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정(龍潭亭), 천도교의 시작을 가다
용담정(龍潭亭), 천도교의 시작을 가다
  • 박기상 기자
  • 승인 2019.10.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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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天主, 한울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 천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인간은 신분이나 빈부(貧富), 적서(嫡庶), 남녀(男女) 등의 구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고, 수행을 하면 모두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동학의 핵심인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용담정의 정문인 포덕문(布德門)
용담정의 정문인 포덕문(布德門)

 

최제우, 구미산 자락에서 득도(得道)하다

천도교(동학)을 창시한 수운 대신사(水雲大神師)의 이름은 최제우(崔濟愚)이다. 1824년 10월 28일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서 가난한 선비인 최옥과 한 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최제우는 일찍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높은 뜻을 지니고, 가르침을 얻고자 천하를 돌아다녔다.

수운 최제우는 용담정에 자리 잡기 전 10여 년을 세상을 구할 도를 찾아 전국을 배회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이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길(道)이 아니라 스스로를 통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고향인 경주 현곡면 구미산(龜尾山)에 위치한 용담정(龍潭亭)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끝없이 훌륭한 진리라는 의미의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상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상

 

천도교의 발상지인 용담정은 경주 시내에서 서쪽인 현곡면 방향으로 약 10km 떨어진 구미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평일 오후에 용담정을 방문하였다. 용담정 주차장 한쪽에는 국립공원 관리소가 마련되어 있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주차장은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요즘 이곳 성지(城地)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미산 자락은 이렇게 천도교 성역이 되었지만 아직은 찾는 방문객이 많지 않다 보니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다.

용담정을 가기 위해 주차장에서 정면으로 둘러보니 포덕문(布德門)이 보인다. 포덕(布德)은 하느님 즉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널리 펼친다는 뜻이다. 포덕문은 네 개의 석주를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문짝은 따로 없고 출입구가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천도교 세 가지 기본 교리인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을 상징하고 있다.

 

천도교 신도들의 수련원인 포덕관
천도교 신도들의 수련원인 포덕관

 

포덕문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방향으로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상이 있다. 왼손은 책을 들고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조선 시대 사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동상 아래 가운데에 태극(太極)모양의 문양이 있는데 수운 최제우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영부(靈符, 최제우가 영감으로 한울님에게 받은 천신(天神, 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표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도교에서는 이것을 궁을(弓乙, 영부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 동학의 본질인 천심(天心)의 ‘심(心)’ 자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최제우의 동상을 지나서 300m쯤 숲길을 오르면 오른편에 천도교 신도들의 수련원인 포덕관 건물이 보인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세워져 있다. 내부에는 지금까지 천도교 최고 지도자인 교령을 역임한 분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포덕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용담수도원이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8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지붕은 한옥이지만 구조는 콘크리트 건물이라 다소 아쉬운 감이 든다. 이 수도원 외벽은 모두 백색이다. 이는 안정과 평화를 나타내는 한울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성화문(聖化門)
성화문(聖化門)

 

수련원을 지나 다시 산으로 조금 오르면 성화문(聖化門)이 나온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전통한옥의 목조로 된 문이다. 여기서부터 비포장 길이다. 길 양쪽으로 아주 큰 나무들이 서 있고 숲이 울창하다. 아무래도 이곳을 방문객을 반기는 나무들인 것 같이 느껴진다. 여름이라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매우 시원하며 무엇보다 풍광이 아름답다. 이곳을 둘러보니 여기가 바로 명당이라 여겨진다.

용담정 가는 길은 속세를 떠난 구도길 같다. 걷기 좋을 때쯤 그 숲의 끝쪽에 홍예다리인 용담교가 나타난다. 계곡 건너편에 정자가 수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건물이 바로 용담정(龍潭亭)이다. 용담정은 천도교가 태동한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 다리를 경계로 이쪽은 선천(先天, 천도교가 창건되기 이전의 세상)의 세계, 다리 건너편 저쪽은 후천(後天, 천도교가 창건된 이후의 세상)의 세계라 한다. 천도교에서는 선천은 어둠의 세상이지만, 후천은 밝음의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용담교 건너 용담정(龍潭亭)의 모습
용담교 건너 용담정(龍潭亭)의 모습

