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의 역사와 문화를 한 자리에,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의 역사와 문화를 한 자리에, 고흥분청문화박물관
  • 송영대 기자
  • 승인 2019.10.0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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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산 아래에 자리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원경
운암산 아래에 자리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원경

 

고흥의 운대리 도요지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주요 가마터 중 하나였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초기 청자의 기원과 분청사기의 변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989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해 고려 시대 청자 가마터 5기와 조선 시대 분청사기 가마터 25기가 발견되었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외관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외관

 

2000년대 이후로 고흥반도에서는 백제 시대의 주요 고분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과 야막고분 등의발견은 전라남도 일대의 백제사와 백제 고고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 들어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특별한 테마의 박물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고흥에서도 분청사기 생산지인 운대리 도요지를 강조하고,백제 고분의 발견 및 고인돌과 여러 향토 유물 전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2017년에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박물관의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공간
박물관의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공간

 

청록빛을 머금은 박물관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외관은 청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밑의 부분은 붉은색이며, 그 위에 청록빛 타일을 씌워 놓은 모습이다. 이는 청자나 분청사기를 굽기 전의 모습과 굽고 난 이후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청자나 분청사기와 같은 도자기는 흙으로 빚어 그릇의 형태를 먼저 만들고 이후 유약을 발라 구워 내는데, 박물관의 외관 자체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박물관은 총 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역사 문화실·분청사기실·특별 전시실·한국의 분청사기실·설화 문학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기획 전시실·아시아 도자실·체험 학습실·강당 등이 마련되어 있다. 주로 관람을 하는 공간은 1층과 2층의 일부 전시실에 해당한다. 2층으로 가는 공간에는 하얀 천을 이용하여 분청사기나 유적지, 전설 및 설화 장면을 그려 놓아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 정원의 운대 고인돌
중앙 정원의 운대 고인돌

 

박물관에 들어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천정이 뚫려 있는 정원이 눈에 바로 들어온다. 중앙 정원은 중국의 전통 가옥인 사합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내부에는 고인돌과 석탑이 배치되었다. 고인돌은 총 3기가 있는데 고흥 운대 1호·2호·3호 고인돌이라 적혀 있다. 3기 모두 기반식(바둑판식) 고인돌에 해당하며, 덮개돌의 무게는 5~8톤에 이른다. 이 고인돌들은 고흥-벌교 간 국도 제27호선 확장·포장 공사 도중에 발견되었다.

고흥 상림리 삼층 석탑은 기단부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천희(天禧) 5년”은 북송 진종의 연호로 1021년에 해당한다. 즉 고려 시대 현종 21년에 세워진 석탑임을 알 수 있다. 기단부 상단에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옥개 받침은 4단의 층급이 있다. 본래 기단부와 지붕돌 정도만 남아 있었으나 1990년에 풍양면사무소로 옮겨지면서 복원되었고, 이후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고흥 상림리 삼층 석탑
고흥 상림리 삼층 석탑

 

 

고흥의 역사가 시작되다

고흥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고흥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역사적 유물은 바로 구석기 시대 유물이다.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에서는 고흥-녹동 간 도로 확장 공사를 하다가 2004년에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에서 총 1,56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몸돌과 톱날석기 등의 뗀석기가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유적은18,000여 년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임을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몸돌·돌날·격지·긁개·톱날석기 등이 전시되었다.

 

한동 유적에서 출토된 뗀석기 유물
한동 유적에서 출토된 뗀석기 유물

 

고흥을 대표하는 선사 유적은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우리나라전역에서 발견되지만, 이 중에서도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주로 집중되어 있다. 고흥 지역에는 194개의 고인돌군에서 2,244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 최대 밀집 분포 지역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고인돌 내에서는 비파형 동검을 비롯한 청동기가 출토되거나 간 돌검이나 돌 화살촉 및 민무늬 토기가 출토된다.

