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요한 아침의 커피타임
조선, 고요한 아침의 커피타임
  • 전다영 기자
  • 승인 2019.10.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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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카페인, 에프터 카페인”의 필자의 모습은 마치 화장실을 다녀오기 전 후의 모습과 유사 하지 않을까 싶다. 커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필자의 집에서는 커피를 먹고 싶으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오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소년기에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였었다.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성장기의 아이와 청소년의 뇌세포를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결과가 정확하게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실 그 날을 고대하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당당하게 카페에 달려가 커피를 주문하였고 그렇게 필자의 커피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올 때는 어땠을까? 우리는 흔히 한국 최초의 커피가 고종 황제로부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1896)을 하였을 당시 러시아 공관에서 커피를 접하고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 커피 역사의 그 첫 시작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고종 황제 사진, 20세기 초, 49cm x 33.5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고종 황제 사진, 20세기 초, 49cm x 33.5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한국의 커피 문화가 시작되다

조선은 고종의 아관파천 이전부터 서구열강을 향해 교역의 문을 열었다. 이때 서양의 종교, 과학, 문화 등이 유입되었는데 커피 문화도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1882년에 미국을 첫 시작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차례로 수교 통상 조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서양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수교를 통해서 조선에 들어온 사람들은 선교사, 외교관뿐만이 아니라 사업가, 단순 여행객 등 상당히 다양했다.

 

프레드 바나드, '파리의 카페에서 전쟁에 대한 토론', 1870, Illustrated London News (출처 퍼블릭 도메인)
프레드 바나드, '파리의 카페에서 전쟁에 대한 토론', 1870, Illustrated London News (출처 퍼블릭 도메인)

 

조선과 서구 열강과의 본격적인 교류는 수교 통상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 이전에도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들이 적지 않다. 1858년 부산포에 정박한 영국인들은 <The Illustrated London News> 신문에 1858년 4월 24일자로 그들이 맞이한 조선의 첫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탐사를 목적으로 조선에 왔다가 도굴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 1832-1903) 또한 수교 전에 조선을 방문하였다가 본국으로 돌아가 <금단의 나라 : 한국 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 Reisen nach Korea(1886)>을 간행하였다.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교 이전부터 이미 다수의 서양인들이 조선을 방문하고 있었다. 수교 이후보다 활발하진 않았겠지만 1800년대 중반부터 서구 열강들의 문화 또한 한반도에 서서히 흘러 들어왔다. 지금의 얼리어답터처럼 트랜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라면 서양 사람들의 방문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특히 왕실 관련자들이나 고위관료, 양반, 대부호 등은 이들과의 교류가 용이하여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유럽의 커피 문화가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느낀 커피의 맛은 어땠을까?

당시 서구 열강이었던 유럽은 커피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영국에서는 17~18세기 무렵 런던을 중심으로 3,000여 개의 커피숍이 생겨났으며 프랑스의 경우에는 1800년대 중반에 이미 파리 시내 곳곳의 카페가 넘쳐나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이었다. 유럽에서의 카페 문화는 유럽 문화의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 문화 속에 살던 서양인들은 조선을 방문했을 때에도 잊지 않고 커피를 챙겼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커피에 대해 언급한 기록물들도 존재한다. 1884년부터 3년간 의료선교사로 일했던 알렌(H.N.Allen)은 그의 일기에 궁중의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1885년 11월에 조선에 들어온 영국영사 칼스(W.A..Carles)는 그의 글에서 당시 직접적으로 커피를 마신 것에 대해서 언급하였으며, 1889년 관북 지방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언더우드 부인(Mrs.Underwood)은 당시 지역관인 현감과 지역민들과의 저녁식사 시간 중 커피에 설탕이 아닌 벌꿀을 넣은 색다른 커피를 소개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백자선무늬주전자’,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그랑프리 수상작, 프랑스 자기회사 삘리뷔 제품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백자선무늬주전자’,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그랑프리 수상작, 프랑스 자기회사 삘리뷔 제품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 1855~1916)은 1883년 12월에 조선 왕실의 초청을 받아 조선에 방문하였었는데 이때에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책을 펴내었었다.

이 책에서 로웰은 커피를 당시 조선 최신 유행품이라고 기록하였다. 1883년 이면 고종의 아관파천(1896)보다 13년 전이다. 게다가 1883년 당시에 커피가 조선 최신 유행품으로 유통되고 있었으니 커피가 조선으로 들어온 것은 최소한 1883년보다는 이전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19세기 후반기에 커피 문화가 조선의 황실에서도 향유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 황제 또한 커피를 즐겨 마셨을 것이고 말이다. 고종 황제는 그 누구보다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고요한 아침, 커피 한 잔의 여유

서양 문물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은 서양의 식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왕실 식탁 풍경을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왕실은 그릇, 주전자, 탕기 등 유럽의 고급 도자기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의 그랑프리 수상작인 프랑스 자기회사 삘리뷔(Pillivuyt) 자기를 사용하는 등 서양식 자기를 주문 제작하기도 하였다. 식기들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들 또한 유럽의 도자기를 사용하는 등 왕실 생활 곳곳에 어렵지 않게 서양문물의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실의 커피타임은 더 이상 낯선 문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한반도를 근대화 시키고자 하는 고종의 노력은 대단했다. 문호개방은 물론이며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선포하고 대한 제국이 자주독립 국가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활동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고종의 실제 얼굴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는데 사실 고종의 사진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이야 사진은 매우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와 친밀하지만 고종의 시대 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왕의 경우에는 더욱 특별한 일이었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살아있는 왕과 다름없는 위상을 지니고 있어 그림일지라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그만큼 왕의 얼굴을 형상화 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기 앞에 선 것이다. 사진기의 발명의 근대시기 과학의 발전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은 근대화의 물결에 발맞춰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합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외국과의 조약이나 국제 관계 형성에 국가원수의 사진을 교환하는 국제외교 관례가 있었다. 고종은 이러한 국제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고종 황제가 한국에서 최초로 커피를 맛 본 사람이라는 기록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아마 적극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드리려는 그 노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겨다는 것이 좀 놀랍다. 고종황제 뿐만 아니라 커피가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 될 만큼 많은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지금처럼 믹스커피가 아닌 시절에 커피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쓰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마 조선 시대에 커피를 마실 때에는 지금의 아메리카노처럼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당시에 커피 문화는 유럽으로부터 들어왔는데, 유럽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지금도 실제로 프랑스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는 없다. 커피를 달라고 하면 에스프레소를 준다. 그리고 그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넣거나 생크림을 넣어 달달하게 먹는 게 이들이 커피를 마시는 방식이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면 에스프레소와 함께 따뜻한 물을 한 잔 시켜야 한다. 언더우드 부인이 설탕 대신에 벌꿀을 넣은 커피를 소개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도 커피를 달달하게 해서 마셨을 것이다.

한약과 유사한 색의 커피를 처음 마셔보라고 했을 때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커피를 처음 맛보았을 때의 표정을 상상하노라면 절로 미소가 띄워진다. 미간을 찌푸렸을지, 눈을 동그랗게 떴을지, 함박웃음을 지었을지 궁금한 것들이 한 가득이다. 언뜻 생각하면 조선과 커피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됐든 조선 말기에 조선 사람들은 커피를 접하였고 최신 유행품이 될 만큼 커피를 즐겨 마셨다.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 마셨을 수도 있고, 손님을 위해 커피를 대접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홀로 사색에 잠기기 위해 커피타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어느 고요한 아침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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