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아름다움, 경주 월지(月池)에 취하다
그윽한 아름다움, 경주 월지(月池)에 취하다
  • 박기상 기자
  • 승인 2019.10.08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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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놀이 문화가 새겨진 주령구에는 노래 없이 춤추기, 술 석잔 먼저 마시기 등 신라인들이 주사위를 굴려 위에 나타난 문구대로 행해야 했던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다. 마치 무반주 댄스나 원샷 같은 지금의 벌칙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지. 싱그러운 푸르름의 계절과 함께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경주 월지에서 신라인들의 풍류를 느껴 보는 건 어떨까.

 

석축호안(石築護岸)으로 둘러싸인 월지 전경
석축호안(石築護岸)으로 둘러싸인 월지 전경

 

연꽃향기 가득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총 440천㎡에 유채꽃, 연꽃, 코스모스, 목화, 야생화, 부용화 등 개화 시기가 다양한 야생화를 심어서 꽃 단지를 조성했다. 특히 동궁과 월지 주변 동부사적지는 가장 넓은 부지에 백련과 홍련, 수련 등 다양한 연꽃이 한꺼번에 피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꽃밭 속 갈지(之)자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아한 연꽃의 자태에 취하고, 은은한 향기에 취한다. 7월 중순부터는 절정에 이른 연꽃을 바로 곁에서 감상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월지(月池)는 사적 제18호로 경주 인왕동에 소재한다.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못이라 하여,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까지 이렇게 불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안압지라는 이름에 익숙하다. 이제 우리는 이 연못을 월지라고 한다.

 

월지 주변은 온통 연꽃 밭이다.
월지 주변은 온통 연꽃 밭이다.

 

인공 연못인 월지는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쪽과 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다. 섬에는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 서쪽으로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이 있었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서 1974년 11월에 고인 물을 모두 빼내고 바닥에 가득 찬 펄을 들어내는 준설작업을 하고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 결과 동궁(東宮), 태자(太子), 월지(月池)등의 명문이 쓰여 있는 유물들이 많이 수습되어, 이 연못의 이름이 월지임이 밝혀졌다.

2011년 문화재청은 안압지(雁鴨池) 또는 임해전지(臨海殿池) 라고 부르던 사적지명을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굴곡이 심한 곡선을 이룬 동쪽 호안
굴곡이 심한 곡선을 이룬 동쪽 호안

 

월지에 매표소를 지나 정문에 들어서면 동궁의 넓은 공간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직 한쪽에 동궁 건물터의 발굴 작업이 남아있어 천막으로 덮인 곳을 볼 수 있다. 월지는 아담한 인공연못이다. 탐방로를 따라 연못 주변을 도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름다운 월지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동쪽으로 대나무 숲이 보인다. 동남쪽 입구 쪽에는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느낌이 든다.

월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다. 가장 가까운 철길은 월지 담장과 불과 1미터 거리로 지나간다. 조용한 월지 곁을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좀 아쉽다.

 

금동판보살상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금동판보살상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당시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쏟아지다

월지에 펄 바닥에서는 불상, 숟가락, 청동거울, 벼루, 송곳, 가위, 건물의 난간 목재 조각, 심지어 유람용 목선까지 무려 1만 5000점이 넘는 통일신라 시대의 여러 가지 생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모란꽃과 연꽃을 결합시켜 보다 화려하게 만든 이상화된 꽃무늬인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못과 주변 건물지의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이때 호수에 있는 둘러 있는 돌로 이루어진 연못과 3개의 섬, 그리고 연못 서쪽의 호안 옆으로 5개의 건물지와 서쪽과 남쪽으로 연결되는 건물지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석축으로 된 연못의 남쪽은 거의 직선을 이루고 서쪽은 길게 높게 쌓은 가공된 석축과 사각형으로 된 집터가 그 일부를 못 쪽으로 돌출시켜 5개의 건물지를 이루었으며, 동쪽과 북쪽 호안은 굴곡이 심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동남쪽 모서리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溝)와 북쪽 연못 안에서 물이 밖으로 나가는 출수구(出水溝)시설이 확인되었다.

연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지 전경
월지 전경

 

월지의 보물 창고 월지관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월지에서 너무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월지관을 따로 마련하여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월지 전시관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전시장 정면으로 월지에서 발견된 큰 목선이 그의 원형 형태로 복원되어 있다. 길이가 6m가 넘는 목선이다. 월지의 규모로 보아서는 큰 배라 할 수 있겠다.

