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초원의 문화,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
한국에 온 초원의 문화,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
  • 송영대 기자
  • 승인 2019.05.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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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중앙 박물관에 설치된 게르 내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설치된 게르 내부

 

몽골. 몽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필자는 제일 먼저 대초원이 생각난다. 수많은 말이 힘차게 달음박질치고, 무표정한 목동이 채찍을 휘 두르며 양을 이끄는 모습이 떠오른다. 거친 몽골의 바람과 싱그러운 대지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인한 몽골인들은 그 바람 속에서 태어나서 말 위에서 살아간다. 몽골은 지금까지도 유목민을 대표하는 국가로 인식된다. 지금은 단지 넓은 초원의 나라이지만, 한때는 전 세계에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칭기즈 칸의 나라였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는 한몽 공동 학술 조사 2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칸의 제국 몽골> 이라는 전시를 지난 5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개최하였다. 몽골의 국가 지정 문화재 16건을 포함하여 536점의 다양한 문화재가 전시되었다.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은 국립 중앙 박물관 1층 중·근세 전시실 옆의 특별 전시실에서 진행되었는데, 특별전의 분위기를 알려주듯 티켓 박스에는 전시 안내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건너편의 상설 전시실 입구에는 둥그스름한 지붕의 흰 게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는 말과 양의 모형이 자리하였다. 게르 안에는 몽골의 여러 가구와 의복 및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었다. 각종 옷들을 직접 입어볼 수 있어서 어린이들이 안내원의 도움으로 옷을 입는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특별전에 들어서니 녹색 바탕의 배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초원에 걸맞게 일부러 청록색과 녹색 계열로 배경을 조성한 것이다. 몽골이라 하면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만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특별전에서는 몽골 전체의 이해를 위해 선사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진열되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
국립 중앙 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

 

제국의 여명

몽골의 구석기 시대는 약 80만 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전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찍개, 긁개, 몸돌과 같은 뗀석기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이후 기원전 15,000년 경부터는 세석기, 즉 작지만 예리하게 가공된 석기를 사용하였던 중석기 시대가 전개되었다. 기원전 8천 년 전부터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며, 토기와 무게 추, 갈판과 갈돌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몽골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3천 년기 후반부터 시작된다. 청동 솥이나 청동 재갈과 같은 청동 제품 외에 돌 거푸집이나 돌 도가니와 같은 유물도 전시되었다. 청동 솥은 동시대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이동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다. 돌 거푸집과 돌 도가니는 몽골에서 청동기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몽골 청동기 시대의 돌 거푸집과 돌 도가니
몽골 청동기 시대의 돌 거푸집과 돌 도가니

 

전시실 한 켠에서 모두의 주의를 집중시켰던 유물로는 베르흐-칼쥔-2유적 3호 무덤에서 출토된 옷이 있는데, 초기 철기 시대 즉 기원전 5~3세기의 털옷으로 몽골의 국보로 지정된 유물이다. 무덤의 주인공이 착용한 것으로 말, 사슴, 담비, 다람쥐, 양 등의 가죽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겉옷 외에 모자, 바지, 신발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몽골인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오늘날에도 당장 착용하고 지낼 수 있을 정도이다.

여러 유물 중에서 맹수 조각 머리띠가 눈에 띄었다. 개 혹은 늑대 두 마리가 서로 바라보는 듯한 형태로 조각되었으며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이빨을 날카롭게 드러내어 마주 보고 있다. 동물의 몸통에는 얇은 금박을 씌웠다고 하지만 육안으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머리띠가 초기 철기 시대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했지만, 과연 이 유물을 남자가 썼을지 여자가 썼을지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맹수 조각 머리띠
맹수 조각 머리띠

 

고대 유목 제국, 흉노와 돌궐

몽골에서는 흉노를 시작으로 여러 유목 국가가 등장하였다. 흉노의 등장 이전에도 유목민들은 중국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신들의 식량이 부족할 경우 중국을 상대로 침공과 약탈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춘추 전국 시대의 각국은 장성을 쌓아 유목민의 침입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기원전 3세기 경 북방의 유목민들은 흉노의 묵특선우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게 되었으며, 기존의 중국인들로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큰 공포를 마주하게 되었다.

