 노동자 권리 쟁취

다수의 일본 경영인은 부당 착취와 임금 삭감 등으로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1930년대 대전을 포함한 전국에서 노동 쟁의가 활발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이에 근현대사 전시관에서는 군시제사 대전 공장 노동자 파업을 하나의 주제로 정해 관람객에게 전달했다. 군시제사(주)는 일본 3대 재벌이던 미쓰이사(社)의 계열사로, 대전·대구·청주·대만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 1926년 동구 효동에 들어선 대전 공장은 전국 생산량의 5%, 대전·충남의 65%를 차지했다. 첫 파업은 1932년 1월 7 일 남자 직공들이 일본인 관리자들을 구타한 사건을 발단으로, 여직공 600여 명이 가담하는 대규모의 동맹 파업으로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식사 개선, 인종 차별 반대, 조선인 해고 반대, 일본인 교육계장과 인사계장의 면직을 요구했고, 파업 7일째 경성 본사에서 파견된 간부의 중재로 요구 조건 대부분이 수용됐다. 그 후 1936년까지 총 네 차례 쟁의가 발생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 다. 하지만 그 외의 노동 운동이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가담자는 모두 대전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념 갈등의 참변, 대전 교도소 학살

근현대사 전시관 맨 뒤편은 한국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한국 은 한국 전쟁이라는 시련을 겪었고, 대전에서는 두 차례의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 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시키려는 행위)가 발생했다. 한번은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발생했 는데, 당시 대전 임시 정부가 부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대전 교도소 재소자들과 국민 보도 연맹원 등을 대상으로 자행된 학살은 누가 명령한 것인지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 후 대전을 점령한 북한군 의 ‘수감 인사들에 대한 조치’에 의해 철수 직전 점령 지역 내에서 광범위하게 학살이 벌어졌는데, 대전 교도소에서 우파들이 가장 많이 희생됐다. 두 차례에 걸쳐 대략 3,3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 시관 한쪽 벽면에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설명 글과 영상이 있고, 좀 더 걸어가면 바닥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전 지도가 있다. 붉은 표시는 불타서 없어진 흔적이고, 빗금은 전쟁 중 소실된 건물들이라고 한다. 대전역 주변도 충남도청 건물을 제외하고 대부분 소실됐다.

 

한국 전쟁 이후 대전의 모습이 표현된 지도
한국 전쟁 이후 대전의 모습이 표현된 지도

 

잘 알지 못한 대전의 아픔

근현대사 전시관은 대전 근현대사에 중요한 인물, 사건 등을 중심으로 여덟 주제가 있다. 전시 공간은 그리 넓지 않지만 언급된 내용은 핵심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전시관은 일제 강점기 전후 변화한 대전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대전 주민조차 잘 알지 못했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다만, 대전 출신의 계몽 운동가와 독립운동가에 대 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위정척사론을 주장한 연재 송병선을 제외하고는 따로 분류하여 상세하게 다룬 선조가 많지 않았다.

 

연재 송병선에 대한 기록
연재 송병선에 대한 기록

 

또 한국 전쟁 이후 대덕 연구 단지 준공과 세계 박람회 개최 등 오늘날 대전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들은 나와있지만, 구한말부터 한국 전쟁까지의 전 시물과 비교했을 때 내용이 다소 부실했다. 전시 공간에서 부족한 부분 들은 그곳에 상주해있는 해설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지만, 전반적으로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공간으로써 존재하고 있다.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내부 (이하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내부 (이하 출처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위치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 (선화동)

연락처 042-226-8385

관람 시간 10:00~17:00(매주 월요일, 설·추석 연휴 휴관)

관람료 무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