월지관에는 월지에서 발견된 치미, 초심지 가위, 주령구, 토기, 기와, 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경주를 찾아온 관광객이면 꼭 와 봐야할 곳 중에 하나다. 그리고 월지는 경주 박물관 바로 가까이에 있다. 불과 직선으로 2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다.

 

초심지 가위가 발견되었다

경주 월지에서 발견된 초심지 가위는 초의 심지를 자르는 특수한 용도로 만들어진 가위이다. 이 초심지 가위는 특이하게, 자르는 날의 둘레에 반원형으로 세운 테두리가 있다. 잘라진 초심지가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가위는 전면에 새겨진 섬세한 어자문(魚子文)을 통해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손잡이에 새겨진 당초문(唐草紋)을 입체화한 신라인의 창의적인 조형성과 독창성이 잘 드러나 있다. 어자문 장식기법은 통일신라 시대 금속공예의 특징을 대표하고 있다.

줄기와 덩굴이 만들어낸 화려한 당초무늬에 점 모양을 찍었으며, 반원형의 받침을 달아 세련된 조형 감각과 탁월한 공예기법이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통일신라의 화려했던 생활상과, 통일신라 금속 공예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초와 촛대는 삼국 시대에 보편화 된 조명기구의 일종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신라인들은 월지에서 풍류를 즐겼다 - 주령구(酒令具) 이야기

월지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 유난히 쓰임새가 독특한 유물 하나가 출토되었다. 이 기구는 1975년 6월 월지의 서쪽 호안 석축의 바닥에서 출토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14면체로 독특하게 생긴 이 기구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각 면에 새겨진 글씨를 판독한 결과 통일신라 시대 때 귀족, 또는 왕족들이 술자리 연회에서 갖고 놀았던 주사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술과 관련된 명령을 내리는 도구라는 뜻에서 주령구(酒令具)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 주령구는 경덕왕 때 작성된 목간(木簡)이 나온 토층보다 더 아래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8세기 초의 통일신라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주령구는 참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직경이 4.7cm이다. 정육면체 모양의 일반적인 주사위 모양과는 전혀 다르게 육각면이 8개, 정사각면 6개, 모두 14면이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주령구, 국립경주박물관 (복사본)
주령구, 국립경주박물관 (복사본)

 

신라 놀이 문화가 새겨진 주령구

 

飮盡大笑(음진대소) - 술 다 마시고 큰소리로 웃기

三盞一去(삼잔일거) - 술 석잔 한 번에 마시기

自唱自飮(자창자음) - 스스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기

禁聲作舞(금성작무) - 노래 없이 춤추기

衆人打鼻(중인타비) -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有犯空過(유범공과) -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醜物莫放(추물막방) -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兩盞則放(양잔즉방) - 두 잔이면 쏟아 버리기

任意請歌(임의청가) - 사람을 지목해 노래 청하기

曲臂則盡(곡비즉진) - 팔뚝을 구부린 채 다 마시기

弄面孔過(농면공과) - 얼굴을 간지럽혀도 가만있기

自唱怪來晩(자창괴래만) - 스스로 도깨비를 부르는 행동하기

月鏡一曲(월경일곡) - ‘월경’이라는 노래 부르기

空詠詩過(공영시과) - 시 한수 읊기

 

주령구는 해서체 한자문구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매우 해학적인 술자리 벌칙들이 적혀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못했을 경우나 벌칙을 받아야할 경우, 주사위를 굴려 위로 나타난 면에 새긴 문구의 내용대로 행해야 하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당시 음주 습관의 풍류를 보여 주고 있다.

