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등재, '한국의 서원'의 가치
세계 문화유산 등재, '한국의 서원'의 가치
  • 문화재청
  • 승인 2019.10.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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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세계 문화유산 14번째로 등재된 것이다. 서원은 조선 시대 사립학교로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과 함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담은 한국의 서원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최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우리나라 세계 문화유산 14번째로 등재된 곳이 바로 ‘한국의 서원’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이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성리학의 역사적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문화유산의 필수 요소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 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으로 총 9곳이다. 이는 건립연도 순서이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
옥산서원

 

서원, 성리학의 중심에 서다

서원은 조선 시대 성균관이나 향교처럼 국가에서 세워진 교육 기관과 달리 성리학의 지식인들의 교육의 열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세운 사립 고등 교육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원에서의 교육은 성리학의 중심을 둔 교육이었다. 과거 급제를 위한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 서원에서는 학문을 닦고 연구한다는 강학에 중점을 둔다. 또한, 어질고 현명한 선현들을 기억하는 제사를 올리며 그 뜻을 이어가고자 했다.

 

돈암서원
돈암서원

 

도동서원
도동서원

 

학덕 있는 사람의 신주를 모시는 것을 배향이라고 하는데 서원은 주로 그 인물의 연고지에 지어졌다. 강학을 위한 공간인 강당과 제향을 위해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의 공간이 구분되었다. 앞에는 교육 공간이 마련되었고 뒤에는 제향 공간이 있는 ‘전학후묘’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지방의 지식인들은 서원에서 다양한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마음을 편히 쉬는 유식(휴식)과 회합을 위한 공간인 누마루가 남아있는 서원도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서원이 전국적으로 600여 곳이나 될 정도였다. 그러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내려지면서 서원이 쇠퇴하게 되었다.

 

소수서원
소수서원

 

남계서원
남계서원

 

 

‘한국의 서원’이 가진 특별함

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육 기관이지만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교육 기관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은 중국의 ‘백록동서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것이다. 1543년 중국의 유학자 주자가 운영한 백록동서원에서 영향을 받아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현재의 경북 영주시에 백운동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이 처음 시작된 한국의 서원의 모습이다. 한국의 서원이 가진 특별함을 어떤 것일까.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서원의 시초가 된 중국의 서원이 아닌 왜 한국의 서원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필암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무성서원

 

중국의 서원과 한국의 서원이 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 이념의 차이일 것이다. 중국의 서원은 자신의 출세를 위한 입신양명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관료 양성에 중점을 둔다면 한국의 서원은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양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한국의 서원은 바로 전인적인 교육을 이루어 가는 곳이었다.

또한, 중국의 서원이 마을에 지어졌던 것에 비해 한국의 서원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세워졌다.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뚜렷한 하나의 서원 건축 전형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특별한 가치가 있어 유산의 의미를 더욱 높이게 된다. 중국 서원은 공자를 제향했지만 한국 서원은 지역에서 난 스승을 모시고 학파를 만들어갔다. 이 점에서 한국의 서원은 조선을 성리학 사회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의 서원은 후학 양성에 큰 힘을 기울이고 향촌 사회를 질서 있게 이끌어 가는 역할을 했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9개의 서원들은 한국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으로서 서원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이들은 한국의 서원이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며, 이들을 통해 한국 서원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소수서원

 

소수서원

한국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경북 영주).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왕에게 요청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함께 서적, 노비를 하사 받으며 국가가 공인한 사학기관이 되었다. 소수서원은 한국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하여 이후 건립되는 서원에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된 문헌 자료도 풍부하다. 소수서원은 교육 기관으로서 서원이 강학, 제향, 회합과 휴식 등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함을 제시하였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도산서원(경북 안동)은 조선에 성리학이 정착하고 서원이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퇴계 이황을 배향 인물로 삼아 1576년 완공됐다. 퇴계 이황이 제자를가르치기 위해 1560년 세운 도산서당을 모태로 한다. 이황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난 1574년 안동과 예안 사림이 건립했으며, 지금도 강학 공간 전면에 도산서당이 있다. 도산서원의 주변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자주 조선 시대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됐다.

