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안아 주는 남양성모성지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안아 주는 남양성모성지
  • 박기범 기자
  • 승인 2019.10.02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조용한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우리는 보통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행은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종교와 상관없이 하루 혹은 반나절의 시간으로 나를 찾아 떠나고 싶다면 남양성모성지를 찾아보자.

 

남양성모성지 입구
남양성모성지 입구

 

 

신도들의 마음을 초에 담아 성모에게 봉헌을 하는 초 봉헌실
신도들의 마음을 초에 담아 성모에게 봉헌을 하는 초 봉헌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성지

남양성모성지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됐다. 성모성지는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곳이며 전 세계적으로 1,800여 곳이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성모성지 선포 후 다양한 종교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 남양은 행정 기구인 도호부가 있었고, 천주교 박해 당시 남양 도호부로 잡혀 온 교인들이 남양성모 성지에서 처형됐다. <병인치명사적>,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 <치명일기> 등 여러 기록과 증언을 통해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충청), 정 필립보(용인), 김홍서(수원) 등이 당시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남양 도호부에 의해 체포된 천주교 신자는 9명이었다. 이 중 양반 등 신분이 높은 신자들 4명은 서울과 수원의 상급 기관으로 이송되고, 나머지 5명은 남양에 투옥됐다. 병인년 박해의 규모와 남양이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해진 지역이라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이보다 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양에 투옥된 신자 중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는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박해가 진행되자 충청도에 있는 사위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결국 포졸들에 의해 김 필립보가 붙잡혔고, 아내 박 마리아가 “남편을 따라가 함께 죽겠다”며 스스로 따라나섰다. 남양옥에 갇힌 부부는 문초와 형벌을 받던 중 한날한시에 나란히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이벽 요한세례자와 동료 순교자 132위’에 올라있다.

남양성모성지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이곳은 종교인들이라면 한 번쯤 순례를 하는 성지가 됐다. 그리고 비종교인들은 넓고 아늑한 공간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녹아들며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얻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모 마리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남양성모성지는 그래서인지 항상 많은 사람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순교의 의미를 돌아보는 공간

큰길에서 하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남양성모성지 입구에 도착한다. 성지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잔디 광장이 한눈에 들어 온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지만 녹음이 가득한 성지의 모습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듯하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따라 잠시 걷다 보면 그리스도가 두 팔을 벌리고 모든 이들을 환영해 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의 그리스도 상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의 그리스도 상

 

 

대형 묵주 알이 1km에 걸쳐 놓여 있는 묵주 기도 길
대형 묵주 알이 1km에 걸쳐 놓여 있는 묵주 기도 길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요셉과 십자가에서 고행을 하는 예수, 마더 테레사 수녀, 피에타 상 및 여러 성인의 성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도 상을 바라보고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묵주 기도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곳에는 대형 묵주 알이 1km 정도 길을 따라 놓여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묵주 알 위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는 신도들의 경건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서로 닮은 블라디미르 성모(사진 왼쪽)와 남양성모성지 묵주 기도 길(사진 오른쪽).
서로 닮은 블라디미르 성모(사진 왼쪽)와 남양성모성지 묵주 기도 길(사진 오른쪽).

 

1km 코스가 제법 길어 보이지만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비종교인들도 천천히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남양성모성지에서는 매일 오전에 주임 신부와 함께하는 묵주 기도가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시간을 맞춰 함께해도 좋을 것이다. 묵주 기도 길은 한 번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공사 끝에 완성됐다. 설계 도면도 없이 조금씩 주변 땅을 매입하면서 야산을 파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공사가 끝난 뒤 나타난 전체적인 모습이 블라디미르의 성모와 닮아 신도들을 놀라게 했다. 이 길을 조성할 때 길 중간에 무덤이 있었는데 매입하지 못해 무덤 주변에 나무만 심어야 했다. 그런데 길이 완성되고 나니 무덤 부분이 오히려 블라디미르의 성모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기 예수의 얼굴 위치와 비슷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래서 남양성모성지를 찾는 신도들은 묵주 기도의 길을 신성하게 생각하며, 성모가 자신들과 함께 있다고 느끼고 있다.

 

묵주 기도 길 끝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성상이 있다.
묵주 기도 길 끝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성상이 있다.

 

남양성모성지에는 아기 예수가 성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모습의 성상이 있다. 그런데 성모의 모습이 조금 독특하다. 머리에 베일도 쓰지 않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한국의 어머니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남양성모상은 조각 과정에서 얼굴, 머리 모양, 옷 등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단아하고 정숙한 옛 어머니들의 모습이 성모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는 남양성모성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는 남양성모성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화

남양성모성지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벚꽃도 가득 피어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성지와 주변에 녹음이 가득해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 가기에도 좋다. 단풍이 찾아오는 가을에도, 눈이 내린 겨울에도 성지는 계절마다 멋진 풍경을 보여 주며 언제나 사람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더구나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잠시만 시간을 내어도 방문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를 떠나 남양성모성지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기 위해 신도가 아닌 사람 중에도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남양성모성지는 ‘여행’ 삼아 한 번쯤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자주 방문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종교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성지 가득한 신성한 기운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이 ‘방전’된 것처럼 지쳐 있다면 남양성모성지를 찾아보자. 성지를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충전’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