주령구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옛날 신라인들의 술과 관련된 놀이 문화를 충분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현재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주령구는 복사본이다. 발굴 당시 발견된 주령구 진품은 문화재청에서 보존처리 하는 과정에서 소실되어 지금은 복사본만 남아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꽃잎 모양의 석구로 된 입수구
꽃잎 모양의 석구로 된 입수구

 

월지의 물 관리는 과학적이다

월지의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는 남쪽 호안과 동쪽 호안이 연결되는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서쪽 건물에서는 섬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월지에 유입되는 물은, 조성 당시에는 북천(北川)의 물을 황룡사(皇龍寺) 앞 계곡을 따라 끌어들인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은 남천(南川)의 맑은 물을 양수기로 끌어올려 정수시킨 뒤 월지로 흘러 보내고 있다. 물은 동남쪽 담장 밑 도랑을 통하여 들어오는데 거북모양의 석구(石溝)와 꽃잎모양의 석구에 고였다가 자연 계곡 형태의 도랑을 거쳐서 폭포가 되어 월지로 들어 오게 설계되어 있다. 물을 끌어 들이던 수로가 큰 용머리에 연결되어 있으며 용의 입으로 물이 나오게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여 진다. 지금 용머리는 사라지고 없지만 나머지 수로에 따라 물이 들어오는 모든 시설은 그대로 볼 수 있다.

수조에서 걸러진 물은 큰 자연 판석(板石)을 넘어서 1m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는데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밑에는 웅덩이가 만들어졌으며 웅덩이에 들었던 물이 넘쳐서 경사진 한 덩이 큰 자연석을 타고 다시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몇 번의 물고임 현상을 통하여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구조는 매우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토사 유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웅덩이
토사 유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웅덩이

 

또한 물이 떨어지는 폭포 같은 소리는 서쪽 누각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 입수구 주위는 상당히 큰 자연 괴석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자연 괴석의 배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듯하며, 월지 전체 조경 중에서 가장 깊은 계곡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월지의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는 북쪽 호안의 작은 섬 뒤에 있다. 가장 북쪽 섬의 중간에 자연석을 보기 좋게 쌓아 놓은 부분에 있으며 주변에 비단잉어들이 많이 놀고 있는 곳이다. 출수구의 수로는 넓이 85cm의 배수구로 돌로 바닥과 양측을 쌓고 덮개가 덮여 있다. 평소 물이 가득 차 있어 멀리서 보면 전통 한옥 지붕의 모양이다. 팔작지붕을 가진 기와집 형태로 보인다. 물을 빼는 시설은 큰 장대석 같은 돌, 위에서 밑으로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나무마개를 하여 유지하려는 수면에 따라 연못 물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였다.

못의 수면은 호안 축대의 높이로 미루어 보면 2.1m를 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야 석축으로 쌓은 부분은 물속에 들어가고 자연 괴석을 배치한 부분만이 물 위에 노출되어 자연미를 주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자연 괴석들이 전부 산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닷가의 해변돌이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복원된 목선의 모습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복원된 목선의 모습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펄 속에 묻혀 있던 목선의 출토

1975년 경주발굴조사단이 발굴 착수한 후 20여 일 뒤에 목선을 확인하고 노출시켰다. 발굴된 목선의 위치는 서쪽 호안 중심부 연못 바닥 층에서 전복된 상태로 나타났다. 목선의 크기는 전장 6.2m, 최대 폭 1.1m 였고, 높이는 35cm였다. 목선은 긴 나무 세 개의 길이로 이어지고 배의 앞과 뒤에는 가로로 나무를 건네어 배의 양옆 나무와 바닥이 서로 맞물려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배의 모양을 반구조선(半構造船)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갯벌 속에 묻혀 있어 나무 자체는 무른 상태였고 표면에는 해충에 의해 마치 문양을 새겨 놓은 듯 벌레 먹은 흔적이 전면을 감싸고 있었다.

목선의 모습을 보면 통나무 내부를 파내고 만든 형태로 3조각을 붙여 만든 특이한 구조로 잔잔한 못에 띄어 놀이하기 위해 만든 목선으로 여겨진다. 9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 지금 모습으로 되었다. 조심스러운 복원 작업과 이동 작업을 거쳐서 현재 경주박물관에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목선 중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의 나무배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월지는 고대 연못 유적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유적이다. 좁은 연못을 바다처럼 넓게 느껴지도록 조성한 신라인의 뛰어난 조경술을 보여준다. 이 연못에서 밝은 달밤에 목선을 띄우고 주령구로 물놀이, 술놀이를 하는 옛 신라인들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월지는 국내외 어떤 관광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야경을 뽐낸다. 경주 여행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관광객에게 천 년 전 신라의 성골, 진골 부럽지 않은 호사를 선사한다. 수면 위에 비친 전각과 수목은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싱그러운 푸르름의 계절과 함께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경주 월지를 천천히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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