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자물쇠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자물쇠
  • 전다영 기자
  • 승인 2019.08.02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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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은입사수부희자명 자물쇠, 조선 시대, 길이 18.5cm, 너비 9.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제은입사수부희자명 자물쇠, 조선 시대, 길이 18.5cm, 너비 9.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매우 단단하고 두꺼운 판으로 만든 커다란 상자 하나가 있었다. 안에는 세상의 진귀한 보물이 들어 있다 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상자를 열기 위해 달려들었다. 마을에서 제일간다는 천하장사가 와서 상자를 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상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최고의 검을 다룬다는 검객이 와서 검을 이용하여 상자를 열려고 시도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여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어느 가녀린 여인 한 명이 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상자는 아주 손쉽게 열렸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이 아무도 열지 못한 단단한 상자를 단번에 연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여인은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상자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가지고 왔을 뿐이었다.

 

자물쇠라는 말은 ‘잠그다’라는 뜻의 ‘자므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중요한 것을 보관할 때 자물쇠로 잠그고, 물건의 주인은 원할 때 그 물건을 손쉽게 꺼내기 위하여 열쇠를 지니고 다닌다. 덕분에 우리는 24시간 동안 우리의 물건과 재산들을 지키고 서 있지 않고도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지금은 현관문 잠금장치가 번호키인 경우가 많아 자물쇠와 열쇠가 우리에게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집 내부의 방문, 사물함, 자동차 등 여전히 이것들은 우리와 친밀하다.

자물쇠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경우 2세기경에, 이집트는 무려 기원전 약 20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까지의 우리나라 자물쇠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그 모습과는 좀 다르다. 크기도 더 크고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양식이 특징이다.

자물쇠는 그 모양과 형태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ㄷ’자형, 원통형, 함박형 등으로 나뉜다. 조선 시대 자물쇠의 기본형은 ‘ㄷ’자형 자물쇠이다. 이 자물쇠는 잠그는 기능이 들어 있는 자물통과 자물쇠를 결합한 부분이 ‘ㄷ’자 모양을 한다. 편평하고 직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원통 모양을 하고 있으면 원통형 자물쇠이다. 함박형 자물쇠에서 ‘함박’은 ‘함지박’의 준말로, 바가지 같이 만든 둥글고 큰 그릇을 일컫는다. 기본형 자물쇠에 함박 모양의 둥근 부분이 추가된 것이 함박형 자물쇠인데 대부분이 이 둥근 함박 모양 부분에 열쇠 구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자물쇠에 복과 장수 등을 상징하는 문양을 넣어 무탈하고 행복한 삶을 염원하였다. 또한 자물쇠 중에는 물고기 모양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물고기가 알을 많이 낳는 모습에서 다산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당초문 열쇠패, 조선 시대, 길이 14.6cm, 너비 11.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당초문 열쇠패, 조선 시대, 길이 14.6cm, 너비 11.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무리 튼튼하고 아름다운 자물쇠일지라도 열쇠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자물쇠에는 열쇠가 반드시 있다. 우리나라의 열쇠에는 열쇠패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열쇠패는 지금의 열쇠고리와 유사하다. 열쇠에 목각이나 녹각(사슴뿔)으로 만들어진 패를 달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고 열쇠에 대한 정보도 적어 열쇠들을 관리하기 편하도록 하였었다. 그리고 그 패는 장식적인 면도 함께 곁들여졌는데 그 장식성이 뛰어나 하나의 공예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열쇠패에도 여러 가지 문양이 쓰였다. 각각의 문양은 그것들이 뜻하는 바를 지니고 있다.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십장생은 장수 등을 상징하는데 여러 장식이 있는 동전 모양의 별전 열쇠패는 무병장수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혼인하는 딸의 예단함에 넣어 보내기도 하였었다.

사람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열쇠패를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고 집안을 장식하는 장신구로도 사용하였다. 특히 실용적인 면보다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적인 부분을 강조한 열쇠패는 감상용으로도 다루어졌다. 열쇠패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그것을 전시하며 감상하는 문화는 전 세계의 역사를 보았을 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이며 유일하다.

모든 사람들이 현관문을 잠그듯 자물쇠는 과거 우리 선조들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공예품이다. 자물쇠의 본래 기능은 귀중품 보관과 재산에 대한 보안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쇳대박물관의 전경
쇳대박물관의 전경

 

이러한 우리나라 자물쇠의 역사와 예술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해 있는 ‘쇳대박물관’이다. ‘쇳대’는 열쇠의 방언인데 사라져 가는 우리의 자물쇠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여 관람객들에게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독특한 자물쇠들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자물쇠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는 특별한 박물관이다. 자물쇠의 문화적인 의미와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멋지고 감사하기도 하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쇳대박물관은 건축적 측면으로도 의미가 뜻깊다. 쇳대박물관의 모형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는데,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최초로 현역 건축가의 작업을 소장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건축의 실용적인 측면이 아닌 문화 예술적 가치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 일상의 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자물쇠의 가치와도 잘 어우러지는 듯하다. 쇳대박물관에 방문하여 뜻깊은 건축물 안에서 직접 눈으로 우리나라의 자물쇠를 감상한다면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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