고흥 지역에서는 주로 기반식 고인돌과 개석식 고인돌이 확인된다. 박물관에서는 세계 최초로 비파형 동검이 운대 고인돌에서 발굴되었다고 소개해 놓았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과 한국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1927년 운대 고인돌에서 슴베에 홈이 있는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

역사 문화실의 가운데에는 고인돌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고인돌과는 다르게 덮개석을 걷어 놓은 모습으로 전시하여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두원면 운대 13호 기반식 고인돌에서는 비파형 동검을 비롯하여 돌 화살촉·숫돌·민무늬 토기 편 등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 동강면 한천 17호 고인돌과 점암면 안치 7호 고인돌의 내부 모형도 함께 전시되었다.

 

두원면 운대 13호 고인돌의 내부 모습
두원면 운대 13호 고인돌의 내부 모습

 

백제 시대 권력자가 남긴 유물들

고흥 지역의 고대 문화는 마한과 백제로 일컬어진다. 백제가 전라남도 일대를 장악하기 전에 고흥은 마한의 영역에 해당 하였다. 2006년에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고분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무덤 정상부에 무덤의 주인이 묻혀 있었다. 수혈식 석곽 속에서는 금동 관모·금동 신발·투구·갑옷·살포·환두대도·청동 거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 시대의 권력자 무덤에서 금동 관모와 금동 신발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안동고분의 존재는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풍양면의 야막 고분이 뒤에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도 권력자가 사용하였던 투구와 갑옷 등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안동고분에서 발견된 갑옷은 투구·견갑·판갑으로 구분할 수 있다. 투구는 차양주라고 하여, 모자의 챙과 같이 생긴 부분이 길고 넓게 만들어진 점이 특징이다. 견갑은 어깨를 보호하는 갑옷으로 판갑과 함께 짝을 이룬다. 판갑은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으로, 주로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는 갑옷과 형태가 유사하다. 삼국 시대의 판갑옷은 가야와 왜가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안동고분은 무덤에 붉은 칠이 되어 있다는점과 왜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이유로, 왜계 유적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투구와 갑옷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투구와 갑옷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관모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관모

 

금동 신발과 금동 관모는 삼국 시대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들의 무덤에서 확인되는 유물이며 그 수는 매우 적다. 일본에서도 금동 신발과 금동 관모가 확인되는데, 그 형태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백제와의 연관서 금동 신발과 금동 관모는 석곽의 끝부분에서 발견되었기에, 무덤의 주인이 머리에 쓰거나 발에 신은 상태가 아니라 별도로 상자에 보관되어 부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박물관에는 백제 시대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전시되었다. 고흥 지역에는 한동리산성·남양리산성·백치성·독치성이 남아 있다. 낮은 산에 소규모로 축성된 것이 특징이며, 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계곡 방향으로 성벽이 세워졌다. 도화면 백치성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눈길을 끄는 유물로 확쇠(確金)가 있었다. 확쇠는 성문을 열거나 닫을 때 쓰는 회전축 장치이다. 백제인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두꺼운 성문을 만들었으며, 성벽에 홈을 파서 확쇠를 설치하고 그 위에 성문을 달았다.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
안동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

 

고흥 백치성에서 출토된 확쇠
고흥 백치성에서 출토된 확쇠

 

고흥 금탑사의 옥등
고흥 금탑사의 옥등

 

고흥의 불교 미술을 엿보다

박물관에는 고흥의 불교 미술과 관련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금탑사 옥등은 조선 시대의 유물로 송광사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유물이다. 3점의 옥등이 있는데, 이는 금탑사의 석등 안에 넣어 두었던 등불이다. 오늘날 석등은 석탑과 함께 사찰 경내의 주요 유물 정도로 인식된다. 조선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불을 많이 밝힐 수 없었는데, 석등 안에 옥으로 쪼아 만든 큰 등잔을 두고 그 안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주변을 비추었다.