 

정면 5칸 측면 3칸의 아담한 크기의 용담정은 큰 특징 없는 기와지붕의 전통 목조 한옥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천도교의 기도의식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 위쪽 벽면엔 수운 최제우의 영정이 있다. 양쪽으로 병풍이 둘러 있다. 다른 장식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왼쪽 벽면 병풍에 있는 부지명지소재 원불구이수아(不知明之所在 遠不求而修我)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밝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멀리서 구하지 말고 스스로 닦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용담은 구미산 깊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작은 연못을 이뤘는데 그 속에 한 마리의 이무기가 혼탁한 세상을 밝게 하려고,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해서 먹구름 속에 천둥과 비바람에 큰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천도교에서는 그가 바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라고 한다.

 

용추각(龍湫閣)
용추각(龍湫閣)

 

부친 최옥의 문집을 보관한 용추각(龍湫閣)

용담정 옆으로 흐르는 물가에 오래된 작은 사각 정자가 용추각이다. 이 정자 안에는 수운 최제우의 부친 최옥의 문집이 보관 되어 있다. 용추각 왼쪽으로 폭포가 있으니 용추폭포라고 한다. 용담정 옆 물 흐르는 곳에 오래된 작은 무지개 돌다리가 보인다. 그 너머 바위틈에 샘물이 흐른다. 또 폭포 아래 오른쪽으로는 수운 최제우가 청수를 받던 곳이 있다. 낡은 목판에 신비스러운 곳이라는 의미로 선경(仙境)이라 새겨져 있다.

이곳이 용담의 본원(本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용담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용담의 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모든 바다물의 근원이 된다고 하여, 천도교에서는 지금의 세상이 끝나고 백성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후천개벽의 성지(聖地)라 한다. 성지 용담정은 현재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서인지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다.

 

용담(龍潭)폭포
용담(龍潭)폭포

 

수운 최제우 선생의 생가를 찾다

다시 수운 선생의 생가를 찾아서 용담정 입구에서 약 1.5km 정도 북서쪽으로 내려오면, 180여 년 전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생가가 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관리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태어난 본 생가는 선생이 20세 무렵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생가는 경주시에서 수운 최제우 선생 생가 복원 사업을 2014년 7월 7일에 마쳤다. 말끔히 단장된 유적지에는 생가와 유허비, 주차장과 관리실 등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옛 생가 모습을 최대한 살려서 안채와 사랑채, 장독대와 방앗간 그리고 잿간과 화장실 등을 둘러보았다. 선생의 어린 시절과 그 당시 가정생활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담장 밖 왼편에 유허비가 보인다.

 

복원된 수운 최제우 생가 전경
복원된 수운 최제우 생가 전경

 

1971년에 세워진 이 비석에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탄생과 용담정에서의 수행과정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어서인지 숙연해지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기도 했다. 생가 바로 앞에 천도 교조 대선사 수운 최제우 유허비(天道 敎祖 大禪師 水雲 崔濟愚 遺墟碑)가 빈터만 남이 있던 이곳에 정부의 도움과 교단의 정성으로 세워져 있다.

 

수운 최제우 유허비
수운 최제우 유허비

 

생가에서 앞쪽으로 마주 보이는 구미산 동북쪽 능선 중앙에 있는 수운 최제우 선생 묘소가 있다. 성지 용담정은 현재 쓸쓸히 세월을 그대로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운 최제우의 순교 이후 용담정은 폐허로 방치되다 1975년 교인들의 모금에 힘입어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됐다. 하지만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정비하다 보니 상징적인 건축물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경주시가 동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을 하고 있다. 용담정 일원에 수운 최제우의 생가를 복원하고, 교육문화원과 수운회관을 조성하며, 동학 탐방로를 정비한다고 한다. 천도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민초들의 아픔을 보듬고 민족의 독립을 염원했던 천도교는 오히려 그런 이유로 봉건정권과 일제의 탄압에 몰려 쇠락했다. 천도교는 백성들의 마음을 보듬고 민족의 독립을 염원했던 민족 종교로 1920년대 불교와 기독교 등을 제치고 200만 명이라는 국내 최대 신자수를 보유하기도 했지만 요즘 신자 수는 10만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곳 경주에서 창시한 천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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