도산서원은 서원이 학문과 학파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는 한국 서원 발전의 과정을 입증한다. 제향인물의 강학처를 기반으로 건립되었으며, 강당이 비대칭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 탁월한 자연 경관으로 인하여 일대의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들이 남아 있다.

 

병산서원

 

병산서원

병산서원(경북 안동)은 2010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중 일부다. 병산서원은 교육기관으로서만이 아니라 만인소 등 사림의 공론장으로도 확대된 사림활동 중심지로서의 서원의 기능을 입증한다. 많은 학자들의 수용이 가능한 큰 규모의 만대루는 자연 경관과의 조화가 탁월하다.

 

옥산서원
옥산서원

 

옥산서원

옥산서원(경북 경주)도 2010년 양동마을, 동강서원, 독락당 등과 함께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에 등재된 곳이다. 출판과 장서의 중심기구로서의 서원의 역할을 정립하였다. 건축적으로는 만대루 같은 누마루인 무변루(無邊樓)가 있다. 서원에 누마루를 도입하여 회합 및 휴식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옥산서원 이후 서원에 누마루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도동서원
도동서원

 

도동서원

도동서원(대구 달성)은 서원 교육 방식의 구체적인 양상을 입증한다. 경사지를 활용한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하였다. 건축물별로 여러 개의 단을 조성하여 외부의 자연 경관을 시각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용한 것은 경사지 서원의 조성 기법을 잘 보여준다. 또한, 강당을 둘러싼 담장도 건축미가 매우 뛰어나다.

 

남계서원
남계서원

 

남계서원

남계서원(경남 함양)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영주 서원보다 9년 늦은 1552년에 건립되었다. 최초로 지역의 사림들만으로 구성되어 설립된 서원이다. 지형 조건을 활용해 제향, 강학, 교류와 휴식 공간을 나눠 서원 건물 배치 전형을 제시했다. 건축적으로는 한국 서원 건축의 정형적인 배치방식이 처음 등장한 사례이다. 각각의 주요 영역을 구분하여 하나의 축선 상에 배치한 것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 배치 방식의 전범이 되었다.

 

필암서원

 

필암서원

필암서원(전남 장성)은 전남 장성 출신 문인인 하서 김인후를 숭앙하려고 1590년에 지은 서원이다. 한국의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 남부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 다.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전의 서원들이 경사지형을 이용하던 것과는 달리, 이 서원은 평탄한 지형에 적합한 건축물 배치 방식을 적용했다.

 

무성서원
무성서원

 

무성서원

무성서원(전북 정읍)은 한국 서원의 발전과정에서 성리학 이념이 지역단위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는 단계에 속한다. 마을에 있던 교육 공간인 흥학당이 서원으로 발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하고 향촌을 교화하고자 교육과 사회적 근거지에 설립되었다. 건물은 사우와 강당인 명륜당(明倫堂), 기숙사인 강수재(講修齋)가 있다. 기숙사가 강당 앞마당이 아니라 따로 배치된 점이 이채롭다.

 

돈암서원
돈암서원

 

돈암서원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9곳 중 가장 늦게 지어진 돈암서원(충남 논산)은 김장생을 배향하기 위해 1634년 건립되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을 이은 예학의 대가이다. 예학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의 질서를 재건하고자 정립된 성리학의 주제였다. 돈암서원은 1881년 홍수가 나면서 지금 위치에 재건되었다. 강당인 응도당(凝道堂)은 당시에 기술력이 부족해 옮기지 못했고, 90년이 흐른 1971년에야 이전했다.

돈암서원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한국적으로 완성한 거점으로서, 보물로 지정된 응도당은 현존하는 서원 강당 중 가장 크다. 응도당은 정침이론을 한국의 건축언어로 재해석하여 완성한 뛰어난 건물로서 한국에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14건의 세계유산은 석굴암과 불국사(1995), 합천 해안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경주역사 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2000), 제주특별자치도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 조선왕릉(2009),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 남한산성(2014), 백제역사 유적지구(2015),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 한국의 서원(2019)이다.

14번째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으로 건축학적으로 가치와 의미가 깊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지역적인 전파에 이바지 한 점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점이 탁월하고 이러한 특별한 가치는 유산의 의미를 더욱 높이게 된다.

이번에 등재된 서원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앞으로 한국의 서원의 보존·관리를 통해 그 가치와 의미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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