금탑사 괘불탱 또한 눈길을 끄는 유물이다. 이 유물은 보물 제13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박물관에 있는 탱화는 영인본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 18세기의 불화로, 전라남도 일대에서활동한 화승(畵僧) 비현(丕賢)과 그 제자 쾌윤(快允)이 그린 것이다. ‘괘불’이란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탱화를 의미한다. 금탑사 괘불은 석가모니불·약사불·아미타불의 삼불과 협시보살이 있는 구도로 구성되었다. 보통 괘불은 세로가긴 형태인데, 금탑사는 특이하게 가로가 긴 형태로 만들어졌다.

 

고흥 금탑사의 괘불탱
고흥 금탑사의 괘불탱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다

고흥 운대리 도요지는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유적이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고려 시대의 청자, 조선 시대의 백자로 주로 대표된다. 그 사이의 분청사기는 그동안 크게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근래 들어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고흥 운대리 도요지는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생산 유적으로, 25기에 이르는 가마터가 발견되었기에 생산이 장기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운대리 도요지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을 전시했다. 사실 도요지 즉 가마터 주변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예술적인 가치를 크게 취급받지는 못한다. 가마터 주변의 폐기장에서 유물들이 주로 출토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조선 시대에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들은 시중에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폐기되었다.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는 비록 예술적 가치는 떨어질지라도 당시 어떠한 기종들이 제작되었는지, 또 어떠한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전시실에는 운대리 1호·2호·7호·14호·15호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가 있다. 폐기된 분청사기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유물들을 주로 선정하여 전시하였으며, 분청사기 제작에 사용된 여러 기법들도 설명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높인다.

 

분청사기 조각으로 장식한 전시실 벽면
분청사기 조각으로 장식한 전시실 벽면

 

박물관 한쪽 벽면은 운대리 도요지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를 빼곡하게 쌓아 올려 벽처럼 만들었다. 보통 박물관에서는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분류하여 수장고에 보관한다. 이곳에서는 다소 과감할 수도 있지만 유물들로 벽을 쌓고 유리로 막아 놓아서 관람객들에게 독특한 촬영 배경을 제공한다. 아울러 운대리 도요지에서 출토된 유물이 얼마나 많은지 직접 실감할 수 있게 해 준다. 벽면 아래에는 가마터를 복원하여 전시해 놓았다. 가마터 크기는 1/2로 만들어 놓았는데, 전시 공간의 크기문제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크기보다 줄여서 복원하였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고흥 운대리 14호·15호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고흥 운대리 14호·15호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고흥 지역의 설화

고흥 지역에는 다양한 설화가 남아 있다. 박물관에서는 이에 착안하여 설화 문학실이라는 전시 공간과 외부에 동상을 만든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다. 설화 문학실은 고흥 지역 설화를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기념품도 진열해 놓았으며, 민속 유물들을 놓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존도 마련하였다.

박물관 외부에는 청동으로 만든 설화 인물상이 전시되어 있다. 설화의 주요 장면을 동상으로 만들고, 그 아래에 관련 설화의 내용을 적어 놓아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이 중에서도 송팔응 장군과 백마 동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흥의 유명한 명산인 팔영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상이다.

 

송팔응 장군과 백마 동상
송팔응 장군과 백마 동상

 

송팔응은 어려서부터 팔영산에서 무예를 연마하였는데, 자신의 애마인 백마의 능력을 가늠하고자 화살과 백마의 속도를 시험하였다. 송팔응은 팔영산 봉우리를 향해 화살을 쏘았고, 목표한 곳에 갔을 때 화살이 보이지 않아 백마가 늦었다며 그 목을 단칼에 베었다. 그때 뒤늦게 화살이 날아와 봉우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송팔응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통탄하였다. 그는 이후 무예를 익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고흥 지역의 향토 유적과 유물 및 분청사기를 전시한 박물관이다. 그동안 고흥을 대표할 만한 박물관이 없던 상황에서 박물관을 조성하여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고흥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박물관의 유물들을 더욱 보완하고 다양한 특별 전시를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명소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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