묵특선우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흉노의 부족들을 평정하였고 주변에 위력을 떨쳤다. 전쟁을 통해 한나라를 압도하여, 한고조 유방을 포위하고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조공까지 받았다. 현재 흉노에서 발견되는 여러 유물들에는 유목 문화의 것 외에도, 한나라와의 교역 등으로 인하여 들여온 유물들도 상당수 확인된다. 이를테면 각종 토기와 와당, 옥과 칠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고아 도브 유적에서 출토된 와당들은 한나라 사람들이 흉노의 땅이 직접 거주하였거나 건물을 축조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흉노 시대의 장옥
흉노 시대의 장옥

 

시간이 지나면서 흉노를 대신하여 선비가 몽골고원을 장악하였고, 이후 유연이 그 영역을 차지하였다. 선비는 북중국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였고, 유연은 흉노의 강성함에 미치지 못하여 미완의 제국으로 남게 되었다. 흉노를 이은 대제국으로 등장한 존재는 돌궐이었다. 돌궐은 자신들의 문화를 크게 발달시켰으며 동서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돌궐을 대표하는 유물로는 퀼 테긴의 비석을 들 수 있다. 퀼 테긴은 빌게 카간의 동생으로 돌궐 제2제국을 통합하고 재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퀼 테긴 비석의 한 면에는 고대 투르크 글자, 다른 한 면에는 한문이 적혀있다. 퀼 테긴의 비석 탁본이 특별전에 전시되었으며, 퀼 테긴의 두상으로 알려진 유물도 함께 진열되었다.

 

퀼 테긴의 비석 탁본
퀼 테긴의 비석 탁본

 

몽골 제국과 칭기즈 칸의 후예들

돌궐 이후에 몽골고원은 위구르가, 그 이후에는 거란이 장악하였다. 또한 몽골고원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저마다의 세력을 갖고 있었다. 몽골고원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하고 하나로 통일한 이가 테무친 즉 칭기즈 칸이었다. 칭기즈 칸은 몽골고원의 통일에만 머물지 않고 북중국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이른바 몽골 제국의 탄생이며, 아시아 끝에서 유럽에까지 이르는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히는 대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전시에서는 중장기병의 무기와 갑옷이라는 항목으로 여러 마구류와 무기가 함께 전시되었다. 몽골 제국을 이끌었던 기병의 무장을 알 수 있는 유물로 마구류가, 복장으로는 재갈·안장·등자·채찍·쇠사슬 갑옷·허리띠·가죽 장화가 있었으며, 무기로는 칼·화살촉·쇠망치·곤봉·창이 있었다. 몽골 기병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익한 자료였지만, 중장기병이라는 설명이 맞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중장기병은 기사는 물론 말 전체까지 갑옷을 입은 중무장 기병을 의미한다. 몽골 제국에서 중장기병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유물들이 중장기병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었다.아울러 의아하였던 전시품으로 파라오 모양 가면이 있었다. 단발머리와 곧게 난 수염이 파라오를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집트의 파라오와 몽골 제국 사이에는 2천 년의 시간 차이가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파라오와 몽골이 직접 연관되기는 어려웠다. 유물의 형태 때문에 붙은 명칭일 수도 있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유물의 성격을 정확히 밝혀 설명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몽골 제국 중장기병의 무기
몽골 제국 중장기병의 무기

 

개인적으로 이 특별전에서 몽골 제국을 대표할 만한 유물로 ‘통행증’을 꼽고 싶다. 지름이 10cm 정도 되는 작은 금속 유물이지만, 이는 몽골 전역에서 관리와 사절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몽골에서는 역참제(驛站制)라고 하여, 긴급하게 이동을 할 경우 통행증을 보여주면 역참의 말을 자신의 말과 바꾸어 탈 수 있었다. 몽골의 빠른 교통과 소식 전달 체계는 역참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통행증에는 페르시아, 몽골, 파스파 문자가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관리와 사절은 하루에 450km를 달릴 수 있었다고 하였다.

 

파라오 모양의 가면
파라오 모양의 가면

 

한국의 몽골 유물

몽골의 기마 문화는 몽골고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쳤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시대부터 이미 몽골의 기마 문화 영향력이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대성동 47호분에서 출토된 동복(銅鍑) 즉 청동 솥이 있다. 몽골 특별전에서도 여러 청동 솥이 진열되었으며 서로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야의 땅에서 유목민의 청동 솥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학계에서 큰 주목을 끌었으며, 그 영향력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었다.

 

김해 대성동 47호분에서 출토된 동복
김해 대성동 47호분에서 출토된 동복

 

고려 시대에서는 몽골의 불교 즉 라마교의 영향력이 확인된다. 보물 제18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라마교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잘록한 허리를 가진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최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7대 산사 중 하나인 공주 마곡사 오층 석탑도 라마교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몽골은 교류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몽골어 학습서가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몽골어 학습서로 <몽어노걸대> 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몽골의 글자와 한글이 함께 쓰여있다.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

 

몽골은 중국, 일본과 아울러 우리와 오랫동안 교류를 하였던 나라였다. 그 연원은 고대까지 올라가며, 그 흔적들은 여러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 및 신 북방 정책 등과 아울러 몽골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몽골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 문화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 특별전은 몽골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어떠한 발전 단계를 거쳤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도 몽골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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